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도, 사귀지는 못했던 때, 나는 너를 데리고 한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어. 네게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데려간 곳이었지. 표정 없는 네가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어.
드물게 옥상 문이 열려 있는 곳. 우리는 밤에 둘이서 그곳에 향했지. 옥상에는 한 사다리가 있었고, 그 사다리를 오르면 내가 살던 동네의 전부가 보였어. 그만큼 높고, 위험한 곳이었지. 발 하나를 잘못짚으면 그대로 떨어질 것 같은 높이. 두 뼘 정도의 폭을 가진 난간. 우리는 그 끝에 함께 섰어.
사다리를 오른 내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주변을 보았어. 고개를 들지 않아도 밤하늘을 볼 수 있었고, 아래는 또 다른 별빛이 그득했지. 벌써 불이 꺼진 집도 있었어. 잠에 든 걸까,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네가 이 풍경을 보길 기다렸어.
모두 오른 너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지. 너무 높고, 불안한 곳이었으니까. 어떠한 난간과 보호장치 없이, 어찌 보면 세상의 끝과 마주한 곳. 너는 그곳에 주저앉아 풍경을 바라보았어. 아름다운 만큼, 두려워했어. 그에 반해 나는 아무렇지 않았지.
좁은 폭의 콘크리트를 지나면, 앉을 수 있는 넓은 공간. 나를 처음 이곳에 데려왔던 친구도 나를 그곳으로 불렀어. 여기 앉으면 세상이 다 있다고. 우리는 그 끝에 섰지. 나는 너와 앉아서 이 풍경을 보고 싶었어. 그래서 앞장서서 콘크리트 위에 살며시 발을 내딛으며 걸었지. 너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못했어.
네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를 쫓았어. 나는 무서워하는 너를 향해 손을 내밀었지.
“내 손을 잡아.”
너는 거절했어. 분명 그때도 나를 좋아했으면서, 내 손을 거절했어. 그리고 말했지.
“우리가 만나게 되면, 그때로 미뤄두고 싶어. 나는 네 손을 잡지 않을 거야.”
어색하게 내민 손을 거두는 마음이 싫지만은 않았어. 너는 손을 잡는 그 작은 일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거든. 나는 너의 마음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서운함 없이 손을 거둘 수 있었지.
만약 누군가가 창 밖으로 끝에 선 우리를 봤다면, 신고했을지도 몰라. 너무나 위태로워 보였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두려움이 없었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죽는다면, 그것 또한 나의 삶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 삶은 고작 그정도였지.
어렵게 디딘 너의 발에 또 하나의 담을 넘어 우리는 나란히 앉았지. 내 옆에는 네가, 너의 옆에는 내가 있었어. 너는 내 손 하나 잡지 않고 나보다 그 풍경을 바라봤지. 네겐 그날이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솔직하게 나는, 그 풍경보다 네 얼굴을 보았어. 내게 더 빛나던 것은 야경이 아닌 너였거든. 너의 옆모습은 어리고, 서툴고, 미숙했어. 그리고 나는 그 미숙함을 사랑했지.
아마 네 인생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너는 항상 안정적이고 익숙한 곳을 좋아했으니까. 그에 비해 나는 도전적이고 불안한 사람이었지. 두려움보단 호기심이 강한 사람. 우린 그렇게 작은 이탈을 했어. 너에겐 나를 만난 것 자체가 이탈이었을지도 몰라.
너와 헤어진 이후에도, 나는 다시 그곳에 올랐어. 열대우림 같은 강을 사이로 선 높은 건물의 불빛을 구경했어. 그곳에서 담배 두 대를 천천히 피고 너를 떠올리기도 했지. 하지만 발로 지져 끈 불씨처럼, 다 타면 그렇게 연기와 꺼져버릴 줄 알았어. 평생 담배는 손에 대지 않을 것 같은 내가 너와 헤어지고 담배를 폈고, 그렇게 될 거라 어느 것도 예상하지 못했지. 너와의 헤어짐도, 나를 어지럽히는 담배도.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가 살랑거려. 나는 여전히 높은 곳을 좋아해. 자주 높은 곳에 오르고 바로 아래를 바라봐. 떨어지면 어디에 정착할 수 있을까 확인하듯이. 너라면 질색하고 보지 않았을지도 몰라. 만약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 두 뼘짜리 콘크리트 위에 자신을 놓지 않았겠지. 순전히 나를 믿고, 너는 그 위에 섰지.
분명하게 말하지만,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시험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풍경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야. 볼을 스치는 봄바람도,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닿지 않는 높이도 모두 내가 좋아하던 곳이었거든. 너는 내가 특별하다고 말했지. 어쩌면 그 특별함 안에 그때의 기억이 있지 않을까.
지금의 너는 누군가 손을 내민다면, 그 손을 잡는 사람일까.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너의 가느다란 손가락, 짧은 손톱과 온기를 내가 아닌 누군가도 원했겠지. 나의 손을 잡으려던 많은 사람들처럼.
지금 나는 한 사람의 손만 잡아.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손을. 아무리 네 손을 기억해도, 내 손의 감각만 이상하게 둔해진다. 아마 너의 손을 조금은 잊었나 봐. 참 다행이지. 그렇게라도 너를 잊을 수 있다는 것이.
작가 이수연
*우울한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글을 씁니다.*
*스피치, 기고 등 제안은 이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Facebook https://m.facebook.com/leesuyeon0427/
Instagram @suyeon_lee0427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CggovWv6lSj9BCa4sKdUHA?view_as=subscri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