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왜 나는...

-뒤늦은 후회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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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고, 우리를 깊이 상처 입힌다. 상처는 언젠가 아물지만 상흔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딸의 손목 위에도 상흔이 남았다.



시작은 <더 글로리>였다. 그건 우리에게 일종의 트리거였다. 2월의 어느 날, 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넷플릭스 좀 가입해 주면 안 돼? 친구들이 <더 글로리>에 나오는 문동은이란 나랑 비슷하다는데, 어떤 게 비슷하다는 건지 궁금해서 보고 싶네”

“그래? 그럼 엄마는 넷플릭스 가입하는 법 잘 모르니까 딸이 가입해 줘. 엄마는 돈만 낼게.”


아무렇지 않게 응수했지만 내 마음속에선 피가 흘렀다. <더 글로리>. 학교 폭력의 피해자인 문동은이 가해자들을 찾아내 하나하나 응징하는 드라마. 내 딸도 겪었을 그 고통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일은 참혹했다. 가슴에 격통이 밀려왔다. 물론 딸이 겪은 일은 드라마 속 문동은이 겪은 일보다는 강도가 약했을지도 모르겠다. 딸의 몸에서 멍이나 화상을 발견한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정서적 폭력은 물리적 폭력 못지않은 상흔을 남긴다. 내 딸 역시 눈에 보이지도, 쉽게 지워지지도 않는 내상을 입었다. 딸에게 처음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후로 7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딸은 여전히 극심한 우울감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딸의 왼쪽 손목에는 여러 개의 상흔이 남았다.


딸이 처음 내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던 날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딸의 등·하교를 책임지고 있던 나는 그날도 딸을 픽업하러 학교에 갔다. 교문을 나와 차에 올라탄 딸의 얼굴은 어두웠다.

“오늘 점심은 뭐 먹었어? 뭐 재미있는 일은 없었고?”

늘 하던 사소한 질문들을 던지며 딸의 안색을 살피는데, 딸이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엄마, 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라는 말과 함께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오랜 기간 학교에서 아이들의 따돌림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는 얘기였다. 더 충격적인 건 그 일이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딸은 어렵게 이야기를 털어놓고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이젠 괜찮아, 엄마. 그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이젠 내가 어떻게 행동하면 되는지 알게 됐어.”


‘아, 너는 그토록 힘들 때까지 왜 엄마에게 말을 못 했나? 나는 왜 너에게 그것밖에 안 되는 엄마였나?’


나는 무너졌다.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이 짓무르도록 울었고, 또 자책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어느 순간 달라진 딸의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아마 사춘기라 그런가 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스스로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어쩌면 너를 방치했던 건 아닐까. 대체 언제였을까? 갑자기 소리 높여 말하거나 욕을 내뱉곤 하던 초등학교 6학년 때였을까, 아니면 “아침 자습 시간엔 주로 뭐 해?”라고 묻는 내게 “그냥 책 읽어”라고 답했던 중학교 1학년 때였을까. 그때 웃으며 “왜 친구들이랑 놀지, 책을 읽어?”라고 되묻던 내게 너는 뭐라고 말했더라. “읽고 싶어서 읽는 게 아니라 할 게 없어서 읽는 거야”라고 했던가. 뒤늦게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게 뚜렷한 징후였는데, 왜 그걸 놓쳤을까? 나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때 딸이 했던 고백은 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심지어 그때 어떤 일을 당했던 건지 상세하게 물을 수도 없었다.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또다시 고통스러워할 딸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딸을 데리고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고, 어쩌면 상담이 딸의 상처 입은 마음과 어긋난 버린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켜 줄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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