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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NP Aug 24. 2015

여행, 다시 쓰기 -구미-

사람 사는 이야기로 가득한 길 -일선~비봉산-

사람 사는 이야기로 가득한 길


일선리 문화재마을에서 옥성 자연휴양림을 거쳐 선산에 이르는 길엔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안동 양반네들이 머나먼 이곳 일선리까지 와서 둥지를 튼 사연이며 봉황을 닮은 비봉산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길을 오갔을 수많은 사람들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친근하다.  이야기뿐 아니다. 길은 걷는 재미도 있어야 한다. 한데 이 길은 걷는 재미까지 두루 갖췄다. 고택이 늘어선 고샅을 지나고, 물비늘 예쁜 강변을 따라가기도 한다. 까까머리 동생을 데리고 풀피리 불며 넘었던 추억의 오솔길은 또 어떤가. 이 정도면 10점 만점에 10점도 아깝지 않다.   


수몰민이 꾸민 양반마을, 일선리

이른 아침, 낙동강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마을 전체를 뒤덮는다. 화려한 가을빛은 간 데 없고 꿈결 같이 아련한 풍경만이 눈앞으로 다가선다.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을 보는 듯도 하고, 잘 그려진 수묵화를 마주하고 있는 듯도 하다.


해평읍 일선리. 1987년 안동의 전주 류씨들이 임하댐 건설로 수몰된 고향을 떠나 새롭게 터 잡은 곳이다. 본래 이곳은 사람 사는 마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논이나 밭도 아니었다. 그저 냉산(태조산) 기슭에 기대어 있는 너른 구릉지에 불과했다. 오지 중 오지로 꼽히던 이곳에 안동 양반들이 둥지를 틀면서 마을이 생겼고, 일선이라는 이름도 생겼다. 1988년의 일이다. 타 지역 양반을 위해 당시 선산군이었던 구미시의 지도가 바뀐 것이다. 그럼 안동의 양반들이 이곳 일선리를 주목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딱 봐도 명당아인교. 뒤로 산이 받치고, 앞으로 강이 흐르고. 이기 제대로 된 배산임순기라. 그리고 뭐라 카더라. 여게가 등과에 급제하는 좋은 땅이라 카든가.”


선산은  오래전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불렸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 절반은 일선에 있다’고 했다. 일선은 신라시대 선산의 옛 지명으로 조선시대 군현제 개편에 의해 1413년(태종 13) 선산군(善山郡)이 되었다. 이후 군내 구미읍이 구미시로 승격됐으며, 1995년 1월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일선리의 일선은 선산의 옛 이름. 우연치고는 예사롭지 않다.


“물가에 터 잡았다 낭패 본 사람들 아입니꺼. 임하댐 수몰민 중에는 이웃한 안동댐을 피해 새로 정착한지 10년이 못돼 다시 집이 수몰된 이들도 많았다카데예. 그래서 다시 물가에 터 잡는 기 썩 내키지는 않았을 깁니다. 전주 류씨 사이에 ‘버들은 물가에 살아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생겨난기라예.”


현재 이 마을에는 80여 집이 모여 산다.  그중 전주 류씨가 대략 70채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다른 성씨들이다. 다른 성씨 대여섯 집도 임하댐 때문에 안동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다. 일선리에 고택이 많다 보니 사람들은 이곳을 ‘일선리 문화재마을’ 혹은 ‘일선리 문화재단지’라고 부른다. 마을에 있는 주택 중 수남위종택을 포함해 10점이 도지정 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고샅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마치 양반이라도 된 듯 발걸음에 여유가 묻어난다.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에라도 돌아온 것처럼.


낙동강을 따라 걷는 강변길

마을 앞 교차로만 지나면 이내 낙동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강물 위로는 여전히 짙은 안개가 깔려있다. 강변에 자리를 잡은 강태공은 세월을 낚는지, 물고기를 낚는지 참 여유로워 보인다. 그 여유로움이 부러워 강변으로 내려선다. 급할 거 하나 없으니 저 강태공처럼 나도 세월이나 낚아볼 요량이다.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과 귓가를 스치는 바람. 조금만 돌아가면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데, 왜 그리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일선교를 지나 생곡삼거리까지는 편도 일 차선의 지방도를 따라간다.  곁방살이하듯 찻길 한켠을 빌어 걸어야 하지만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걷기에 불편하지는 않다. 급한 차들은 곧게 뻗은 선산대교를 이용하니 이 좁은 길로는 마을버스나 경운기 정도만 지난다. 아담한 시골정류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버스를 기다린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세월을 낚는 강태공의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새 빨라진 걸음을 다시 한 박자, 아니 두 박자 정도 늦춰본다.


생곡삼거리에서 옥성면 방면으로 방향을 잡는다. 다시 낙동강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잠시 헤어졌던 길동무를 만난 듯 반갑다.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걷는 산길도 좋지만 흐르는 강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기분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맡아져 오는 비릿한 민물냄새가 기분까지 상쾌하게 만든다. 마을 고샅과 제방길을 번갈아 걷는 이 길은 옥성면사무소가 있는 옥성삼거리까지 이어진다. 옥성삼거리에서 옥성 자연휴양림까지는 2km가 채 되지 않는다.


