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열아홉의 우리

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by 이수연

너와 함께한 많은 것들이 있지. 작은 것 하나하나 섬세하게 느껴져. 살아 숨 쉬고 그 숨결이 내게 닿는 것만 같지. 가까이 있지만, 정확하게 형태가 보이는. 너를 떠올리면 그 주변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 같아.


너와 만나던 시절, 한 번은 출근하다가 등교하는 친구를 길에서 만났어. 우리는 동갑인데도 다른 옷을 입고 있었고, 다른 곳을 향했지. 기분이 참 묘했어. 하지만 돈을 번다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나를 걸며 공부하고 싶진 않았거든.

그럼에도 너는 어찌 보면 평범한 사람. 당연하게 학교를 다니고, 당연하게 대학에 진학할. 그런 너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일반에 벗어난 사람이었고, 너는 항상 그 틀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네가, 나를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졌지.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고, 보고 싶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했어. 가끔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지만, 그마저도 사랑스러웠다. 네가 가진 순간, 네가 가진 마음, 네가 가진 모든 것이 부럽고 또 감사했어.


너와 나의 열아홉


그날은 여전히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어. 오전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 앉아있었지. 그러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서 큰 소리로 인사를 했어. 함께 일하는 직원 언니와 손님이 몰리기 전, 이른 점심 겸 아침을 먹고 있었지. 입에 가득 음식을 무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 나는 벌떡 일어나 입안의 빵을 마저 씹고 인사하며 문을 바라봤지.

어쩐지 익숙한 얼굴, 익숙한 체형의 학생이 들어왔어. 자세히 보니 너였지. 너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어딜 봐도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아이였어. 학교에 있어야 할 네가 교복을 입고 내가 일하는 곳까지 찾아온 게 믿기지 않아 황당한 상태로 너를 바라봤지.


너는 어쩐지 낯설고 부끄러운 얼굴이었어. 동갑인 여자 친구가 일하는 카페에 온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겠지. 게다가 네가 있어야 할 학교에서 벗어나서.

내가 멍하니 너를 바라보고 있자 너는 내 앞에 섰어. 키가 작은 나는 포스기 옆으로 빼꼼 너를 신기하게 내다보았지. ‘네가 왜? 여기에?’이런 표정으로.


너는 무뚝뚝하게 내게 작게 포장된 종이를 건넸어. 나는 그걸 받았고 여전히 멍하게 서 있었지. 내 물음을 너도 알아챘는지, 짧고 간결하게 한마디 했어.


“점심시간이라, 몰래 나왔어. 너한테 선물 주려고.
오늘 우리, 만난 지 이백일이야.”


선물을 받은 나는 계속해서 웃음이 났어. 깊은 곳부터 올라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지. 괜스레 부끄러워서 너를 탓하기도 했어.


“뭐야, 생각도 못했잖아.”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돌아가야 해. 더 보고 싶은데 이제 가야겠다.”


네가 머무른 시간은 오 분도 되지 않았어. 정말 선물만 건네고 갔지. 네가 간 뒤 그 포장을 조심스럽게 뜯어보았어. 그 안에는 장미가 박힌 조그마한 머리핀이 있었지. 지금까지도 내가 가지고 있는. 그때보다 색이 바랬고, 이제는 머리핀을 하지 않지만, 수 겹의 시간 동안 나를 떠난 적 없어.

그날, 나는 하루 종일 실실거리며 웃었어. 네가 선물해 준 머리핀을 왼쪽 머리에 꼽고 그 위에 유니폼인 모자를 쓰고 있었지. 머리핀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무뚝뚝하고 융통성 없는 네가 학교를 몰래 빠져나와 내게 왔다는 생각을 하니 기쁨을 숨길 수 없었어. 네가 늘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


우리의 열아홉


그로부터 머지않아 우리는 교복 데이트를 했어.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한 번도 교복을 입은 적이 없었어. 여름에 자퇴를 했기 때문에 내 하복에는 친구들이 남긴 글이 잔뜩 써져있었지. 너와 교복을 입고 데이트하겠다는 생각으로 먼지 쌓인 교복을 꺼내 다렸어. 네가 항상 입고 있던 옷이었는데, 어쩐지 내겐 낯설기만 했지.

춘추복을 꺼내 입고 너를 만나러 가는 길, 나는 조금 부끄러웠어. 학교를 그만두고 교복을 입는다는 것이 쑥스러웠나 봐. 열아홉. 아직은 교복이 익숙할 나이임에도 말이야. 교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는 너도 꽤나 낯설어했지. 그럼에도 연신 “이쁘다.”라는 말을 했어.


교복을 입고 밥을 먹고 손을 잡고 길을 걸었어. 너와 함께 학교를 다녔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하면서. 우리의 가슴팍엔 같은 학교 마크가 곱게 박음질돼 있었지. 너와 나의 많지 않은 접점 중 하나였어.

교복을 입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내가 일하던 매장으로 향했지. 교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고 함께 일하는 분들은 깜짝 놀라 했어. “이게 뭐야~”라는 말을 하곤 했지. 그럴 때면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어.


“저 아직 열아홉이에요! 교복 입을 나이잖아요.”


나와 함께 일하는 분들은 내가 아직 학생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했어. 그래서 내가 교복 입은 모습을 보며 새삼 내가 아직 어리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 맞아. 원래라면 나는, 이렇게 너와 교복을 입고 등교를 할 나이였지. 하지만 현실은 돈을 벌어야 했고, 작업실 월세와 레슨비를 벌어야 했어. 그게 너무 당연해서,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지.


그때의 기억은 마치 꿈같이 남아있어. 낯설고 신기하고 믿기지 않았지. 내가 너를 만났다는 것이, 이런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매일마다 신기했어. 너를 만나 나는 잃어버린 나의 학창 시절을 찾은 것 같았고, 모든 것을 보상받는 듯했지. 너는 내게 사랑, 그 이상의 의미였어.


지금 내 과거를 돌이켜보면, 먼저 너라는 큰 틀이 보여. 너는 나의 꿈이었고, 이상이었고, 사랑이었다. 너와 함께 입었던 교복은 지금도 집 한편에 있어. 여전히 먼지가 쌓인 채. 오늘은 교복을 꺼내 먼지를 한번 털어야겠다. 그래야, 그 순간을 잊지 않을 것 같거든.

지금의 너는 어떤 식으로 그 날을 기억할까. 나와 같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행복으로 남아있어. 너에게도 그 기억이 행복이길. 우리가 함께한 행복을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나는 꽤나 슬플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그 기억을 놓아야 할 자리는 행복이거든.



작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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