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눈 Nov 21. 2018

[손꼽은] 12감각을 깨워야 내 아이가 행복하다

 


현대인들은 간만 보고는 경험했다고 착각합니다.

한 가지를 반복하여 경험하면 그것으로부터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여러 가지의 것을 간만 보는 것이 아닌, 한 가지로부터 다양한 것을 발견하는 것! 

발견의 기쁨을 맛본다는 것은 '잘 느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발견과 느끼기는 창의력의 모태입니다.


얕고 짧은 관계, 이것이 물질주의 사회의 특성입니다. 

자극이 많으면 균형 잡기가 어렵습니다. 


필요한 관계와 필요하지 않은 관계를 가리기 위해서는 

판단력과 관련된 감각이 필요합니다. 


반복이 없으면 그냥 스치고 지나칠 뿐 무언가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염두해 두세요.

내가 원하지 않아도 늘 나에게 필요 이상으로 많이 주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한 번에 여러 가지가 늘 내 곁에 널려 있습니다. 

늘 내 옆에 널려 있다는 것은, 언제든 힘들이지 않고 눈 뜨면 볼 수 있고 손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절실함이나 절박함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 재미가 없다는 것은 가치를 느끼지 못할 만큼 제대로 관계를 맺어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 부적적 성향을 안타까움의 표현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잘 살고 있구나"라고 현재의 상태를 지지해주면 그것으로 큰 힘이 됩니다.


교사가 학생들과 마주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면 아이들에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가져다주는 지식을 인위적으로 주입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이런 아이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을 만나려고 내가 이곳에 왔구나!'라고 생각하면

'이 아이들을 만난 것', 이것이 소중한 인연이고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들'을 통해 이런 저런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마련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의지가 생기도록 하려면 간만 보는 경험을 제공해서는 안됩니다. 

발달에 맞는 고유운동감각이 잘 발달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 내 운명을 내가 원하는 대로 개척할 수 있습니다.

내 운명이 남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즐기지 못하고 의무감에 움직이는 것은 

결코 부지런함이나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의미 없는 기계적인 행동'일 뿐입니다. 


*단순한 동작 하나로 힘들이지 않고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정해 둔 것이다.

*그 물건이 없으면 놀이가 불가능하다.

*사람이 수동적으로 된다. 사람이 주체가 아니라 그 물건이 주체다.

*생각을 잠들게 한다.접할수록 더 많이 필요하다.

이런 특징을 가진 놀잇감이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판매되는 놀잇감에 너무나 많은데, 

이런 놀잇감은 좋지 않은 놀잇감입니다. 

스스로 상상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것입니다. 

그런 습관에 길들여진 아이는 나중에 책상이 낡아서 혹은 

좋은 연필이 없어서, 과외를 못 받아서 공부를 못하겠다고 합니다. 


중심을 잡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은 아직 자기 자신을 잘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확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온통 답이 없는 의문투성이 질문을 던집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걱정하면서 말입니다. 


관계도 자극의 일종입니다. 

혼자가 될 것이 두려운 사람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여기 저기 따라다니니 시간도 없고 거기에 '휘둘려서' 피곤하고,

그래서 작은 것에도 화를 내는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거나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들을 모방하는 행동에 빠지면 

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시간과 정신을 다 소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판단할 시간이 줄어듭니다.

이렇게 집중력이 분산되어 바쁘고 그래서 화가 나는 것이 ADHD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믿는 것이 바로 자기 확신을 심어주는 방법입니다.

의지가 성장하려면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간보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야 합니다.

그런 기회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모방'입니다. 

모방은 강요가 들어간 수동적 따라하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모방은 어떤가요? 따라하고 싶은 것을 내가 결정하고 

내가 따라 하고 싶을 때 따라하는 것을 모방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따라할 것인지, 언제 따라할 것인지를 내가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매우 능동적입니다. 

쓰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려면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만의 생각이 분명하고 그 생각을 당당히 공개할 수 있을 때가 

한글 맞춤법에 유의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맞춤법을 틀리는 사람보다 부끄러운 사람은 할 말이 없는, 그러니까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무언가를 느낄 때 나오는 것이며,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난잡한 경험이 아니라 하나에서 여러가지를 발견하게 하는 경험. 

