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길을 달려 만난 초원, 키르키스스탄
강원도 정선에 가면 만항재(해발 1330m)라는 고개가 있다. 정선과 태백을 잇는 이 고갯길은 우리나라에서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20여 년 전 만항재를 처음 찾았을 때, 차를 타고 해발 1000미터까지 올라올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었다. 한데 중국과 키르키스스탄을 잇는 국경길, 토르갓 패스는 그 높이가 무려 3,750미터다. 남한 최고봉인 한라산의 2배, 백두산보다도 1,000미터가 높다. 중국세관을 지나면서, 여행일정을 정리한 수첩을 뒤져 빨간색 볼펜으로 밑줄 쳐놓은 문장을 찾아내 다시 읽었다.
‘체질에 따라 고산병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음’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었다. 여행기를 쓰다보면 ‘한 폭의 그림 같은’이라는 표현을 습관처럼 쓰게 되는데, 정말이지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두고는 ‘한 폭의 그림’이라는 말 외에 그 어떤 표현도 떠오르지 않았다. 산이며 들이며 심지어 하늘까지, 파스텔 톤으로 어우러진 풍경은 정말이지 그림 같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그 황량한 풍경을 보며 따뜻하다 느꼈던 건, 장담컨대 자연이 선물한 그 깊고 풍부한 색감 때문이었으리라.
이곳의 집들은 보호색을 띤 동물처럼 풍경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다. 아담한 집들은 대부분 흙을 이용해 지었는데, 흙벽돌을 쌓거나 외벽에 흙을 바르는 것처럼 단순한 방법을 사용한다. 특이한 건 유목생활을 상징하는 유르트까지 흙으로 지었다는 사실. 유르트는 쉽게 지었다 쉽게 허물 수 있어야 할 텐데, 왜 굳이 흙으로 지었을까.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태어나고, 또 죽는 것처럼 명확한 건 없으니까. 토르갓 패스를 지나면서 많은 무덤을 봤다. 버려지듯 벌판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무덤도 있었고, 가족묘처럼 대여섯 기가 한 데 모여 있는 것도 있었다. 형태도 참 다양했다. 봉분이랄 것도 없이 돌 몇 개 얹어놓은 것이 있는가 하면, 이슬람 사원을 축소해 놓은 것처럼 제법 그럴싸한 모양을 한 것도 있었다. 죽음에 격이 있을 리 없고, 슬프지 않은 죽음이 없을 텐데. 무덤의 규모에 따라 죽은 자의 삶이 평가되는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진실은 아닐 텐데 말이다.
야생 낙타들은 낙타풀이라 부르는 소소초를 참 맛나게도 먹는다. 무시무시한 가시가 돋힌, 심술궂게 생긴 풀을 말이다. 그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알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우걱우걱 소소초를 먹어대는 낙타들이 애처롭기도, 존경스럽기도 하다.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 불리는 키르키스스탄은 전 국토의 90퍼센트 이상이 산악지역으로 이뤄졌다. 평균 해발고도는 2,700미터를 넘는다. 키르키스스탄 국경을 지나 1시간 이상을 달렸지만 고도계는 여전히 3,000미터 언저리를 가리킨다. 웬만한 높이로 떠 있는 구름이라면 저만치 발아래 놓일 높이다. 그랬다. 우리는 지금, 하늘 위를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