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NP Jan 08. 2018

두 발로 누비는 설원

평창 산악스키 체험

뽀득뽀득. 발끝에 전해오는 눈의 느낌이 참 좋다. 눈 위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괜시리 장난기가 발동하는 걸보면 ‘눈’이라는 단어에는 분명 동심을 자극하는 뭔가가 숨어있는 모양이다. 나는 오늘 이 하얀 눈을 원없이 밟아볼 생각이다. 산과 들을 누비며.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밟아본 게 얼마만인지. 이곳은 눈의 고장 평창이다. 명성답게 산이며 들이며 눈닿는 곳 모두가 온통 눈이다. 사실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오는 내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눈 쌓인 산을 마음껏 헤집고 다닐 요량으로 떠나온 길인데,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기 때문이다.


메마른 풍경은 횡계 나들목을 빠져나오면서 은백의 세상으로 바뀌었다. 어디 숨었다 불쑥 튀어나온 것도 아닐 텐데 나들목을 경계로 어찌 이리 다른 풍경이 펼쳐질 수 있는지. 하얀눈을 뒤집어 쓴 산과 들이 푸근한 솜이불을 덮고 있는 아이처럼 평화로워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찾은 곳은 알펜시아리조트 크로스컨트리 경기장. 기본 교육을 위해서다. 산악 스키는 ‘스키’와 ‘산’이 결합된 레포츠이기 때문에 교육은 필수. 이를 위해 을지대학교 스포츠아웃도어학과 교수를 지낸 박경이 씨가 강사로 나섰다. 박경이 강사는 우리나라에 두 명밖에 없는 국제산악스키연맹 국제심판위원이기도 하다.



기본교육은 장비 사용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됐다. 산악 스키용 장비는 알파인 스키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꽤 많다. 특히 스키 플레이트 밑에 씰(seal)이라고 부르는 클라이밍용 스킨을 부착하는 게 가장 큰 차이. 한때 물개 가죽을 사용해 만들었던 씰은 경사지를 오를 때 스키가 뒤로 밀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산악 스키의 핵심 장비다. 바인딩도 알파인 스키와는 다르게 잠금장치를 이용해 부츠의 뒷춤을 스키 플레이트와 고정시키거나 분리시킬 수 있도록 되어있다.



박경이 강사의 설명에 따라 장비를 착용하고 본격적인 실습교육에 나섰다. 우선 걷기. 산악 스키에서는 이를 스트라이딩(striding)이라 부른다. 스키를 11자 모양으로 나란히 둔 채 한 발씩 교차시켜 이동하는 기술이다. 뒷발에 힘을 주고 앞발을 길게 뻗으면 몸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간다. 처음 몇 번은 다리가 많이 들려 방향이 틀어지기도 했지만 곧 적응할 수 있었다.


방향 전환을 위한 킥턴(kick turn)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돌고자 하는 쪽 발을 먼저 회전 시킨 뒤 뒷발을 당겨 다시 11자로 만들면 끝. 하지만 경사는? 결론부터 얘기하면 씰을 부착한 스키는 웬만한 경사에서 뒤로 밀리지 않는다. 덕분에 야트막한 언덕은 스트라이딩으로도 얼마든지 오르고 내릴 수 있다. 오르막 뿐 아니라 내리막에서도 씰은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그렇다고 씰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급경사 구간에선 스키의 옆날을 이용해 오르는 사이드 스텝(side step)을 이용해야 한다.



업힐(up hill)에 성공했으니 이젠 내려갈 차례. 산악 스키에서 다운힐(down hill)은 잘 정비된 스키장에서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아닌 게 아니라 스키 경력이 제법 많은 참가자들도 10미터가 채 안 되는 다운힐 구간에서 이리저리 넘어지기 일쑤다.


산악 스키에서 다운힐이 어려운 건 눈의 깊이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눈길을 걷다 발이 빠져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 이때 스스로 스키를 제어하지 못하면 바로 넘어질 수밖에 없다.



기본 교육 후, 본격적인 산악스키 체험을 위해 황병산(1,407m)에 위치한 켄터키 목장으로 향했다. 마침내 지금까지 배운 기술을 실전에서 맘껏 펼쳐볼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걱정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같은 눈밭이라곤 하지만 막상 날것으로의 산을 대하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울타리 없는 동물원에서 맹수와 마주한 느낌이 이럴까. 그래도 단호하게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건 넘어지고 엎어지며 몸으로 익힌 경험 덕분이다.



선두에 선 박경이 강사가 길을 내면 참가자들이 한 명씩 그 뒤를 따랐다. 배추밭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었다. 길 폭도 좁아지고 경사도 제법 가파른 구간이다. 거리도 꽤 멀어 몇 번이나 숨을 고른 뒤에야 농장 산책로와 이어진 능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반환점까지는 크게 오르거나 내려서는 일 없이 적당한 굴곡을 이루는 코스가 이어진다. 조금 힘들다 싶으면 평지가 나왔고, 조금 지루하다 싶으면 내리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다 뜬금없이 굴곡 없는 인생은 참 재미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건,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평지의 고마움을 알게 된 오늘의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르막을 올라보지 않곤 절대로 평지의 고마움을 알 수 없을 테니. 지금 내 앞에는 또 다른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오르막을 오른다. 지친 다리 잠시 쉬어갈 편안한 평지를 꿈꾸며. 그게 길이고, 그게 인생이다.


<산악스키 초보 가이드>

1. 적절한 복장을 갖추자

너무 두꺼운 옷 보다는 얇은 옷 여러 벌을 겹쳐 입는 게 좋다. 특히 다운자켓은 행동을 굼뜨게 하고 땀 배출이 잘 안 돼 산악 스키에는 적당하지 않다.

2. 장비관리는 철저히

씰은 산악 스키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다. 씰의 접착력이 떨어진면 산행 자체가 불가하기 때문에 사용 후에는 반드시 물기를 제거한 뒤 잘 접어서 보관해야 한다.

3. 바운딩 잠금장치 확인

부츠와 스키 플레이트를 연결하는 바운딩 잠금 장치에 늘 신경 써야 한다. 평지나 언덕에서는 풀어주고, 활강할 때는 다시 잠가야 안전하게 산악 스키를 즐길 수 있다.  


<대한산악스키협회>

http://www.kafsma.or.kr

작가의 이전글 새 빛으로 위로와 희망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