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나는 열일곱에 고등학교를 자퇴했지. 내가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너를 알게 되었을까. 너와 함께 교복을 입고 등하교를 함께하고, 모두를 웃음 짓게 하는, 그런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마음을 알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김없이 나는 너를 데리러 너의 학원 앞에 갔어. 너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그 시간이라도 너를 보고 싶었거든. 끝나는 시간까지 네가 있는 건물을 올려다 보았어. 학원이 마치는 밤 열 시, 애들이 나오는 것을 보며 네가 어디 있을까 눈동자를 연신 굴렸지. 그래도 너는 보이지 않았고, 그때 너의 이름이 뜬 전화가 걸려왔어.
남자 친구라는 단어 옆에 있는 네 이름이 너무 낯설었지.
“여보세요.”
전화를 받을 때의 너의 목소리는 이렇구나, 그때 처음 알았어. 낮지만, 아직은 애 티를 벗어나지 못한 목소리. 나는 전화를 받고 네가 보이는 곳을 따라 걸었어. 그리고 오십 미터 남짓, 네가 앞에 있는 것을 보고 전화를 끊었지. 사귀면서도 그 전화 한 통 온 게 신기해서, 한참 신호가 울리는 것을 보기도 했어. 네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떨렸어.
네가 일어나서 씻고 교복을 꺼내 입는 동안, 나는 출근을 했어. 사복을 입고 머리망을 하고 하루에 수십 잔씩 커피를 만들었지. 대부분의 데이트 비용은 당연히 내가 냈어. 내가 돈을 벌고, 너는 학생이니까. 공부를 해야 하니까. 너는 내가 가진 일의 무게를 알지 못했고, 나 역시 공부하는 너의 무게를 알지 못했지. 그래서 자주 만나지 못함에 속상함을 가지기도 했어. 나는 공부보다 돈이 중요했고, 고등학생인 너는, 당연히 돈보다 공부가 중요했지.
아직도 그때의 일이 기억나. 너와 데이트를 하고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길, 너희 어머니께 전화가 왔지. 우리는 서로 만나는 것을 가족에게 말했어. 그리고 자주 함께하곤 했잖아. 그날도 너는 나를 만나고 있다고 말했고. 그러자 어머니는 너에게 웃음 나는 쓴소리를 했어.
“또 수연이한테 얻어먹지 말고, 집에 와서 밥 먹어라.”
너는 그 말을 내게 전했고, 우리는 웃었지. 나와 너를 모두 소중하게 여기는 너희 어머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 그 이후 나는 너희 가족과 자주 밥을 먹곤 했지.
“우리 가족은 젓가락질에 엄격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십구 년간 해온 젓가락질을 고쳤어. 너희 가족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너도 아이를 가르치듯 내게 젓가락질을 가르쳐줬지. 참고로 나는 젓가락질을 배운 적이 없었어. 엄마가 엄격하게 젓가락질을 가르치는 외할아버지를 보고 자기 자식은 그렇게 키우지 않을 거라 했거든. 그 예로 우리 오빠는 아직까지 젓가락질을 잘 못해.
나는 아직까지 네가 가르쳐준 젓가락질을 해. 엄지와 검지에 젓가락을 고정하고 십 일자로. 종종 나는 말해. 다 커서 젓가락질을 새로 배웠다고. 이렇게 작은 습관에도 네가 있구나. 지울 수 없이, 잊을 수 없이.
부끄럽지 않고 싶었어.
나는 너의 가족이 되고 싶었어. 가족이 된다면, 나를 더 사랑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너의 가족이 되도록 노력했지. 너희 어머니를 챙기고, 누나를 챙기고, 너를 챙겼어. 어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란 머리를 갈색으로 다시 염색하기도 했지. 학교도 다니지 않는데, 머리까지 노랗다면 안 좋은 친구일까, 걱정할까 봐.
나를 보는 사회적인 시선들. 아마 그것들이 너희 가족에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학생이 공부를 하지 않고, 돈을 벌고, 음악을 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시선으로 안 좋게 비쳤으니까. 그래서 더 올바르려 노력했고,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어. 누구보다 빨리 일어났고, 늦게 잠이 들었지. 그렇게 노력하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어.
너 역시, 내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 그래서 공부를 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싶다고 말했어. 나를 만나고, 너는 음악을 포기했어. 참 이기적이지. 나는 음악을 하면서, 네가 음악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니. 당시에 나도 어려서, 내가 만난 안 좋은 전 연애의 이유를 음악으로 생각했어. 그냥 그 사람이 내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을 뿐인데, 짧은 경험으로 내릴 수 있는 판단은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 참, 미안해. 지금 네가 무슨 일을 하던, 나는 응원해 줄 수 있는데.
다르게 남을 첫사랑이겠지만,
고삼인 너를 만나면서, 네가 입시가 끝나기만을 바랐어.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을 쭉 적어보기도 했어. 행여 나 네 공부에 방해될까, 그럼에도 너를 보고 싶어서 매일같이 네가 다닌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너를 데리러 갔지.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동안 그 짧은 시간이라도 너를 만나서 좋았다고 말했지.
그렇게 우리는 함께한 모든 순간을 신기해했지. 어색하게 손을 잡고, 얼굴을 보며 웃곤 했지. 부끄러움과 사랑이 조금씩 얼굴로 새어나왔어. 가끔씩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서툰 사과를 하기도 했지. 너에겐 그 모든 것이 처음이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거라 생각했을 거야.
너를 만나기 전, 네가 아닌 사람과 손을 잡아보기도, 사랑한다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쩐지 너와 함께하는 내 모습은 너무 달랐어. 무엇이던 처음보다 더 소중했고, 신기했어. 아마 그런 우리의 마음이 많이 닮아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라. 내가 너를 첫 사랑으로 기억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나는 첫사랑은 사람마다 다르게 남는다고 생각해. 어쩌면 죽기 전에 떠오르는 사람이 첫사랑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기도 해. 어쩌면 나 이후에 너는 다른 사랑을 하면서 내가 첫사랑으로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네가 어떤 말을 하던, 내게 첫사랑은 너였어.
작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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