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연못에서 건진 웃음과 통찰
아이들 여름방학이 끝나고 지난주, 늦은 여름휴가로 1박 2일 태백을 다녀왔다.
태백산 하늘전망대, 고원자연휴양림 개울가에서 물고기 잡기, 자연사박물관, 구문소 등 즐거운 추억이 여럿이지만 마지막 날,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에서 있었던 한 장면에 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황지연못에 동전을 던지는 장소가 있었다. 대게, 이런 곳은 동전을 골인시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그런 내용이 주를 이룬다.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 5개를 꺼내 가족들에게 건네며 동전을 골인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삼남매에게 말했더니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럼 이제 저기에 동전을 던지는 거야"
“자, 하나씩 던져보자.”라고 말하고 먼저 내가 던졌다.
아쉽게 노골. 1호는 그냥 노골, 2호는 완전히 노골. 아내까지 노골이었다. 마지막 주자는 막내 5살 채린이었다. 온 가족의 시선이 채린이 손에 쥔 동전으로 모였다.
“어서 던져.”
모두가 재촉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채린이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난 안 던져.”
그러더니 작은 손으로 100원을 꼭 쥐고는 주머니에 쑥 넣어버렸다.
우리 부부는 그 장면에 빵 터졌고, 언니와 오빠는 “그럼 내가 던질게!”라며 외치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채린이가 다시 선을 그었다.
“안 돼. 이 돈은 내 거야.”
그 말에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참 흥미롭다.
누군가는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로 동전을 던지고,
누군가는 게임같이 재미있는 ‘경험’을 즐기며 던지고,
또 누군가는 자산(돈)을 쓸데없이 쓰기보단 ‘소유’하려고 한다. 어찌 보면 참 합리적인 선택이다.
동전 하나를 두고 벌어진 이 작은 사건은 삼남매 '성향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1호와 2호는 ‘경험 중심형’.으로 전설 같은 이야기를 직접 실천해 보며 재미를 느끼고 실패해도 괜찮다며 위안한다.
아내와 나는 여행으로 오롯이 가족이 하루 종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에 같이 참여'하였다는 의미가 소중하다.
3호 채린이는 요행을 바라기보다 합리적이며 현실적이다. 확실한 가치를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
아이마다 자신만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인지적 프레임(cognitive frame)]의 차이가 똑같은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동전을 ‘소원 티켓’으로 인식하고, 어떤 아이는 ‘놀이의 재료’로 받아들이며, 또 어떤 아이는 ‘내 자산’으로 정의한다.
어떤 해석과 행동도 틀린 건 없다. 다를 뿐이다.
같은 자극 앞에서도 사람마다 해석은 제각각이고, 그 해석이 곧 삶의 방식을 결정지을 뿐이다.
나는 그날 황지연못에서 마음속 다짐을 했다.
소원을 바라며 동전을 던지는 도전적이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한 아이가,
돈을 모으는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가,
마냥 즐겁고 재미난 경험을 추구하는 아이가
스스로 타고난 성향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원하는 욕구를 채우도록 도와야겠다고......
부모가 원하는 사회가 원하는 모습을 강요하기보다 자기가 가치롭게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스스로 찾고 추구하도록 기다려주고 거울처럼 자기를 비춰줘서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삼남매로 자라도록 노력할 거라고......
인생은 결국, 이 다른 성향들이 함께 어울려 만들어질 때 아름다운 풍경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다섯 살 막내가 보여준 “이 돈은 내 거야”라는 한마디에
가족 모두가 크게 웃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추억의 순간을 만들어준 삼남매가 너무 사랑스럽다.
한동안 삼남매 인생수업 글을 연재하지 못했다. 변명하자면 삼남매 여름방학이 글 쓸 시간을 잡아먹어 벼렸고, 멤버십 글을 적기 시작한 것도 한 이유가 되어 이제야 적게 되었다. 개학도 했고 좀 더 열심히 꾸준히 적어야지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