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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눈 May 04. 2018

찡긋,

 



매달 첫 주 흙날에 열리는 통전 교육 공부모임, 4월에 처음 다녀왔다. 절기론, 발달론 주제로 배운다. 때에 맞는 가르침, 가르침의 전제는 본인 스스로 '참답게 살려는'마음이다. 이기적 욕망을 다스리며, 온전한 삶을 살려는 갈망이란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자유와 발산, 함께 어울리는 자율과 수렴, 양가적 기운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배움이 가장 건강하다고. 학교에서 난처하고 당황하고 어렵게 했던 학생들 얼굴이 스쳐갔다. 밀랍 크레용으로 '청명' 때를 그렸다. 선생님이 기억에 남는 시,라며 나눴다. 내 마음에도 쏙 들어왔다.  해님은 식물들에게 빛을 줍니다. 해님이 식물들을 사랑하니까요. 사랑을 할 때는, 그렇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혼의 빛을 줍니다. _18.4.6


2학년 샘물서당 동무들과 우리말글 배워간다. ㅉ[쌍지읒] 배움들이며 지낸다. 나 몰래 찡긋하는 술래 찾는 '찡긋 놀이'도 하고 마주하는 짝꿍 얼굴도 그려본다. 첫 장에는 종이를 안 보고 눈으로만 그린다. 손만 믿고 그린 그림에도 묘하게 동무 얼굴 서려있다. 두 번째는 동무 얼굴 자세히 보며 그리기. 그림 내보이며 내 짝꿍을 소개한다. _18.4.13


같이 일하는 언니, 같이 사는 언니, 그리고 나, 셋 나란히 앉아 김지영 감독이 만든 <그날 바다>를 보았다. 구조의 필요와 한 개인의 열정의 만남.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라는 과제와 김지영 감독의 집요한 이성과 영상기술이 닿은 영화였다. '눈물 펑펑 흘릴 줄 알고 준비한 휴지는 한 장도 쓰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는 누군가의 평이 크게 공감이 됐다. 흙날 광화문 다짐 문화제에 힘을 보태러 갔다면 영화를 보고서는 힘이 났다. 달날 아침 열기 하면서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고, 나무날 아침 열기 하면서는 4.19 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슬프고 속상한 사건 헤아려 지낼 때, 오늘 지금 내 곁에 있는 동무들을 소중히 대하기, 나 하고 싶은 대로 안된다고 속상해하거나 우기지 않고, 옆 동무의 소리를 잘 들어보기.. 똘망똘망한 눈으로, 온몸으로 이야기를 새기고 있는 동무들 보며, 괜스레 긴장이 된다.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로 자라기를. 그보다 먼저 뱉은 말을 거스르는 어른이 되지 말아야 할 거다. _18.4.20


양평으로 들살이 다녀왔다. 미세먼지와 동네 주민들 의식하며 왁자지껄 맘껏 뛰어놀 수 없었던 아이들, 휴양림 운동장과 들판 만나 쉼 없이 달리며 노는 모습 보며 참 좋았다. 들살이 돌아보며 소감 나누는데, 기획해서 준비한 순서보다 기획 밖에서 발견한 자신만의 돌아본 이야기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건물 없는 자연에서 지내서 좋았어요." "미역국이 너무 맛있었어요." "북두칠성을 봐서 좋았어요." "무당개구리를 만났어요." 둘째 날 밤에 뽐내기 마당 펼쳤다. 마을 이모 삼촌들의 생명평화 고운 울림 기도순례 기운 타고, 아이들 공연 주제는 저마다 '하나, 평화, 봄'이었다. 들살이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같이 사는 언니와 판문점 선언 실시간 중계 보며 저녁밥 먹었다. 어제 아이들의 뽐내기 마당은, 정상회담 전야제였구나, 싶었다. 다음 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안에 '마을찻집, 고운 울림' 여는 잔치가 있었다. 주원 선생님과 풍물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봄이와 동무들의 우리 소리 공연에 이어, 성희언니와 교회 벗들의 울력, 그 모습 즐기며 누리는 가을이 보니, 정말 가족 넘어 마을로 살고 있구나, 싶었다. _18.4.28


고등학교 친구 중에 자존감 낮은 자기 동생을 걱정하던 친구가 있다. 한 번은 자기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기가 연애를 하다가 헤어진 이유를 동생 스스로 자기 탓으로 여기고 있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친구는 깜짝 놀랐고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해도, 계속 자기 탓을 하더라는 동생을 보며 난감해했다. 스스로를 비하하며 자기를 확인하는 습관, 스스로를 탓함으로써 자기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마음은 자기 때문에 세상이 이렇고, 자기가 바뀌면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 상상으로 닿기도 한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세상은 왜 이럴까?" 내 최선, 성실에 따른 보상 심리. 지극히 '내'입장에 갇힌 생각이다. 슬프게도(?)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그런데, 그런 생각의 계열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에 몸보다 마음이, 이미 끄덕거리고 있었다. 18.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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