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5천만 원의 종신보험에 가입하게 된 사연
09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조건 정답은 아닐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내가 생각한 뜻과 전혀 다른 의미라는 걸 알게 된 이 단어, '애틋하다'! '애절하다'보다 살짝 감정적 강도가 덜한 유사어일 거라 생각했건만, 그 뜻은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타는 듯하다'와 '정답고 알뜰한 맛이 있다'라니... 이래서 뭐든 지레짐작하지 말고, 찾아보고 확인해 보고 검증해봐야 하나 보다.
*음, 내가 생각했던 의미는 그래도 후자에 가까운 듯하다. 이 또한 이번에 알게 된 것이지만 '알뜰하다'에는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참되고 지극하다'라는 뜻이 있다니 말이다.
나는 그동안 '애틋하다'라는 이 단어를 오해했다. 아마도 사랑스러운 어감 때문이거나 어딘지 모르게 잔잔한 감정의 파동을 느끼게 하는 단어 자체의 아우라 때문이겠지. 뭐, 어쨌거나 좋다. 내가 이 단어를 좋아했던 이유는 어감 반, 의미 반이니 이 기회에 의미만 리셋하면 될 터다.
'애틋하다'를 생각하면 늘 아이들이 떠오른다. 나에게 '엄마'라는 직업을 갖게 해 준 나의 첫사랑 딸, 그리고 예기치 못한 축복으로 다가온 나의 귀염둥이 아들. 두 아이만 생각하면 온갖 감정이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 듯해서다. 기쁨과 슬픔, 걱정과 두려움, 무한한 애정, 그리고 안타까움... 그 모든 감정의 스펙트럼을 나는 '애틋하다'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하곤 했다.
그리고 그 애틋함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랑과 걱정, 두려움이 내재돼 있었다. 특히 '내가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된다면?'을 가정할 때 그 감정은 몇 배로 증폭됐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고 탄생은 언제나 죽음을 전제로 하니, 나 또한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겠지. 그런데 혹시라도 내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내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엄마 없는 우리 애들은 어떻게 될까?' 내 의식의 흐름은 늘 여기까지 다다랐고, 그때마다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30대,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걱정이 내면의 불안을 야기하던 시절. 내 안의 불안을 상쇄해 줄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그때 나의 선택은? 어이없게도 종신보험이었다. 내가 죽으면 내 아이에게 주어질 최소한의 돈.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의식의 흐름인데, 그때는 너무 간절한 마음이라 그게 틀릴 수 있다거나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딸 하나일 때 1억 원의 종신보험을, 아들이 태어난 후 1억 5천만 원의 종신보험을 추가로 가입했다.-보험설계사의 전언에 따르면 가장이 아닌(프리랜서 작가이긴 하지만, 뭉뚱그리자면 가정주부인) 여성이 종신보험에 2개나 가입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란다-하지만 든든함은 아주 잠깐이었다. 곧 40만 원이 넘는 보험료를 내가 20년 이상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새로운 걱정이 찾아왔으니까. 그래서 보험료를 벌기 위해 쉼 없이 일하게 됐다.(아, 이런 걱정의 악순환(?)이라니...ㅠ.ㅠ)
결론은, 아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종신보험 가입과 쉼 없는 경제 활동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
역시, 사랑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