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의 치부

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by 이수연

교복 입은 너의 모습이 좋았어. 나와 같은 나이의 네가 좋았어. 너는 내가 만난 유일한 동갑내기였지. 그 전으로도, 그 후로도 나는 연상을 만났거든.


나의 치부


미성년자였던 내가, 성인을 만났다고 하면 안 좋은 눈초리를 많이 받았지. 내가 처음 만난 남자 친구는 나와 여덟 살 차이가 났어. 십 년 즈음 지났으니, 나도 그 사람의 나이를 지났네. 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그건 내게 치부와도 같았어. 알리고 싶지 않고, 보이고 싶지 않은. 세상이 나를 보는 눈초리를, 나는 알고 있었거든.

그 사람은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를 밀어냈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끌고 가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이를 들먹이며 헤어지자고 말했지. 자신은 사람들의 시선이 싫다고 했어. 내가 화장을 하고 구두를 신었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어. 어른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럼 왜 그 사람을 만났냐고 하겠지. 알아. 당시의 내겐 나를 보호해 줄 어떠한 사람도 없었어. 하지만 나는 보호받고 싶었어. 유리관 안의 장미가 되더라도, 아니, 유리관이 있길 바랐어. 그 사람은 내게 유리관 같은 사람이었어. 남자 친구라기보단, 보호자였지. 사랑이 아닌 필요에 의한 인연이었어. 그럼에도 너와의 사랑을 겪지 못한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왜, 이럴까.


너를 만나며 나는 왜 이렇게 선에서 벗어난 사람일까. 그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 왜 남들처럼 살지 못하고, 남들과 같은 길을 가지 못하고, 잘못된 것 같이, 잘못된 사람인 것 같이. 평범을 바라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을 바란 것도 아니었으니까.

한참을 그런 내 모습을 탓하고, 미워했다. 어떠한 기준에서도 벗어난 것 같은 나는 죄책감 투성이었지. 어렸다는 말로 나를 보호할 수 없었어. 나라면, 그랬으면 안된다고, 그래도 안된다고 늘 말했어. 당당하게 살고 싶었지만, 나를 내세울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지. 숨기고 도망가기에 급급했어. 그래서 너를 돌아볼 용기도 나지 않았어. 차마 네게 갈 수 없었어.


너의 의미


너를 만난 것은, 그래서 내게 좀 더 큰 의미였어. 네겐 첫사랑이겠지만, 나에겐 남들이 인정해주는 첫 연애였거든. 너 이전의 연애는 늘 숨기기만 했어. 가족들에게 성인을 만난다는 걸 허락받았지만, 그래도 항상 움츠려야 했지. 열일곱과 스물다섯. 참 안 어울리는 숫자잖아.


‘연애’라는 틀은 같은데, 너를 만난다고 말하는 것은 참 자랑 같았어. 숨길 필요가 없었고, 숨길 이유도 없었지. 사람들은 우리를 참 사랑스럽게 봤어. 우리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며 식당 아주머니는 앞으로도 이쁘게 만나라고 했지. 너의 가족은 나의 가족 같았고, 나의 가족도 너를 쉽게 받아들였어. 그렇게 내게 너는 자랑이었어.


너는 나의 전 연애 이야기를 무척이나 싫어했지.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아. 그런데 나는 왜 자꾸 그 사람 이야기를 네게 했을까. 작은 질투라도 받고 싶었던 걸까.

너에게 글을 쓰며 고민했어. 근데 내가 바란 것은 질투가 아닌 인정이었더라. 네가, 혹은 너에게 만큼은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 그래도 괜찮다고. 나는 잘못 없다고. 잘못된 방법이었지만, 나는 그때 그 사실을 알지 못했지.

내가 사랑하는 너는 과거의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해주길 바랐어. 내가 어떤 모습이던, 어떤 틀에 있던 나를 사랑해주길 바랐어. 알아. 욕심이지. 어린 욕심. 그런데 그때의 나는 나를 믿지 못해서, 내가 믿는 네가 나를 믿어주길 바랐던 거야. 모든 세상은 나를 잘못된 것이라 말했거든.


너를 만나던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 너를 만날 때는 타인의 사랑을 받아야지만, 내가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 스스로 사랑하거나 보살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지. 그때의 나는 내가 없이 너를 사랑했고, 너는 너를 가지고 나를 사랑했지. 그게 우리의 가장 다른 점이었을 거야.

서운하기도 했어. 나는 내 모든 것을 놓고 너를 보는데, 너는 항상 무언가 주변이나 자신을 챙겼으니까. 왜 너도 너를 버리지 않아? 참 이기적인 말이지. 당시에는 내가 너를 더 사랑해서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너를 사랑하는 게 힘들었나 봐.


있잖아, 너와 헤어지고 네가 꿈에 나올 때면, 너는 항상 나를 탓했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우리의 일을 잊은 거야?”


그 말을 듣는 나는 꿈에서조차 너의 눈을 볼 수 없었지. 아주 까맣고 어두운 꿈이었어. 다시 네게 돌아간다 해도, 나는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없었어. 내가 너에게 남긴 상처는 분명 너무 컸을 테니까.

그런데 얼마 전에, 네가 꿈에 나왔어.


“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잘 살고 있어. 우리 다음에 만나면, 꼭 친구가 되자.”


네가 나에게 말했어. 너의 눈, 너의 목소리, 너의 웃음이 이랬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았지. 지금쯤이면 네가 나를 용서하지 않았을까. 그런 기대도 있었겠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내가 이제 나를, 나의 과거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리고 너를 사랑하고 네게 상처 줬을 나를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


아마 우리가 수십 년이 지나 만나 사랑에 빠져도,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와 너는 헤어질 수밖에 없을 거야. 나는 ‘그때 그랬어야 하는데’라는 후회보다 지금이라도 사랑한다는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어. 지금의 사랑에게,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너를 지나 나는 나아가려 해.



작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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