틀린 것과 맞는 것에 길들여지면 틀리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이 되고,

그 비정상적인 것을 피하는 방법은 말을 아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맹을 기르는 방법입니다.

언어를 알고도 사용할 수 없게 하는 문맹.


언어는 무언가를 몸소 체험하는 가운데 그것에 대해 누군가와 주고받으며 배우는 것입니다.

기계적으로 똑같은 단어를 반복하면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는 인간만이 가진 특권, 즉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맞춤법은 생각을 스스럼없이 공개할 수 있을 때 완성시켜도 늦지 않습니다.

비겁함은 용기가 전혀 없을 때 생깁니다.

우리는 간혹 '조심스러운 사람'을 겁 많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비겁한 사람과 조심스러운 사람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지 알기 위해 용기 있는 사람부터 보겠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용기 내야 할 때 용기를 발휘합니다.

아무 때나 나서지 않는다는 뜻이죠.

만약 때를 가리지 못하고 아무 때나 나서는 것이라면 

그것은 폭력성이나 무심함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니 용기 있다는 것은 아무 때나 나서는 아둔함 대신 조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안'하고 있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자식을 '못난 아이'로 보는 나의 불신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합니다.

믿음과 확신 없는 부모의 자녀는 중심이 잘 잡힌 사람으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내 자녀를 모자라게 보는 것은 내 자녀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를 이미 접어버린 것입니다.

내부에 존재하는 자아가 흔들려 중심을 잃고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멀미나는 세상입니다. 


냄새를 맡고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는 것은 어른들로부터 배운 학습에 의한 것입니다.

성장 과정에서 어떤 냄새를 얼마나 자주 접하느냐, 

주변 환경에서 그 냄새가 어떻게 평가되느냐에 따라 우리 머릿속에 깨끗하고 더럽다는 것을 학습합니다. 

'이렇게 생긴 것은 이런 냄새를 풍긴다'는 식의 이론으로 배운다면 그것은 편견과 선입견을 갖게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숨겨진 냄새에 속으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코로 들어온 냄새가 좋은지 불쾌한지 구분할 수 있는 기능을 성장기에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해야 합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지 않으면 후각이 마비된 상태로 사는 것입니다.


알베르트 수스만에 의하면 후각이 마비된 사람들은 결국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입니다.

깨끗한 곳이란 숨길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거짓말할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그곳이 집이어야 합니다. 

집안에서만큼은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시작해 모두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 가리지 못하는 이유는

환기가 안 되는 곳에서 후각이 마비되어 '원래' 그러는 줄 아는 것입니다.

정말로 '원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원래'의 것, 그러니까 전통과 본질을 되찾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원래' 안 그랬던 그것이 왜 지금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울리던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 잠시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쐴 때 가능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비교적 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세요. 

그래야 마비되었던 후각이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직접 맡아보지도 않은 냄새를 책을 통해 기계적으로 학습하여 

머리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냄새를 본연의 냄새를 맡는 것입니다.

말로 '안 된다, 더럽다, 하지 마라'라고 이야기하며

아이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부모가 교육의 현장에서 교사가 정신적인 청결을 유지하면 됩니다.

속이거나 기만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죠. 


미각을 건강하게 발달시키는 방법은 성장기에 어떤 음식을 먹든 

그 음식을 음미하여 먹을 수 있는 식습관을 갖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음미하기 위해서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음식으로 이루어진 뷔페식이 아니라, 

소박한 식단으로 그 음식 안에서 다양한 맛을 느끼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갈아서 후루룩 넘기는 것이 아니라 오래 꼭꼭 씹으며 음미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인위적인 맛에 길들여지는 것보다 그 본래의 맛을, 진짜의 맛을 보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부릅니다. 후각처럼 미각도 의식적으로 환기시키며 도덕적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신없이 주어지는 인상을 받기만 하고 배설을 못하거나,

자극적인 인상은 흡수를 못한 채 몸만 버리고 토해 버립니다.

