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가 남긴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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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를 위한 상담을 시작했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 딸. 우리는 과연 화해할 수 있을까?
딸의 상담은 2년 가까이 계속됐다. 나는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딸과 함께 심리상담센터로 향했다. 상담은 딸의 상담과 부모 상담을 병행하는 형태였다. 상담 선생님은 40분간 딸과 이야기를 나눈 후 10분간 나에게 딸의 현재 심리 상태를 설명하고 어떻게 딸을 대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 조언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그다지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딸과 나의 정서적 거리가 가깝고 딸을 충분히 사랑해주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 정도면 좋은 엄마 아닌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딸의 생각은 달랐다. 딸에게 나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이었고, 사고가 유연하지 못하고 고루한 사람이었다. 나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딸의 생각이 틀렸던 건 아니다. 딸의 생각처럼 나는 약속과 원칙을 지키는 걸 중요시했고, 불안과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고는 경직돼 있었고, 나의 원칙을 딸에게 적용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내 아버지는 못 배운 것에 대한 한이 많고, ‘술만 안 먹으면 참 좋은 사람인데···’의 전형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 큰 탓에 학교는 국민학교밖에 마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승진은 꿈도 꾸지 못했다. 20년 넘게 한 회사를 다녔지만 항상 잡일을 전전해야 했고, 그 울화를 술로 달래곤 했다. 아버지는 늘 술을 마시면 울거나 화를 냈다. 가끔은 폭력적으로 변해 집안에 있는 물건을 던지거나 엄마를 때리기도 했다. 자고 있던 오빠와 나를 깨워 무릎 꿇려 앉힌 후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를 반복해서 얘기하는 일도 잦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한편 불쌍했고 한편 무서웠다.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 성인이 된 이후에도 밤만 되면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올까 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걸 잊기 위해, 아니 술에 취한 아버지를 피하기 위해 가능한 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집에 오는 시간은 예측불허였다. 잠이 들기 전 아버지가 귀가하면 온 가족이 아버지를 재우기 위해 기를 썼다. 슬프게도 그 당번은 주로 나였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귀를 파주면 잠을 잘 잤는데, 특히 내가 하는 걸 좋아했다. 나는 떠밀리듯 무서운 아버지 옆에 앉아 30분이고 1시간이고 계속 귀를 팠다. 처음엔 ‘빨리 재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반복되는 이 일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내가 결혼을 빨리 했던 건 남편이 너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너무 싫었던 탓도 있었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의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성실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를 대학에 보낼 만큼 딸에 대한 애정도 컸다. 하지만 내 기억 속 아버지는 늘 무섭고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건 아버지가 술을 마셨을 때와 마시지 않았을 때의 모습이 너무 달라 그 간극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결과 나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을 회피하고 스스로 통제 가능한 상황만을 좇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원칙을 어기는 사람을 멀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또 지나치게 불안도가 높고 걱정이 많은 사람으로 성장했다.
나의 이런 성격과 성향은 딸의 육아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나는 방송이나 신문에 나오는 무서운 일들이 내 딸에게도 일어날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혹시나 안 좋은 일을 당할까 봐 딸이 가고 싶다던 태권도 학원에도 보내지 않았고, 혹시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칠까 봐 정글짐 같은 놀이기구에는 올라가지도 못하게 했다.
나는 ‘한 번 해봐’라는 말보다 ‘하면 안 돼’라는 말을 자주 하는 엄마였다. 그런 내가 좋은 엄마일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