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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NP Nov 24. 2015

여행, 다시 쓰기 -전통시장-

장바구니 속에 담아온 추억 한보따리

“아지매, 조금만 더 주이소.”

“아따, 내는 뭐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아는 갑다.”

“그라지 말고. 쪼매만 더 담으소.”

“에고, 고집도.”


며칠 전, 취재 차 찾았던 경북 의성 5일장에서 보았던 한 장면입니다. 백발성성한 할머니 두 분이 콩나물시루를 앞에 두고 주거니 받거니 언성을 높이고 계셨습니다. 주네, 못 주네 두 분은 한참이나 그렇게 티격태격하셨습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던가요. 오가던 아주머니들도 한 마디씩 거드시더군요. 


‘그만하면 마이 준기다’

‘아이다, 이 만큼은 더 주야제’ 


누구는 손님 편을, 또 누구는 주인 편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5분 정도 이어지던 실랑이는 장터에서의 흥정이 늘 그렇듯, 인심 좋아 보이는 주인 할머니의 한 움큼 ‘덤’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건 ‘남는 것 하나도 없다’며 투덜거리시는 주인 할머니의 얼굴에도,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누’라며 야무지게 장바구니를 챙기시는 손님 할머니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정(情)입니다. 우리네 장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정’ 말입니다.


어릴 적 저희 집 앞에도 제법 큰 시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규모는 제법 컸지만 여느 동네마다 하나쯤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시장이었지요. 그곳에는 구름처럼 푹신해 보이는 이불이 가득 쌓여 있던 이불가게가 있었고, 냄새만으로도 여기가 어딘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던 신발가게가 있었습니다. 비릿한 냄새가 싫어 늘 저만치 돌아가야 했던 생선가게도, 먹음직스러운 고기 덩어리가 발걸음을 놓아주지 않던 정육점도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통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순대집, 김밥집, 족발집은 어린 저를 가슴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지요. 아, 시장 후미진 곳에 있던, 제가 너무도 싫어했던 닭집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좁은 철창 사이로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던 닭들과 털털거리며 돌아가던 닭털 뽑는 기계는 어린 제게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별스러울 것 없는 이곳에 대한 기억이 어찌 이리도 또렷이 남아있는 걸까요. 학교를 갈 때도,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늘 지나쳐야 했기에 단 한 번도 주의 깊게 살펴본 적이 없는 곳인데 말입니다. 그건 아마도 익숙한 공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적어도 제게 시장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공간 말이지요.


이젠 그 공간이 하나 둘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신문, 잡지에서는 시골 5일장들을 가볼만한 여행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쉽게 찾아갈 수 있던 그곳을 이제는 시간을 내서 찾아가야 하는 형편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시장을 만납니다. 동물원 가듯 부모님 손에 이끌려 시장을 찾습니다. 대형마트에 가면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던 아이들도 시골 시장에만 가면 도축장 끌려가는 소가 되어버리지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알지 못하니까요. 머리 쓰다듬어주며 사탕 하나 건네던 이불가게 할머니의 손길이 얼마나 따뜻한지, ‘고놈 참 잘 생겼다’며 허허 웃어주시던 신발가게 할아버지의 너털웃음 소리가 얼마나 구수한지를 말이지요. 


대형마트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가는 아이들에게 우리 시장의 정겨운 모습을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지 않으신가요. 시골 5일장으로 여행을 가기에 시간도,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요. 멀리 가실 필요 없습니다. 꼭 정선 5일장에 가야, 청도 풍각 장터에 가야 전통시장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관심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혹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재래시장을, 5일마다 꼬박꼬박 열리는 5일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말보다는 정보를 드리는 게 우선이겠네요. ‘전통시장통통(www.sijangtong.or.kr)’은 전국 5일장은 물론 재래시장, 상가들의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사이트입니다. 이곳에서 우리 집과 가장 가까운 5일장, 재래시장을 찾으시면 됩니다.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이런 곳에도 5일장이 서나 싶으실 테니까요. 

자, 정보도 드렸으니 이제 떠날 일만 남았습니다. 준비물은 장바구니 하나면 충분합니다. 오늘 당장 아이들을 데리고 시장으로 여행을, 아니 장을 보러 한번 가보시지요. 부모님은 필요한 물품을 저렴하게 구입해서 좋고, 아이들은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추억 하나 만들 수 있어 좋은 시간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석이조 장터 여행, 그거 별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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