봉황을 닮은 산, 비봉산을 넘다

옥성 자연휴양림은 비봉산에 기대어 있다. 비봉산(飛鳳山)은 글자 그대로 봉황이 나는 형상이다. 비봉산을 위에서 보면 봉황이 동서로 양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목이 남쪽인 선산읍으로 향해 있다. 봉황의 입이 옛 선산군청사(현 선산출장소)를 물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선산에 인물이 많이 나는 것에 대해 이 같은 풍수를 근거로 제시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한다.


“비봉산이예? 선산, 아니 구미의 자랑이지요. 남쪽엔 금오산이, 그리고 북쪽엔 비봉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이 구미가 이리 잘 사는 것 아니겠는교.”


이처럼 비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산이니 비봉산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애정남다르다. 봉황이 날아갈까 염려해 여러 비보책도 마련해 뒀는데, 남쪽에 있는 고아읍 황당산에 그물을 친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망장(網障)’이라 했고, 봉은 수컷이고 황은 암컷이니 동네 뒷산을 ‘황산(凰山)’이라 이름 붙여 짝을 지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나무 열매만 먹는 봉황을 위해 죽장리(竹杖里)에 대나무를 심었으며, 오동나무에 집을 짓는 봉황을 위해 비봉산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화조리(花鳥里)라는 마을이름 역시 봉황을 즐겁게 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휴양림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산세를 살핀다. 들은 건 있어도 보는 눈이 없어 영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래도 순하게 넘어가는 능선의 모습은 참 멋스럽다. 옥성 자연휴양림 내에는 다양한 산책로와 등산코스가 마련돼 있다. 그중 매표소에서 주아지를 지나 옛 오솔길을 이어지는 코스로 방향을 잡는다. 숲속의 집이 모여 있는 4 주차장을 지나면 포장도로가 끝나고 옛 오솔길이 시작된다. 선산읍에서 옥성면까지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 길을 따라 선산을 오갔다. 누구는 등짐을 짊어지고, 또 누구는 책보따리를 두르고 넘었을 이 길. 고되고 고된 길이었지만 그래도 꿈이 있고, 희망이 있어 발걸음만은 가벼웠을 것이다.  


가파르게 이어지던 오솔길은 임도와 만나 잠시 숨을 고른다. 임도 너머 오솔길은 계속 이어지지만, 정상을 밟을 생각이 아니라면 여기서부터는 임도를 따라가는 게 최선이다. 오솔길에서 갈라진 임도는 비봉산 산허리를 따라 선산청소년수련관 입구까지 4km 정도 이어진다.         


글 사진 정철훈(여행작가)



친절한 여행 팁!!
주아리 임도는 비봉산을 동서남북으로 가른다. 그중 대표적인 코스가 주아리에서 선산을 잇는 8.2km 구간이다. 임도는 옥성 자연휴양림 매표소 못 미쳐 있는 휴양림 입구에서 시작한다. 휴양림을 가로지르는 임도는 자연의 집이 있는 곳에서 덕천리 방면으로, 그리고 옛 오솔길과 만나는 곳에서 초곡리 방면으로 갈린다.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마련돼 있지만 자칫 길을 놓칠 수도 있으니 항상 선산방면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움직이는 게 좋다.


걷기 여행코스
1일 차 : 일선리 문화재마을 → (0.4km) → 일선교 → (1.1km) → 생곡삼거리          → (6.7km) → 옥성삼거리 → (1.7km) → 옥성 자연휴양림
2일 차 : 옥성 자연휴양림 → (1km) → 임도 → (0.1km) → 갈림길 선산방면          우측방향 → (3.6km) → 갈리길 직진 → (0.5km) → 선산청소년수련관
Travel Info
1. 가는 길
- 승용차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 IC → 죽장교차로 우회전 → 68번 지방도 → 생곡교차로 좌회전 → 일선교 → 일선리 문화재마을
- 대중교통
구미버스터미널에서 20번 버스 → 선산터미널 → 23번 버스(환승) → 일선교 정류장 하차  선산 콜택시 : 054-481-9999


2. 식사
해평읍에서 선산읍에 이르는 걷기 코스 중 임도를 지나는 옥성 자연휴양림 구간을 제외면 식당이 더러 있다. 해평읍 일선리 문화재마을 부근에 멍석(장어구이, 054-474-0794)과 순덕이네(매운탕, 054-474-1333), 선산읍에 선주한정식(된장찌개, 054-481-2103)이 있다.   


3. 숙박
옥성 자연휴양림에는 숲속의 집 10동과 자연의 집 6동이 마련돼 있다. 숲속의 집은 26㎡형과 39㎡형 그리고 46㎡형으로 이뤄져 있으며, 자연의 집은 19㎡형과 27㎡형으로 구성돼 있다. 이용요금은 숲속의 집 26㎡형이 기준인원 4명에 비수기 4만 9천 원 성수기 7만 원, 39㎡형이 기준인원 6명에 비수기 6만 3천 원 성수기 9만 원, 46㎡형이 기준인원 8명에 비수기 7만 7천 원 성수기 11만 원이다. 자연의 집 19㎡형은 기준인원 2명에 비수기 3만 5천 원 성수기 5만 원, 27㎡형은 기준인원 4명에 비수기 5만 원 성수기 7만 원이다. 야영데크는 1일 6천 원. 자연휴양림 내에는 매점 등 식재료를 구입할 곳이 없으므로 당일 저녁식사와 익일 아침식사를 위한 식재료는 왜관읍 등에서 미리 준비해서 움직이는 게 좋다. 문의 054-482-5649, www.gumih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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