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화를 불렀다

-올바르지 못한 선택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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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이 드라마틱한 변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우리는 서서히 달라졌고, 조금씩 나아졌다. 그러나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진 못했다.


상담을 시작하고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난 건 아니었다. 다만 나는 내가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걸 인정했고, 내 입장보다 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담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너’를 주어로 하는 대화법이 아니라, ‘나’를 주어로 하는 대화법을 시도했다.


*

돌아보면 나는 딸에게 늘 이런저런 요구를 하기 바빴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야. 그런데 왜 넌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니?”

“학교랑 학원은 절대 빠지면 안 돼.”

“옷은 단정하게 입어야지. 옷이 그게 뭐니?”

“인사하는 건 기본이야. 어른들 만나면 인사는 꼭 하렴.”


내 입장에선 당연한 것들이지만, 딸에겐 강요에 불과했을 얘기들을 나는 거듭 강조하곤 했다. 딸과 나를 동일시하고, 그 아이와 내가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속과 원칙을 중시하고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나’와 원칙보다 스스로의 취향과 욕구를 중시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너’가 같은 사람일 리 없는데도.


*

다행인 건 상담 이후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강요나 지시, 비난과 질책이 뒤섞인 ‘너’ 전달법 대신 온전히 내 감정이나 생각만을 전달하는 ‘나’ 전달법을 준수하려고 노력했다.


“엄마 생각엔 지금 일어나야 지각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입으면 이따가 많이 추울 것 같아.”

“학원에 못 갈 것 같으면 학원 선생님께 미리 연락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지시형에서 청유형으로 표현은 유해졌고, 딸의 의사를 존중하려는 노력도 계속했다. 딸이 내 의사나 원칙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마다 몹시 답답하고 걱정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고, 기분이 언짢거나 안 좋을 때도 딸을 대하는 태도에 그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러나 사람의 본질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노력했지만 완전히 달라질 순 없었고, 우리의 평화도 오래가진 못했다.


*

갈등의 촉발 지점은 입시 상담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꿈도 없고 뭘 해야 좋을지도 모르겠다며 아무것에도 의욕을 보이지 않던 딸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무렵 대학 입시에 도전해 보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내심 기뻐하며 딸의 뜻에 따랐다. 그리고 한동안 오로지 ‘지원’에만 충실했다. 딸이 영어 학원에 가고 싶다면 영어 학원에 보냈고, 수학 학원에 가고 싶다면 수학 학원에 보냈다. 국영수 등급이 아무리 오르락내리락해도 ‘점수가 이게 뭐니?’, ‘앞으론 좀 더 잘하렴’ 같은 말은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딸의 성적은 계속 올라갔고, 꾸준히 3등급 전후의 성적을 유지했다. 기대 이상의 성과에 나는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고3 담임 선생님과의 입시 상담은 이런 욕심을 또 한 번 부추겼다.


“어머니, OO이가 글을 잘 쓰더라고요. 표현력도 좋고.”

“네,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또 잘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아예 문예창작학과 실기 전형으로 수시 지원을 해보면 어떨까요?”

“실기 전형이요?”

“네, 미리 준비해 온 건 아니지만 시도해 봐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아서요. 잘 되면 중앙대, 동국대 같은 인서울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으니까요.”


욕심에 눈이 먼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완전히 경도되었고, ‘안 되면 그만이고, 해 봐서 나쁠 건 없잖아?’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결국 나는 딸을 설득해 수시 지원 모두를 문예창작학과 실기 전형으로 밀어붙였다. 딸은 그다지 내키지 않아 하는 기색이었지만 모른 척했다.


*

문제가 터진 건 두 번째 실기 시험 날 아침이었다. 딸은 시험 시간이 다 돼가도록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예 시험 보러 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도전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딸에게 ‘얼른 가자’고 재촉을 했다가, ‘도대체 왜 안 가려는 거야?’라고 물으며 화를 냈다가, ‘제발 가자, 엄마 소원이야’라고 울면서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딸은 꼼짝 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네 맘대로 해. 이게 나 좋자고 하는 거니? 다 너를 위해서잖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듯했던 우리의 관계는 이 일로 인해 전보다 훨씬 못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잘 몰랐다. 나는 딸이 이상하다는 생각만 했고, 내가 문제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강요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걸, 딸의 인생은 딸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욕심에 눈이 멀어 그 사소한 진리를 잊었다. 너무 어리석고 미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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