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자 장동선 [탐험의 본능이 소중한 이유] 강연을 본 후
며칠 전 지인이 알려준 행사 덕분에 운 좋게 장동선 박사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시작에 앞서 진행을 맡은 이우성 시인이 질문을 던졌다. 어릴 땐 뭐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실패가 두렵고 선뜻 시작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장 박사는 이 질문에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답했다. 두려움은 단순한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가 들며 감각이 무뎌지는 뇌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었다. 어린 시절엔 모든 게 새로워 강하게 기억되지만 어른이 되면 대부분의 일상이 익숙해지고 기억에 남는 장면이 줄어든다. 그렇게 시간은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새로운 상황에 자신을 던지는 일이 점점 더 어렵고 낯설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으로 자신을 던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의 짧은 여행은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한 해를 풍요롭게 채울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자신을 던지라는 조언은 결국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을 전제로 한다. 낯선 자극을 수용할 심리적 여유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자신감,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물리적 조건까지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런 전제를 채울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 타인과의 대화가 버겁거나 여행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는 그 모든 변화가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회는 자연스럽게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을 뒤로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은 키오스크를 마주할 때마다 떠오른다. 어느 순간부터 대부분의 매장에서 키오스크는 주문의 기본 방식이 되었고,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조용히 배제됐다.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주문 하나도 어려운 사람들. 그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는 사람들. 기기를 다루는 능력이 곧 기본이 된 사회에서 그런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식사 한 끼조차 자립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졌다.
AI의 등장은 이러한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했다. 챗GPT는 출시된 지 몇 달 만에 전 세계 수억 명이 사용하는 도구가 되었고, 현재는 월간 사용자 수가 10억 명에 이르렀다는 보고도 있다. 장동선 박사는 향후 10년 안에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회가 펼쳐질 것이라 말했다. 이미 AI는 단순한 보조를 넘어 판단과 결정을 함께하는 도구로 진화했고 그 흐름은 앞으로 더 빨라질 전망이다. 강연 후반부에서 장 박사는 앞으로의 시대에는 기획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했다. 기술과 사람을 연결하고 흐름을 설계하는 이들이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반대로 기획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속도에 접근할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점차 사회의 가장자리에 머문다. 복잡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그 밖에 놓인 이들의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실제로 기술에 대한 접근성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국제노동기구와 UN 통계에 따르면 여성은 디지털 기본 역량에서 남성보다 평균 25% 낮고 같은 직종 안에서도 생성형 AI 활용률이 20% 가까이 뒤처진다. 이는 기술 환경에 대한 노출 빈도나 실무에서의 활용 기회 차이, 그리고 직무별 역할 분담 같은 구조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 있다. 연령이나 교육 수준에 따른 격차도 뚜렷하다. 특히 중장년층은 디지털 기술 습득과 활용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집단으로, 변화에 접근할 기회 자체가 제한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술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안으로 진입하는 데 필요한 전제 조건은 누구에게나 같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작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참여와 비참여 사이의 경계는 점점 선명해지고, 그 선은 소리 없이 사람들을 나눈다.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 속도와 방향이 모두를 품지는 않는다. 우리는 정말 모두에게 열려 있는 구조 안에 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