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낯설게 하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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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딜 가든 제 이름 뒤에 '작가'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가끔 '이렇게 불려도 되나?' 스스로에게 되물을 만큼 낯설고 부끄러울 때가 많지만, 글 쓰는 일로 먹고살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겠거니 하고 긍정의 말을 내뱉곤 합니다. 그런데 '작가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많은 분들이 묻는 질문이 있어요. "작가님은 뭐 전공하셨어요?"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음~"하면서 답을 한 템포 늦춥니다. "수학이요" 혹은 "무용 전공했어요"라는 말로 묻는 이의 기대를 배반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정작 제 전공은 '국문학'이니 거짓말을 할 순 없겠죠. 할 수 없이 "국문 전공이에요"라는 얘길 하면, 상대방은 백이면 백 이런 말을 되돌려줍니다. "아하, 그러시구나. 역시 국문 전공하신 분들이 글을 잘 쓰시는 것 같아요."
분명 저에 대한 칭찬일 테고 또 감사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 말이 '일반화의 오류'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문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글을 잘 쓴다는 건 일종의 편견이거든요. 베스트셀러 작가들 중에도 문학이 아니라 다른 학문을 전공하신 분들이 꽤나 많고요. 일례로 '알쓸신잡'에 출연해 '전국구'로 유명해진 김영하 작가는 경영학을, <7년의 밤>, <종의 기원>, <완전한 행복>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쓴 정유정 작가는 간호학을 전공했습니다. 물론 문학을 전공한 유명 작가들이 더 많긴 해요. 하지만 '문학 전공자가 글을 잘 쓴다'라는 명제를 '참'이라 긍정하기엔 예외가 너무 많네요.
사실 '작가'와 '문학 전공'과 '글을 잘 쓴다'의 상관관계를 이렇게 길게 얘기한 이유는, '낯설게 하기'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낯설게 하기'는 러시아의 빅토르 쉬클로프스키라는 사람이 처음 언급한 문학적 기법이에요. 문학을 문학답게 하는 것, 그 본질은 '낯설게 하기'에 있다는 것이죠. 문학은 일상의 언어와는 다른 언어적 규칙, 즉 리듬감, 비유, 역설 등을 사용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 특징이라는 거예요. 제가 이 용어를 처음 접한 건 대학교 1학년 때였어요. 모든 학문의 기본인 '개론' 수업-저는 국문학 전공이니 '문학개론' 수업이었죠-에 이 용어가 처음 등장했는데, 그때만 해도 이게 그렇게 중요한 용어인지 몰랐던 터라 교수님 말씀을 그냥 흘려 들었답니다.
그런데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때 이 용어의 정의를 쓰라는 문제가 나온 거예요. 당연하게도 저는 답을 쓰지 못했어요. 그제야 이 용어가 뇌리에 콕 박히더군요. 답을 틀릴 순 있어도 못 쓰는 건 용납 못하던 모범생 시절이라 더 그랬을 거예요.
그 이후 '낯설게 하기'는 제 마음속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그 용어의 기원인 '낯설다'라는 단어도요.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낯설다'는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하다',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하다'를 의미합니다. 사실 전 기본적으로 낯선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타입이거든요. 그래서인지 늘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막상 글을 쓸 때 '낯설게 하기'를 시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마음은 100% '낯설게 하기'에 가 있지만, 실제론 그 반의 반도 글에 적용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지요. 이는 제 능력 부족이기도 하지만, 제가 주로 작업하는 기업체 홍보물에는 '낯설게 하기'보다는 쉽고 친숙한 어휘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새로운 것을 보면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을 먼저 느끼는 유형의 사람인지라 '낯선 것'에 대한 제 마음속 터부(taboo)는 좀처럼 사라지질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낯설다'는 몹시 매혹적이지만 저로선 쉽게 다가가기 힘든 어휘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일까요? 마음속엔 늘 타인의 기대를 배반하고 낯설게 만들고 싶은 욕망이 불타고 있음에도, 현실의 저는 늘 뻔하고 고지식하고 예상하기 쉬운 사람이 되어 버린답니다. 그리고 그 간극은 때로 저를 실망시키고 좌절하게 만들어요.ㅠ.ㅠ
물론 이제 와서 제 성향과 기질을 완전히 뜯어고칠 순 없겠죠. 그러니 어쩌면 '낯설다'와 '낯설게 하기'는 저에겐 영원히 '낯선 것'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네요. '작가님'이라는 호칭에는 그럭저럭 익숙해졌지만, '국문 전공자라 글을 잘 쓴다'라는 명제에는 지금도 동의하기 힘든 것처럼요.
PS: 제 생각에, 작가란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나 글 쓰기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매일매일 꾸준히 쓰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글을 잘 쓰느냐 못 쓰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달까요?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내면에 이야기가 넘쳐 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작가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작가일까요? 그런 점에서 '나는 확연히 부족하고 모자란 작가구나. 작가라 불리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매일같이 글을 올리시는 부지런한 브런치 작가님들을 보며 쓴 반성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