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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벌레집이야”

ESG 시대, 삼남매가 보여 준 생태감수성

by 담연 이주원

여름의 꼬리가 여전히 길게 드리워져 있지만,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 속에서 가을이 슬그머니 다가옴을 느낀다. 가을을 떠올리면 누구나 저마다의 키워드가 있다. 독서, 추석, 낙엽… 나에겐 단풍이다. 붉고 노랗게 물든 산의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번 일요일 아침, 삼남매와 함께 황금산으로 향했다. 그리 높지 않은 동네 산이지만, 생태공원과 놀이터, 약수터, 헬스시설까지 있을 건 다 있고, 정상에서는 한강을 낀 아름다운 서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삼남매는 어려서부터 산과 가까웠다. 쌍둥이들이 세 살 무렵 내 품에 안겨 정상에 올랐고, 이제는 다섯 살이 되어 뛰어서 그 길을 가로지른다.


산에서의 풍경은 늘 다채롭다. 맨발 걷기를 즐기는 노인들을 따라 신나게 맨발로 걷는 둘째 한준이, 꽃을 발견하면 꼭 멈춰 서서 눈을 반짝이는 막내 채린이, 곤충과 동물에 관심이 많은 큰딸 다온이.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은 간식을 나누어 먹어도 취향은 제각각이다. 어제도 매미를 잡고 여치를 쫓으며 생태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놀았다.


하산길, 다온이가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산은 원래 벌레집이야. 우리가 놀러 온 거니까 벌레 많은 걸 싫어하면 안 돼.”

벌레가 무섭다며 울상을 자주 지었던 채린이는 언니의 말에 귀를 솔깃한다. 나는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그런데 왜 벌레가 주인이야? 사람도 사는데.”
다온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사람은 아파트가 집이지만, 벌레는 산이 집이지. 산이 없어지면 벌레는 어디 살아? 아빠 아파트에 벌레가 살 수는 없잖아.”

순간, 나는 웃음이 터지면서도 한편 놀라웠다.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은 단순하지만 본질을 찌른다. ‘생태감수성’이란 결국 이런 것 아닐까? 인간 중심의 시선을 넘어, 다른 생명과 그 터전을 존중하는 태도.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연친화지능(naturalistic intelligence)이라고도 부른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에서 말하는 지능 중 하나로, 자연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 속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지식보다 태도에서 출발한다.


최근 ESG가 화두가 되면서, 기업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환경을 지키는 책임 의식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을 지켜낼 힘은 단순한 지식 전달로 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산에서 곤충을 마주하며 “이곳은 너희 집이지”라고 말할 수 있는 어린아이의 감각 속에서 시작된다.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에 시달리는 인류에게 생태감수성과 생태적 소양은 미래인재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태도며 역량이 되었다.


아내는 다온이에게도 체계적인 생태수업을 시켜야 한다며, 저번 주에 여섯 명 아파트 단지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었다. 나는 웃으며 “그 돈으로 간식을 사서 산에 자주 가자”고 맞받았지만, 아내는 생태교육 자격증이라도 있으면 그렇게 하자며 쿨하게 돌아섰다. 요즘은 줄넘기, 농구, 축구도 체계적으로 배우는 시대니, 생태감수성 또한 배워야 한다는 논리에 할 말이 막혔다.


하지만 오늘의 다온이를 본 나는 확신한다. 수업을 듣지 않아도 이미 생태감수성을 품은 준비된 학생이라는 걸. 산과 친구가 되어 놀고, 곤충을 두려워하는 동생을 다독이며 “벌레집에 놀러 온 거야”라고 설명하는 그 모습에서, 나는 ESG 시대가 요구하는 ‘생태적 태도’를 본다. 아이들은 자연과의 작은 만남 속에서 이미 배워가고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교실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와 맺는 관계다. 교육은 자연이 이미 아이들에게 속삭여 주고 있는 말을 잘 들어줄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일 뿐이다. 그 사실을 오늘 황금산에서 삼남매가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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