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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투정해 줘서 고마워.

오늘도 새로 만든 두 가지 반찬 나갑니다.

by 담연 이주원

맞벌이 부부가 어린 삼남매를 키운다는 건, 주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남매둥이가 만 두 살이 되던 무렵, 아내는 경력단절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곳은 부모님이었다. 그렇게 부모님은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오셨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삼남매의 평일 저녁시간을 지켜주고 계신다.


'오늘도 아이 셋을 믿고 맡깁니다'편에서 이야기했듯 부모님도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연세다.
그래서 하루 3시간 이상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주중 하루는 반드시 쉬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삼남매의 저녁은 보통 오후 5시부터 8시 사이, 그 시간 동안 아이들 밥상에 오르는 반찬은 우리 부부 몫이다.

주말이면 아내가 국과 밑반찬 몇 가지를 준비하고 나는 매일 ‘새로운 반찬 하나’를 만든다.
어머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자주 가져다주신다. 귀신같이 할머니 손맛을 아는 삼남매는 잘도 먹는다.

내가 만드는 새 반찬은 계란말이, 감자볶음, 애호박 전, 어묵볶음, 돈가스 그리고 한때 인기 많던 용가리 치킨까지... 조금씩 재료와 조합을 바꿔가며 매일 다른 메뉴를 고민한다.

사실, 요리 자체는 어렵지 않다.
뭘 할지 정하는 게 어렵다.

학교와 유치원에서 그날 먹은 반찬이 겹치지 않도록 고민하고 냉장고 재료를 살피고 때론 장을 봐야 한다. 일하면서 반찬 준비하는 시간이 꽤 버겁다.


첫 아이가 태어나기 전
우린 병원의 도움을 받아 임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시절 친구의 추천으로 요리학원 3개월 과정을 수강하게 됐고 아내는 흔쾌히 찬성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육아의 조력자로 훈련시켰던 셈이다.

그 뒤로 요리는 내 취미가 되었고 지금은 하루의 쉼이자 책임이 되었다.


그런데 며칠 전, 이런 일이 있었다.

2호 한준이가 저녁을 먹다가 할아버지께 말했다.
“할아버지, 유치원 밥이 훨씬 맛있어요. 왜 똑같은 반찬만 줘요? 다른 것도 주세요.”

당황할 수도 있는 말인데 지혜로운 할아버지는 참외를 꺼내 밥과 함께 주셨다.
그리고 옛날엔 참외도 반찬이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며 한준이 밥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우게 하셨다.


다음 날,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한준이가 어제 반찬이 다 똑같다고 하더라.”

아차 싶었다.
바쁜 날엔 오이 몇 조각을 자르면서 ‘오늘의 새 반찬’이라 우기곤 했으니 아이 입장에선 늘 같은 밥상이었을 수도 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하루에 새로운 반찬 두 가지는 만들자.

이제 일주일쯤 되었는데 솔직히 힘들다.

두 가지 반찬을 해놓으니 잔반이 더 늘었다. 그리고 새 반찬은 바로 먹어야 맛있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보니,
데워서 내면 맛이 반감이 되는 이유도 있다.

며칠 전 시금치 계란말이와 두부탕수를 했다. 내 입맛에는 일품이었다.
둥이들도 시금치인 줄 모르고 먹겠지 싶어 흐뭇했는데 계란말이가 절반 이상 남았다.

어제는 애호박 감자전 굽고 오이를 잘라 놓았다.
그것도 역시 냉장고 행이었다.


아이 셋의 입맛은 모두 다르다.
1호는 어떤 반찬이든 잘 먹는다. 그만큼 살도 잘 찌고 있다.
3호는 반찬만 먹고 밥은 잘 안 먹는다. 그래서 반찬이 짤까 봐 걱정된다.
2호는 요즘 반찬 투정을 하기 시작했다.

난 그 반찬 투정조차 고맙게 느껴진다.

한준이는 이제 ‘자기 입맛’을 말할 줄 알고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표현할 줄 안다.
그 작은 표현 안엔 세상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자기감정을 표현하며 더 깊은 대화를 누군가와 해나갈 것이다.

그걸 투정이라고 단정 짓기보다,
“이 아이가 자라고 있구나”라고 생각해 본다.


누군가를 위해 매일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맛있게 먹어주기를 바라며 정성을 쏟는 일.
그 마음속에 사랑이 없는 날은 없다.

솔직히 아무리 반찬에 사랑을 넣어도 전문가들이 만든 유치원 급식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건 이미 작은 미식 세계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 집 밥상을 지켜가려 한다.

그 밥상에는 내가 만든 반찬, 아버지의 참외 그리고 아이들의 솔직한 말이 함께 어울려 절묘한 하모니를 이룰 거라 바래본다.

반찬 걱정도 결국은 사랑이다.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키우며 하셨던 사랑의 반찬 걱정을 다시 떠올리며 오늘은 소고기볶음밥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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