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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강점이 나의 성장이 되는 사회

나와 너는 서로 성장하는 발판

by 담연 이주원

쌍둥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언젠가 마주하는 고민이 있다.
“같은 반에 보낼까? 다른 반이 좋을까?”
언젠가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되겠지만 그 첫 분리를 언제,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쉽게 답하기 어렵다.

우리 부부는 남매둥이가 이제 만 세 살이라 아직 이 질문을 유보 중이다.
둘이는 늘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배운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함께이기에 이 세상이 두렵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아주 작고 조용한 변화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쿨버스에 언제나 나란히 앉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떨어져 앉는다.
한 명은 맨 앞, 다른 한 명은 맨 뒤.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서로 거리를 두는 모습을 요즘 들어 자주 목격한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서로 참견하며 놀던 시간이 많았는데, 이젠 각자의 놀이에 몰두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성격 차이, 성별 차이, 흥미 차이가 자연스레 서로를 분리해 나가나 보다.

어느 날은 한 아이가 혼자 놀다가 다가와 "같이 놀자"라고 말한다. 그러면 첫째 딸이 다가와 함께 놀아준다. 엄마가 1호와 놀아주던 방식대로, 이제는 다온이가 둥이를 품어준다. 남은 한 아이는 조용히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세계에 빠져든다.


둘째 한준이는 부지런하고 힘이 세다. 그래서 그런지 끈기가 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아이. 아니 먼저 행동하고 생각하는 아이일지도 모른다. 아빠가 출근하고 퇴근할 때 가장 먼저 뛰어와 안기며 사랑한다 말하는 다정한 아이다.
막내 채린이는 느릿느릿하지만 말이 빠르고 논리적이다. 그리고 손재주가 좋고 뭐든지 빨리 습득하는 편이다.

이들은 지금, 스쿨버스에서 떨어져 앉듯이 서로의 세계로 살짝 물러서면서도 여전히 각자 자신의 강점으로 서로의 안전기제이자 발판이 되어주고 있다.

한준이는 말을 얼버무리거나 소리치는 경향이 있다. 발음도 그렇고, 앞뒤 맥락도 없이. 그럴 때면 어김없이 채린이가 등장해 통역을 해준다.
“오빠가 이런 말 한 거예요.”
그러면 한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킥보드를 잊은 채 놀던 채린이에게 한준이가 조용히 킥보드를 가져다준다.
유치원에서도 집에서도 행동이 빠른 한준이가 신발도 먼저 신고는 동생 신발을 꺼내 놓는다. 채린이는 도움을 받아도 “고마워” 한마디 없이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도움을 주는 2호도 생색이 없다.

나는 한준이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아내에게 말한다.
"아빠 닮아서 신사적인가 봐."
아내는 무표정으로 한쪽 입꼬리만 살짝 올린다.
나는 그게 칭찬이라 믿고 싶다. 여하튼 서로는 각자의 방식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함께하기도 한다.

얼마 전 아내가 유치원 선생님 상담 때 하셨다던 말씀이 떠오른다.

"두 아이 모두 따로 다른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며 놀고, 함께 놀 때도 사이가 좋아요." 아내와 나도 보고 배워야 할 만큼 참 이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렇게 서로의 강점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러시아 심리학자 '비고츠키'가 떠올랐다. 그는 사람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배운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없는 과제를, 조금 더 능숙한 타인과 협력하며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고 말했고 이를 ZPD(근접 발달 영역)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 관점에서 보면, 지금 한준이는 채린이를 통해 자기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있고, 채린이는 한준이를 통해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와 실천력 그리고 오빠의 따뜻한 마음을 배우고 있다.


서로 성장하는 모습보다 소중하게 깨달은 건 서로의 부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둥이들의 모습이다. 이런 관계를 확장해 나간다면 두 아이는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배우는 사람으로 자라날 것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큼, 도움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함께 살아가는 이상적인 방식이 지금의 남매쌍둥이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이렇게 오늘도 아이들을 보며

부족함을 드러내도 괜찮고, 도움을 주고받아도 민망하지 않은 그 따뜻한 심리적 거리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상상해 본다.


"아마도 살맛 나는 세상이 그런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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