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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NP Jan 17. 2018

좋은 구두는 당신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거야

성수동 수제화 거리

성수동 수제화 거리는 지하철 2호선 뚝섬역와 성수역을 잇는 아차산로를 따라간다. fromSS와 SSST 같은 수제화 거리의 랜드마크가 모두 이 길 위에 있다. 서울역 염천교에서 명동을 거쳐 성수동까지, 그리고 성수동에서 다시 30년을 이어온 우리나라 수제화의 역사는 구두 장인의 손바닥에 잡힌 단단한 굳은살처럼 성수동 골목골목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렸다.



수제화에 대한 모든 것, 슈스팟 성수

성수동 수제화 거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을 출발점으로 삼는 게 좋다. 성수역 2·3번과 1·4번 출구 사이 통로에 구두박물관 ‘슈스팟 성수’가 있어서다. 박물관이라는 거창한 이름 보다는 전시장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소박한 공간이지만, 우리나라 수제화의 역사와 변천사 그리고 구두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 한번쯤 돌아볼 만하다.



1960년대 서울역 염천교에서 시작해 1980년대 명동에서 황금기를 맞은 수제화 장인들이 1990년 이후 성수동으로 터전을 옮긴 사연은 깔끔한 패널 속에 연대별로 꼼꼼히 정리돼 있고, 7일 이상 걸리는 수제화 일별 제작공정 역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장 한켠을 채운다. 2년 이상 칼을 갈아야 중견습이 되고 상견습을 거쳐 선생이라는 호칭을 얻을 때까지 10년 세월이 걸린다는 구두 장인의 삶은 빠름에 익숙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두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도 많다. 구두가 일본어 ‘구쓰(くつ )’에서 유래했다거나,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굴뚝이나 건물 바닥 밑에 구두를 숨겼던 서양의 풍습, 거리에 배설물이 많아 유럽에서는 남자도 하이힐을 신었다는 내용 등이 특히 흥미롭다.



수제화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연장들은 이곳에서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신발 형태를 잡아주는 구두 골로 가득 메운 천장과 모빌 마냥 가는 실에 매달려 연신 흔들리는 낡은 가위와 핀셋, 손망치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된다. 구두 장인들이 기부한 각종 연장으로 재현한 간이 공방과 구두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실물을 통해 단계별로 보여주는 전시물도 인상적이다.


수제화 거리의 핫플레이스, fromSS와 SSST

성수역 1번 출구로 빠져 나오면 본격적인 수제화 거리 탐방이 시작된다. 탐방이라 표현했지만, 그 시간은 수제화의 역사를 더듬는 추억의 시간이 될 수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구두와 만나는 쇼핑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시간이 이 거리를 거니는 모두에게 무척 풍성하고 즐겁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를 대표하는 fromSS와 SSST는 성수역 1번과 2번 출구 사이에 자리한다. fromSS와 SSST는 구두 장인들의 공방이자 매장이다. fromSS가 성동구청에서 인증을 받은 구두 장인의 개별 매장이라면 SSST는 11개 구두 공방이 모여 만든 마을 기업 공동판매장이다. 성수역 일대가 수제화 거리로 조성되기 전인 2011년에 문을 열었으니 SSST는 지금의 수제화 거리를 있게 한 마중물이자 일등공신인 셈이다. SSST는 설립 7개월 만에 매출 5억원을 달성해 행정안전부로부터 우수마을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SSST는 ‘성수 수제화 타운’의 영문 이니셜이다.



SSST가 중저가 제품을 통해 수제화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fromSS는 고객의 개성을 중시하는 고급화를 추구한다. 이는 fromSS에 입점한 구두 장인들의 면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대한민국 수제화 명장1호’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를 제작한 유홍식 명장이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유홍식 명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매장이 따로 있지만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이곳에서 작업을 한다. 수제화의 우수성을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덕분에 수제화 거리를 찾는 이들은 구두 장인이 작업하는 모습을 언제든 볼 수 있다.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구두를 만나는 행복은 덤이다. 짚신에서 영감을 얻어 구두 밑창 위를 짚 꼬듯 비틀어 제작한 구두는 특허까지 받은 유홍식 명장의 대표 작품이다. fromSS에는 모두 7개의 매장이 있으며, 매장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성수동의 신 스틸러, 부자재 거리와 이색 카페들

성수역 1번과 2번 출구를 잇는 거리가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핫 플레이스라면, 4번과 3번 출구를 아우르는 구간은 수제화 거리를 든든히 받쳐주는 주춧돌 같은 곳이다. 성수동에서 성업 중인 350여 개 수제화 완제품 생산업체에 가죽 원단과 힐, 액세서리 같은 부자재를 제공하는 업체와 중간가공업체들이 이곳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부자재 거리 정도가 될 터. 부자재 업체들은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하다 보니 SSST나 fromSS처럼 눈에 쉽게 띄지는 않지만 수제화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아기자기한 부자재들을 창문 너머로 구경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담벼락에 그려진 익살스러운 벽화들도 부자재 거리를 걷는 재미에 한몫 톡톡히 한다.



부자재 거리 끝에 수제화를 테마로 한 구두 테마공원이 있다. 1998년 삼익악기 공장 터에 조성한 근린공원을 지난 2015년 테마공원으로 새롭게 꾸몄다. 구두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구두 장인 동상 그리고 아담한 벤치가 마련돼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서 수제화만큼 유명한 것이 이색 카페들이다. 독특한 개성의 카페가 워낙 많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 가장 ‘뜨는’ 카페라면 1970년대 정미소로 사용했던 붉은 벽돌 건물을 카페로 활용하는 대림창고와 정비소에서 금속공장으로 그리고 다시 카페로 쉼 없이 모습을 바꾼 onion을 꼽을 만하다.


성수동의 카페들 중에서 대림창고와 onion이 많은 사랑을 받는 건 업사이클링(upcycling), 그러니까 리사이클링(recycling)을 넘어 버려지고 낡은 것에 디자인을 더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들 카페는 벽돌 빠진 외벽과 나무 대문, 칠 벗겨진 내벽을 그대로 살려 공간을 꾸몄다. 향 좋은 커피와 입맛 돋우는 메뉴의 든든한 지원사격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독특한 외관과 인테리어를 통해 젊은층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림창고와 onion은 무조건 헐고 새로 짓는, 무조건 높고 화려해야 한다는 천편일률적인 도시 개발의 대안으로도 매력적인 공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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