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창평
여행은 점과 점을 잇는 선과 같다. 느림은 그 선을 온전히 즐기는 최선의 방법이다. 담양에선 그래서 최대한 천천히 돌아다녀야 한다. 특히 슬로시티로 지정된 창평에서라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선을 채우는 건 결국 또 다른 작은 점들이니까.
두 발로 꼭꼭 눌러 걷는 삼지내 돌담길
담양 창평의 삼지내마을은 지난 2007년 신안 증도, 완도 청산도와 함께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고택과 고택 사이로 실핏줄처럼 스미는 돌담은 삼지내마을의 명물. 삐뚤빼뚤, 어른 키 높이로 쌓아올린 돌담은 칼로 밴 듯 반듯하게 선 도시의 담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투박하다. 투박해서 정이 간다. 무뚝뚝하지만 인심 후한 동네 아저씨처럼. 굽이굽이 이어진 돌담을 따라 가는 길은 그래서 번잡한 도시를 떠나온 여행자에겐 그 자체가 위로이고 위안이다.
삼지내마을 돌담길은 창평면사무소와 남극루를 끝점으로 한다. 자가운전자라면 공영 주차장이 있는 남극루 쪽에서 출발하는 게 조금 더 여유롭다. 물론 창평면사무소를 들머리 삼아도 돌담길의 멋을 만끽하는 데 아무런 문제는 없다. 창평슬로시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홍보관은 창평면사무소 옆에 있다.
삼지내마을 입구를 알리는 창평현문을 지나면 대형버스도 주차할 수 있을 만큼 널찍한 공영주차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주차장 옆에 당당하게 선 누각은 주민들이 양로정이라 부르는 남극루(향토문화재)다. 팔작지붕 올린 자태가 제법 웅장하다. 창평면사무소 앞 옛 창평동헌 자리에 있던 남극루는 191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새롭게 지었다. 남극루를 지나면 본격적인 삼내마을 돌담길 걷기가 시작된다.
삼지내마을 돌담길은 두 명이 나란히 걸으면 적당할 만큼 아늑하다. 어른 키 정도의 낮은 돌담은 까치발을 살짝 세우는 것만으로도 그 너머의 세상을 훤히 보여준다. 마른 나뭇가지에 덩그러니 남은 홍시 한 알도, 담장 기와 틈에서 해바라기 중인 작은 꽃들도 그렇게 풍경이 된다. 담장 아래 무더기로 핀 구절초와 코스모스는 이 가을 더 없이 반가운 길동무들. 자박자박,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흙길도 매력적이다.
창평면사무소에서 남극루를 잇는 돌담길은 500m 남짓. 조금 더 길게 걷고 싶다면 남극루에서 용원저수지와 상월정, 포의사를 거쳐 창평면사무소로 돌아오는 담양오방길 4코스 1구간 ‘싸목싸목 길(7.2km)’과 연계해도 괜찮다.
삼지내마을은 주민들이 여전히 일상의 삶을 이어가는 공간인 만큼 아무 대문이나 무턱대도 열고 들어가는 무례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화려함을 걷어낸 의연함, 명옥헌 원림
삼지내마을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명옥헌 원림(명승)이 있다. 소쇄원과 함께 담양을 대표하는 조선시대 민간정원인 명옥헌 원림은 백일홍이라 부르는 배롱나무 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연분홍 꽃망울이 팝콘 터지듯 만개하는 8월이면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장관이 연출돼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하지만 늦가을의 명옥헌 원림도 나름의 매력을 지녔다. 화려한 꽃에 가려 주목 받지 못했던 배롱나무의 온전한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내려놓듯 꽃과 잎을 모두 떨군 매끈한 몸매의 배롱나무는 정말이지 어느 조각가의 작품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명옥헌 원림은 조선 중기의 문신 명곡 오희도가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선친의 뒤를 이어 은둔하며 가꾼 정원이다. 연못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옥에 부딪히듯 맑아 정자 이름을 ‘명옥(鳴玉)’이라 지었다. 연못 뒤에 다소곳이 자리한 정자가 바로 명옥헌이다.
오늘의 주인공, 배롱나무는 명옥헌 앞 아담한 연못을 빙 둘러 자리한다. 굵은 몸통에서 뻗어 나온, 이리 휘고 저리 굽은 긴 가지들은 마치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보는 이를 압도한다. 지난 여름의 화려함은 오간 데 없지만 그 자태는 여전히 당당하다. 옆에 선 소나무가 되레 초라해 보일 정도. 옛 선비들이 사랑한 배롱나무는 어쩌면 분홍 꽃을 머금은 여름날의 화려한 배롱나무가 아니라 그 화려한 꽃을 미련 없이 털어내고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늦가을의 배롱나무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마을 입구 주차장에서 명옥헌 원림에 이르는 300m 남짓의 마을길도 참 예쁘다. 특히 왕버드나무 여섯 그루가 신령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후산저수지는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 찾아볼 만큼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주변관광지]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
전라남도 기념물인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는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오희도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을 때 말을 매어둔 곳이라 해서 일명 ‘인조대왕의 계마행수’라고 부르는 나무다. 명옥헌 원림에서 200m 쯤 떨어져있어 함께 돌아보기에 좋다.
주소 :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485-1번지
전화 : 061-380-2820(담양관광정보센터)
홈페이지 : http://tour.damyang.go.kr
입장료 : 무료
창평향교
창평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에는 보물로 지정된 명륜당을 포함해 대성전, 동·서재 등의 건물이 남아있다. 창건 연대는 정확치 않으며 1689년 현령 박세웅이 대성전과 명륜당을 대대적으로 수리해 지금에 이른다. 명륜당 좌우에 우뚝선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가 멋스럽다.
주소 : 전남 담양군 고서면 교촌길 43-11
전화 : 061-380-2820(담양관광정보센터)
홈페이지 : http://tour.damyang.go.kr
입장료 : 무료
[추천 숙소]
한옥에서
창평 삼지내마을 안에 자리한 고택한옥이다.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택(안채)과 뜰안채, 사랑채, 별채 등 신축건물이 어우러져 있어 이용자 입장에서는 취향에 맞춰 객실을 선택할 수 있다. 넓은 마당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단위 이용자들에게도 매력적이다. 커피와 전통 차를 내는 카페가 숙소 안에 있어 친구, 연인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주소 : 전남 담양군 창평면 돌담길 88-9
전화 : 061-382-3832
홈페이지 : www.hanoka.com
숙박료 : 비수기 주중 5만원~/ 비수기 주말 6만원~/ 성수기 주중 7만원~/ 성수기 주말 8만원~
[여행정보]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명옥헌 원림 → 담양 후산리 은행나무 → 창평향교 → 삼지내마을 돌담길
둘째 날 / 한국대나무박물관 → 죽록원 → 관방제림
대중교통정보
[버스] 서울-담양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1일 3회(08:10, 11:10, 17:10) 운행. 약 3시간 30분 소요
자가운전 정보
호남고속도로 창평IC → 창평 요금소 지나 창평곡성 방면 좌회전 → 1.5km 직진 후 창평면사무소 방면 좌회전 → 250m 전방 삼지내마을(창평면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