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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NP Jan 13. 2018

겨울바람 품은 초록 갯벌, 감태

무안 월두마을

전남 무안군 현경면 용정3리 월두마을. 훌쩍 솟아버린 햇살에 개펄이 반짝인다.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을 안고 마을 아낙들이 개펄을 향해 종종걸음을 친다. 선착장 앞에 모인 아낙들은 허리까지 오는 장화에 큼직한 바구니 하나씩을 챙겨들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개펄 안으로 들어선다. 얼마 전까지 섬이었던 그곳으로, 바다가 사라지고 생겨난 그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초록빛 가득 품은 월두마을 개펄

감태가 드러난 월두마을 개펄은 장관이다. 융단을 넓게 펼쳐 놓은 듯 개펄은 온통 초록일색이다. 완만한 갯골의 출렁임을 따라 초록빛 융단도 출렁인다. 사뿐사뿐 그 위를 걷는 아낙들의 모습이 경쾌하다. 흡사 잘 다듬어진 잔디 위를 걷는 것처럼 편안해 보인다. 아무리 익숙하다고는 하지만 한걸음 내딛기도 힘겨운 개펄 위를 어찌 저리 가볍게 옮겨 다니는지…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앉아 감태를 뜯는다.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 감태를 뜯는 아낙들의 손길에는 정성이 가득하다. 여인네의 긴 머리카락을 빗어 넘기듯 손놀림이 조심스럽다. 감태매기 작업은 그렇게 꼬박 3시간 정도 이어진다.


“감태 뜯어서 아이들도 가르치고 밥도 먹고 살았으니 고마울 수밖에요. 그러니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지요. 감태를 뜯을 때는 뿌리를 다치지 않도록 중간쯤에서 끊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욕심낸다고 뿌리 채 뽑아 버리면 그걸로 끝이지요. 뿌리를 다친 과실수가 과일을 맺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이칩니다. 그래서 개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감태는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매생이나 파래와는 다릅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하니까요. 감태를 얻기 위해서는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하고, 한번 뜯어내 뒤에는 그만큼 자랄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합니다.”



왕에게 진상했던 감태의 짙은 향과 맛

청정해역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감태는 예로부터 왕에게 진상했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던 음식이다. 특히 무안의 현경 해제 탄도에서 생산되는 감태가 유명한데,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최초의 습지보호지역인 월두마을의 감태는 최고 중에 최고로 친다.

그런 감태의 쌉싸래한 맛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별다른 양념 없이 간장으로 간을 하고 깨소금과 참기름을 넣어 물회로 먹는 게 가장 좋다. 입맛에 따라 전을 부쳐 먹기도 하고 김처럼 말려 먹기도 하지만 이 역시도 물회로 먹는 것만은 못하다는 게 마을주민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감태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요? 제철에 먹는 것 이상 없지요.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적당히 깨끗이 씻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입니다. 물론 개흙은 깨끗이 걷어내야지요. 그런데 이게 뭐랄까. 너무 깨끗이 씻으려고 박박 문지르다보면 꼭 그만큼의 향을 잃게 되더라구요. 그러니 너무 깨끗이 씻지 말고 적당히 깨끗이 씻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적당히 깨끗이. 듣기에 따라선 참 애매하고 무책임한 말처럼 들리지만 가만히 곱씹어 보면 이보다 지당한 말씀도 없지 싶다. 인생도 그렇지만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 하하며 사는 게 가장 어렵다. 이건 맛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터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중도(中道)’의 맛. 그 맛은 결코 욕심을 부린다고, 혹은 주어진 대로 안일하게 받아들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진달래 향이 감태 향을 몰아낸다

감태는 향이 생명이지요. 지금은 끝물이라 향이 덜 한데. 감태가 한창 날 때는 마을전체에 감태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우리는 그 향기만으로도 봄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지요.

감태는 보통 12월에서 2월 말까지 채취한다. 기온이 낮으면 3월 중에도 채취를 하지만 대부분 2월 말이면 마무리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가 가장 향이 짙고 맛도 좋기 때문이다. 3월로 들어서면 감태 특유의 향이 조금씩 옅어지고 맛도 텁텁해져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갯마을 사람들은 개펄에서 봄을 맞습니다. 바람에서 수온에서 봄기운을 느낍니다. 하지만 밝은 녹색을 띠던 감태가 조금씩 갈색으로 변해가는 것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지요. 재미있는 건 봄이 되면 새싹을 틔우는 뭍 식물들과 달리 감태는 봄이 오면 향을 잃고 시들어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진달래 향이 감태 향을 몰아낸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감태의 향이 옅어지면 그만큼 봄이 가까워졌다는 얘기니까요.

감태가 물러난 개펄엔 어김없이 새로운 생명들이 고개를 내민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세발낙지에서 집게발 곧추세우고 덤벼드는 농게에 이르기까지 개펄은 어김없이 비워진 만큼 그 자리를 채워나간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개펄엔 활력이 넘친다. 생명력이 넘친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을 캐는 아낙들의 엷은 미소처럼 갯마을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이미 봄이 깊이 자리해 있다. 저 짙고 푸른 감태의 지울 수 없는 향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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