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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눈 Apr 20. 2019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동방인이 말하는 "정情"이란 개념은 반드시 "대의大義"와 관련이 있다. ...

정情은 반드시 사회적 차원을 갖는 것이다.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의 걸음을

좋은 의미에서의 낭만에 빗대어 반가워했던 반레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전에 이성복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낭만적 태도에 대해 절절하게 찔림이 있던 기억도 같이 떠올랐다.


"낭만주의자들은 집에다 싸움판을 벌여놓고 가출한다. 

 그들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이미 제기된 문제를 미루거나 포기하고 새로운 문제를 찾아나선다.

 그들이 신비에 정통한 듯이 행동하는 것도 그곳에서는 안심하고 나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를 살고 싶다면서, 정작 이미 여기에 있는 하나님나라를 누릴 줄 몰랐던 때가 있었다.

문제적 상황에 들어가서 문제와 나를 구분할 새 없이 찰싹, 풀로 붙혀놓고서는

문제/나/문제/나/문제... 켜켜히 쌓아놓고 짓눌렸다.

문제를 고민하는 나에 천착해 계속 새로운 문제를 거듭해 찾아나섰고,

살림은 달라질 것 없이 관념만 방만해졌다.

'완벽한 조화는 존재하지 않는(94쪽)'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한몸살이하면서 스스로, 함께 지키려는 애쓰는 것,

소중히 간직하려는 것, 떠올리니 철저히 보수적 삶이라 생각 든다.

중용을 읽고, 이성복 시를 다시 읽으니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도 보인다.


"나무가 '되기 위해' 씨앗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된 것들은 또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영원히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 끝내는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 때문에 생을 망쳐서는 안된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이성복>


<중용, 인간의맛 / 서론,1장> 201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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