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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엄마가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집밥 모드 ON!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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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달간을 '엄마'가 아닌 '작가'로만 산 듯하다. 마감에 쪼들리며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느라 '엄마' 모드는 잠시 꺼두었달까. 하지만 오늘, 드디어 두 개 프로젝트의 마감을 마치고 '엄마'로 복귀했다. 그동안 우리 식구의 삼시 세 끼를 책임져줬던 배달 음식과 밀키트야, 이젠 안녕! 당분간은 엄마 모드, 집밥 모드로 살아갈 예정이니 나중에 또 보자꾸나.




일로 글을 쓸 때는 거의 모든 집안일이 STOP 상태가 된다. 청소도 빨래도 밥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마감에만 매달려서다. 둘 다 잘 해내려다가 내 몸이 고장 나느니 둘 중 하나는 그냥 모른 척 내버려 두자고 진즉에 결론을 낸 탓이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지난 한 달간 먼지투성이 집에서 배달 음식과 외식, 햇반과 라면으로만 생계를 유지했다. 거의 연명 수준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워낙 잦다 보니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남편도 아이들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문제는 나다. 마감 기한에 맞추느라 정신이 없을 땐 두 눈 질끈 감고 넘어가지만, 원고를 넘기고 제정신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자책 모드로 돌아선다. '집 꼴이 이게 뭐람?' '빨래가 산더미네' '애들한테 맨날 배달 음식만 먹여서 어쩌지?' 등등. 그리고 지체 없이 미뤄뒀던 집안일에 착수한다.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고 밥을 안치고 반찬을 만든다. 오늘은 아들이 좋아하는 닭볶음탕, 딸이 좋아하는 김밥, 남편이 좋아하는 오징어 숙회를 차근차근 만든 후, 컬리와 홈플러스에 과자와 과일, 아이스크림을 주문해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순식간에 다시 엄마 모드로 복귀, 그리고 잠시 꺼두었던 집밥 모드도 ON. 이제야 겨우 마감 이전의 생활로 돌아왔다.




마감 이전과 이후, 엄마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비교하면, 엄마의 삶은 고달프지만 가족의 일상을 지탱한다는 보람이 있다. 이에 비해 작가의 삶은 긴장과 이완의 반복이 가져다주는 짜릿함이 있다.


마감 후의 안도감, 그리고 결국 해냈다는 성취감은 쉽게 떨쳐 내기 힘든 중독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당분간은 엄마 모드로 마감 후의 짜릿함과 여유를 즐기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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