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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로 돌아오는 시간

아이에게서, 다시 나로 중심을 옮기는 연습

by 담연 이주원

일요일 아침 삼남매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첫째 다온이는 동네를 걷는 내내 여러친구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다온이다!”
“안녕~ 00아!”


어제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와는 비밀 아지트에 다녀왔단다.
“아빠, 비밀인데… 거기 내 친구가 알려준 곳인데 아빠만 특별히 데려가줄께.”
그리고 그 친구와 월요일 아침 8시에 만나 함께 등교하자는 약속까지 했단다.


아직 몇 년 더 부모의 손이 필요한 줄만 알았던 다온이가
조금씩 나 없이도 ‘사회로’ 걸어 나가고 있다.
아이가 어릴 적엔 부모가 세상 전부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래가 중심이 된다. 부모는 자연스럽게 ‘삶의 배경’으로 이동한다.

나는 요즘 그 과정을 조금씩 겪고 있다.


손이 많이 가던 다온이는 이제 나를 조금 덜 찾고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관계를 만들고, 외부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한편으론 기특하고 또 한편으론 조금 서운한 마음도 든다.


5살 남매둥이는 아직도 매일 매일 엄마, 아빠를 찾아 울고 웃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아이들도 곧 나 없이도 살아갈 준비를 시작할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때가 오면 나는 다시 내 삶의 중심을 나에게로 돌려야 한다.


예전에는 삶의 중심이 ‘나’였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나를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보던 시절.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삶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아이’에게로 옮겨졌다. 그건 자발적인 선택이기보다는 자연의 흐름에 가깝다. 마치 중력처럼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기듯 나는 아이의 울음에 기쁨에 같이 웃으며 한참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중심은 영원히 그곳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아이들이 자립해갈수록 나는 나를 다시 챙겨야 한다.
건강을, 관계를, 좋아하는 일을, 사랑하는 아내를...

이건 이기심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가족의 형태를 이어나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나는 가끔 상상해본다.
삼남매가 모두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 각자의 삶을 만들어가는 미래 어느 장면을.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나와 아내가 함께 보내는 일상의 풍경을.
조용한 식탁, 함께 걷는 산책길, 느긋한 대화, 서로의 웃음소리를 가까이에서 듣는 노년의 시간들.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나는 그 시간을 희망처럼 품고 있다.

아이들이 자립해간다는 건 우리가 노년의 삶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시간을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로 바꾸고 싶다.


그래서 지금의 이 고단한 삶 속에서도 조금씩 준비한다.
미루었던 건강검진, 가끔의 대화, 무리하지 않는 일정, 작은 취향 하나.


심리학자 에릭슨은 노년을 “통합과 회고”의 시기라 했다. 삶을 돌아보고 받아들이는 시간, 그리고 다음 세대를 축복해주는 역할, 나는 그 시기를 소극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능동적인 준비로 맞이하고 싶다.


아빠로서의 삶, 남편으로서의 삶 그리고 ‘나’로서의 삶.
그 셋 사이의 균형을 조금씩 맞춰가며 나는 지금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지금 이 시기가 ‘나의 시간’은 아니더라도 이 시간을 잘 살아내는 것이 앞으로의 내 시간을 더 의미 있게 만들 것임을 믿는다.


언젠가 '나' 돌봄이 최우선순위로 둘 시기가 돌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내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이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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