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키스스탄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황량했던 산과 낙타풀이 가득했던 메마른 땅이 융단을 깔아놓은 듯 온통 초록빛으로 변했다. 국경 하나 지났을 뿐인데, 사람들이 그어놓은 인위적인 선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어찌 이리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지 신기할 정도다. 이곳은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 불리는 키르키스스탄이다.
산악지역으로 이뤄진 키르키스스탄답게 타쉬라밧 초원 역시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 자리해 있다. 정확히는 3,100미터. 현지인들에게야 평지와 다름없는 곳이겠지만 일행 중 몇몇은 벌써부터 고산병 증상을 호소한다. 나 역시 머리가 묵직한 것이 기분이 영 좋지 않다. 술 마신 다음 날 어김없이 찾아오는 두통처럼.
험준한 협곡을 비집고 들어올 때만 해도 ‘이런 곳에 평지가?’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타쉬라밧 초원은 생각보다 넓었다. 타쉬라밧 초원은 중국과 키르키스스탄을 오가던 대상들의 쉼터였다고 한다. 물이 있고 평지가 있으니 먼 길 오가는 대상들에게 이보다 좋은 쉼터는 없었으리라. 오늘은 유목민들이 생활하는 유르트에서 하룻밤 묵을 예정이다. 유르트는 유목민들이 생활했던 이동식 천막을 가리키는 말로, 몽골에서는 게르라고도 부른다. 원통형 천막에 둥근 지붕을 올린 유르트는 마치 거대한 냄비를 닮았다.
일행 중 막내인 A의 모습이 몇 시간째 보이지 않았다. 타쉬라밧 초원에 도착한 뒤 개울 너머 산을 오르는 모습이 목격되기는 했지만,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를 1시간.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서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현지인들은 이곳에 아직 늑대가 있다는 말로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현직 구급대원인 B를 중심으로 급히 구조대를 꾸린 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또 1시간이 흘렀다. 피 말리는 그 시간동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A를 발견했고, 별 이상 없다는 반가운 소식이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랜턴 없이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힘겹게 산을 내려오는 A의 모습이 보였던 건 다시 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많이 지쳐있었지만, 건강에는 별 문제 없어 보이는 A의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서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죄송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A에게 나는 어깨만 가볍게 토닥여 줄 뿐 마음속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 ‘고맙다’
타쉬라밧 초원에서 카라반사라이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카라반사라이는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이 묵었던 숙소다. 요즘에야 호텔이나 모텔 등 다양한 숙소가 있지만 당시에는 카라반사라이만이 대상들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아직도 이란 등 몇몇 나라에는 숙소로 사용하는 카라반사라이가 남아있다는데, 이곳의 카라반사라이는 이제 숙소로 사용하지는 않다고 했다. 박제된 공간으로 남은 그 모습이 마치 흔들의자에 앉아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인처럼, 무척 쓸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