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행동하게 만드는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두 사람을 떠올린다. 바로 선홍 오빠와 보경 언니다. 두 사람은 성격도 살아가는 방식도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혼자라면 그냥 ‘하고 싶다’ 하고 흘려보냈을 일들이 두 사람 덕분에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다.
먼저 선홍 오빠.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넓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직업 때문에 해외를 자주 다니는 것도 있겠지만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 때문만은 아니다. 오빠는 일상 속에서 이미 세계를 넓게 바라보는 시야를 갖고 있는 듯하다. 책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는다. 두꺼운 소설책부터 짧은 시집, 만화책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음악도 즐기는데, 단순히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공연장을 찾아간다. 영화 역시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즐긴다. 흔히들 화제가 되는 작품이 아니라 개봉 초기에 아직 덜 알려진 영화들을 혼자서 찾아가 보기도 한다.
여기에 취미 생활까지 더해진다. 드럼을 치고 기타를 연주하고 클라이밍을 즐긴다. 가끔은 정말 의심이 된다. 도대체 한 사람이 맞을까? 마치 여러 명의 선홍이 각각 다른 장소에서 제각각 인생을 누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무엇보다 오빠의 매력은 좋은 경험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스스로 좋았던 책 영화 노래를 숨겨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유한다. 때로는 조금 강제적일 정도다. "이건 꼭 봐야 해"라며 밀어붙이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작 그걸 내가 따라 해보면 늘 만족스러웠다. 오빠가 기타 연주 영상을 올리면 몇 년째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쓰던 내 기타를 꺼내보게 된다. 오빠가 영화를 봤다고 말하면 나도 괜히 찜해두었던 영화를 찾아 본다. 추천받은 음악은 며칠 동안 반복해서 들으며 어떤 부분이 좋은지 곱씹어본다. 그렇게 선홍 오빠는 내가 늘 언젠가 해야지 하고 미뤄두던 문화생활을 지금 당장 실천하게 만들어준다. 단순히 무엇을 추천하는 수준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반면 보경 언니는 또 다른 결로 나를 자극한다. 내가 아는 어른들 가운데 가장 어른다운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여기서 어른답다는 건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뜻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그 말에 더 잘 어울린다.
언니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어른들과 함께하는 자리는 늘 어색했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긴장하곤 했다. 그런데 보경 언니는 처음부터 존중하는 태도로 나를 대했다. 무심히 흘려들을 수도 있는 대화에서 나의 상태를 진심으로 물어봐 주고, 내가 편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언니에게는 별 의미 없는 말투와 태도였을지 몰라도, 그 시기에 나에게는 큰 울림이 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더 가까워졌을 때 어느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 아직도 기억난다.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대부분은 젊을 때는 여러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는 식의 의견이었다. 나 역시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려 했는데 보경 언니만은 달랐다. 언니는 내게 조용히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좋은 사람을 만났다면 그 관계에 충실하는 게 더 나아”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보편적인 가치관을 당연하게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기준으로 이야기해준 어른은 언니가 처음이었다. 그 순간부터 언니는 내게 단순한 어른이 아니라 진짜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보경 언니는 말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힘이 있었다. 내가 자취방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불안해하던 일이 있었다. 부모님께는 말씀드리기도 겁나고 혼자 속만 끓이던 상황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언니는 가만히 넘어가지 않았다. 바쁜 와중에도 직접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를 정리해주었다. 그리고는 나중에 “집주인이랑 잘 얘기해놨으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전해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꽉 조여 있던 마음이 풀리며 안도감이 찾아왔다. 단호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나를 안심시켜주는 언니의 모습에서 ‘이게 진짜 어른의 힘이구나’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내게 영향을 주었다. 선홍 오빠는 즐겁게 사는 법을, 보경 언니는 단단하게 사는 법을 알려주었다. 아직 세상에 나온 지 오래되지 않은 나에게 어떻게 삶을 풍요롭게 향유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기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히 두 사람을 묘사하는 글이 아니다. 동시에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글이다. 나를 움직이게 해주고 아직 서툰 나를 챙겨주어 고맙다는 말. 앞으로도 나는 보경 언니와 선홍 오빠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배우며 살아가고 싶다. 삶을 다채롭게 즐기는 혜리 언니처럼, 틀 밖의 사고를 통해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은석 오빠처럼, 그리고 내 곁에서 좋은 태도를 보여주는 모든 사람들처럼 말이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언니 오빠 같은 삶을 닮아가고 싶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함께하며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