판타지 놀이는 '내가 느껴서 원하는 것을 내가 알고 그것을 위해 내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게 안되는 이유는 어려서 판타지 놀이를 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자기 표현이 허락되지 않는 환경에서 지냈거나

똥과 된장을 구분할 수 없이 난잡하게 많은 인상들로 가득한 환경에서 지낸 것입니다. 

경험한 것들을 소화해내지 못하게 하는 환경에서 성장한 것입니다.


'왜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는 건지, 왜 무언가를 꼭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나요?

자기가 원해서 하는 것인지 남이 원하는 것을 따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반드시 앞의 질문들을 늘 지니고 다녀야 합니다.


*

좀처럼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일수록 간절히 원하는 법이다.

그것은 사물이든 인간이든 마찬가지다. 

이미 손에 넣어 익숙해졌기에 싫증이 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싫증이 나 있는 것이다.

손에 넣은 것이 자기 안에서 변하지 않기에 질린다.

즉, 대상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흥미를 잃는다.

결국 계속해서 성장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쉽게 싫증을 느낀다.

오히려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은 계속적으로 변화하기에 

똑같은 사물을 가지고 있어도 조금도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니체의 말>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계산한 뒤에 그 행위를 하게 되면 거기에 몰입할 수가 없습니다.

"이 일이 가치 있는 것이니까 이걸 해야지"라고 마음먹는 순간 그것은 의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마음 먹은 대로 움직이면 아무리 움직여도 힘들지 않기에 

이때 육체적 편안함과 정신적 행복감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어디로 가길 원하는지 알지 못하면 남의 삶을 모방하기 위해

늘 전전긍긍하며 채워지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이 시간을 두고 무언가를 꾸준히 해서 자부심을 갖게 되는 그런 행위를 한 적이 없으면서,

자녀에게 당장 결과물을 바라는 것은 모순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안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과정이 있어야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녀를 기다려 줍니다.

자녀가 끝까지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는 그런 부모를 존경합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그런 인품을 존경합니다.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거나 경험하며 크는 것은

나중에 드러날 결과물을 위해 굉장히 중요합니다. 단, 원하는 것이 단순히 남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방으로 시작된 일일지라도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

우리의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정말로 분명히 보는 일'이다. 

그것은 바깥사물뿐만 아니라 내적 삶에 대해서도 그렇다.

우리가 나무나 꽃이나 사람을 본다고 말할 때, 우리는 정말 그들을 보는 것일까?

아니면 그 말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보는 것일까?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무언가를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가진 인간은 그렇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순전히 내가 원해서 스스로 이해한 것은 즐겁습니다. 

하지만 외부의 압력에 의해 또는 불순한 목적이 있어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해하기 싫어질 뿐만 아니라 그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상대방의 표정이나 성격, 감정상태 등을 파악해

접촉한 것이 어떻다고 느끼는 촉각, 그리고 어떻게 볼 것인지 판단하는 시각.

상대방에게 맞는 유머를 사용하며, 타인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는 열린 자세의 미각.

분위기를 보고, 분위기(상황)를 냄새로 감지하는 후각.

유머를 해도 될 때와 하지 말아야 될 때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움직여야 할 때를 알아차리는 고유운동감각,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는 균형감각.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과 동시에, 타인의 입장과 같아지려는 자세로 행동하여 공감을 얻는 열감각.

누군가가 비판적이거나 공격적인 말을 하면, 소리를 듣는 청각, 말을 듣는 언어감각,

말에 담긴 사고를 듣는 사고감각, 말을 하는 사람이 왜 그런 언행을 보이는지 그 사람을 파악하는 자아감각,

그것을 고통으로 여겨 의기소침해지지 않고 유머로 받습니다. 고통을 견디고 그것을 극복하는 생명감각


내가 움직인다는 것은 타인의 언행에 쉽게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나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을 위해 혹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나의 형편에 맞게 행합니다.

여러분의 몸에 감각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과 

다른 사람 역시 여러분과 같이 감각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내 감각으로 타인을 함부로 움직이려 한다거나 타인의 감각에 일방적으로 의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12감각을 깨워야 내 아이가 행복하다, 김현경, 물병자리

작가의 이전글 [손꼽은]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