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by Orca

회사에 말투가 유난히 따뜻한 과장님이 있다. 직급 차이가 꽤 나는데도 언제나 존칭을 쓰고 누구에게든 예의 바른 태도를 잃지 않는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말 잘 보내셨나요” 같은 인사를 습관처럼 건네고 프로젝트가 잘 풀리지 않거나 불편한 상황이 생겨도 화를 내는 법이 없다.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어렴풋이 안다.


처음엔 그게 낯설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었고 저런 태도는 그런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을 자주 보다 보면 말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긴장이 풀리고 말끝이 따라 부드러워진다. 나도 모르게 메신저에 인사를 덧붙이게 되고 말투를 한 번 더 고르게 된다.


말이라는 게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걸 체감하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말은 분위기를 만들고, 그 분위기는 다시 사람을 바꾼다. 내가 먼저 웃으면 상대도 웃을 준비를 하게 된다. 나의 태도가 상대에게 영향을 주고 그 기대에 반응하면서 둘 사이의 방향이 정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걸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른다. 기대가 현실을 이끈다는 이론인데 꼭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도 일상에서 작게나마 작동하는 것 같다. 말과 말 사이, 태도와 반응 사이에서 생기는 이 흐름이 좋아서 누군가에게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나도 먼저 그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전부터 오랫동안 가까이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함께 운동하고 자주 만나고 별말 없이도 편안했던 사이였다. 그런데 성인이 된 뒤부터 친구가 어울리는 사람이 달라졌고 말투나 행동도 조금씩 바뀌었다. 예전엔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타인의 얘기를 쉽게 꺼내거나 필요 이상으로 날이 서 있는 말을 하곤 했다. 듣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는 순간이 많아졌다.


그걸 그냥 넘기기보다는 한마디라도 조심스럽게 해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과장님처럼 누군가의 말투가 분위기를 조금씩 바꾸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그런 방식으로 다가가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요즘 네가 예전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라는 말을 꺼냈다. 들리는 톤이 부드럽기를 바랐고 말끝도 여러 번 고쳐가며 조심스럽게 전했다.


하지만 친구는 “내가 너한테 그런 것도 아닌데 예민하게 군다”며 오히려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 대화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 반응도 충분히 이해된다. 내가 보기에 친구는 변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꺼낸 말은 친구 입장에서는 설명할 필요 없는 자신에 대한 평가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한 말이었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순간엔 그런 조심스러움조차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됐다. 내가 진심을 다해 고른 말이라고 해도 말이라는 건 늘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말은 선물과 같아서 꼭 돌려받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그 순간 누군가의 기분이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밀게 된다. 그러나 어떤 선물은 받는 사람이 원치 않을 수도 있고 그 마음 자체가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토록 친하던 친구와는 며칠을 곱씹었던 한 마디로 인해 멀어졌다. 그냥 넘겼으면 지금도 잘 지냈을지도 모른다. 말은 한순간인데 그 뒤로 생긴 거리는 꽤나 길었다. 가끔은 괜히 얘기했나 싶기도 했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내가 착각한 걸까. 그렇게 생각이 이어질 땐 말을 건넸던 마음 자체가 흐릿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의 마음이 전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잘 닿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생각해서 고른 말은 그 순간 나에게도 영향을 남긴다. 그게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해도, 말이라는 건 그렇게 한 번씩 조심스레 꺼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은 아직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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