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가족의 의미

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by 이수연

지금 너에겐, 어떤 울타리가 있을까. 친구나 가족일까. 지금 나는 친구와 가족, 그리고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있어. 나를 안주하게 만드는 여러 울타리가. 이제야 그런 관계를 가진 것을 보면 나도 참 미숙한 사람이었나 봐. 누구 하나 믿지 못하고, 상처 받길 싫어하는.


과거의 나는 네가 전부였지. 네가 나의 울타리 었고 유일한 보호막이었지, 상처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나는 너를 꽉 잡으려 했어.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고. 이대로 평생, 곁에 있어달라고.


지금의 나는 상처에 많이 둔해졌어. 웬만한 일에 잘 상처 받지 않아. 누군가 나를 떠나고, 또다시 만나도 그것이 하나의 흐름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그만큼 타인에게 기대하지도 않아. 기대는 실망을 만들고, 실망은 상처를 만들거든. 사실 이건, 너를 겪으며 알게 된 일이야.

내가 단단히 다져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하나하나 적기 힘들 정도야. 그런데 돌이켜보면, 너는 꽤나 단단한 사람이었어. 그런 너도,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알았어야 했는데. 이해해야 했는데.


나의 가족


당시에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어. 단순히 역할을 얘기한다면 어찌어찌 떠올렸겠지만, 내게 가족은 지우고 싶고 떠올리기 싫은, 하지만 그리운 것이었어.

그때 나는 나의 가족에 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어. 나를 상처 주고,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었지. 부모님의 이혼과 그 사이에서의 갈등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어. 세상에 나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다는 자만을 하기도 했지. 가장 아픈 것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나의 아픔에 상대의 아픔을 무시하던 때였어. 무지했지. 그리고 나는 너의 상처도 얕게 보았던 것 같아. 중학생 때 아버지를 잃었을 너의 아픔을 알지 못했어. 네가 그 얘기를 하며 울먹일 때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그래도 너는 가족이 있잖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가 집에서 쓰러지는 순간까지, 그냥 술주정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괴로워하고 일어나지 못하셨지.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모든게 조금만이라도 달랐다면 살아계시지 않을까.
나는 항상 후회해."


너의 후회도 나와 같은 것이었니. 이제서야 그 말을 묻는다. 지금 네가 그 말을 한다면, 그 아픔을 알고 안아주었을 텐데. 너의 단어를 마음 깊이 새겼을텐데. 너에게 아버지라는 것이 어떤 존재였는지, 알아갔을텐데.


너의 가족


너와 두 번째 계절을 맞이하던 날, 너희 어머니는 가족 모임에 나를 초대했어. 항상 밥을 사주는 내가 마음에 걸리셨는지, 맛있는 것을 사주 시겠다며 나를 불렀지. 그리고 나는 너희 가족을 만났어. 너와 꼭 닮은 누나와, 조금은 앙상해 보이는 너희 어머니를.

너희 어머니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고민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주머니? 어머님? 뭐라고 해야 좋을까. 그리고 나는 고친 젓가락질로 당당히 음식을 집어 먹었지. 먹는 내내 잘 먹어야 하나, 조금은 남겨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어. 어떻게 보일까, 계속 신경 쓰며 먹었지.


너희 어머니는, 조금 무뚝뚝하지만 세심하게 잘 챙겨주셨어. 마치 너 같았지. 네 성격은 어머니를 꼭 닮았구나, 생각했어. 그 뒤로 나는 자주 너희 집에 초대되었지. 그리고 밥을 먹는, 가족보단 식구가 될 수 있었어.

어김없이 너를 기다리던, 학원이 끝나는 열 시. 너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지.


“엄마가 떡볶이 먹고 싶다고, 같이 갈 거냐고 물어보시는데 갈래?”
“당연하지!”


너희 어머니가 먼저 나와 함께 오라고 말한 것이 기뻐서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갔어. 지역은 기억나지 않지만 떡볶이 집이 쭉 늘어선 곳이었지.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연 떡볶이 집 중 하나를 골라 갔어. 너희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곳이라고 하면서. 한편에는 쓰린 속을 달래줄 아이스크림 기계가 있었지. 아주 달고, 시원했던.

함께 떡볶이를 먹으며 너희 어머니가 말했어.


“아들한테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하면 안 가는데,
수연이를 부르니까 같이 먹을 수 있네.”


나는 그 말이 기뻤어. 어리지만, 우리의 마음이 진심이란 걸 알고 계셨으니까. 이렇게 너와 결혼을 하고, 아주 긴 사랑을 하고 싶었지.

너희 어머니가 우리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니.


“앞으로 헤어지더라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너를 사랑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곳에는 나를 배려한 말도 있었어. 우리 아들 상처 주지 말아라, 하는 이야기가 아닌 서로에게 상처되지 않는 사람이 되길 바라셨으니까. 그런데 그 말 하나도 우리는 지키지 못했구나. 지금 돌이켜 보면 항상 죄송해. 너를 위해서, 나는 그랬으면 안되는데.


너와 헤어진 후 꿈에서 너는 까만 옷을 입고, 까만색 그림을 내게 건네며 나를 질타했지.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어. 일어나고 나서도 한참이고 움직이지 못했어. 지금도 네가 나를 그렇게 원망하겠지. 아주 깊은 곳부터.

네가 너희 어머니를 생각하는 만큼, 나는 너희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을 거야. 너희 어머니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너희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나는 너의 가족까지 사랑했어. 너를 세상에 존재하게 해 준 모든 것에 감사했어. 너의 가족이라고 해서, 내게 소중하지 않은 것은 하나 없었어.


그래서 그날도 한참을 울었어. 분명하게 말할게. 나는 그 무엇도 잊지 않았어. 너도, 너의 가족도, 나의 실수도. 너의 작은 것, 모두. 너를 둘러싼 모든 것을 소중하게 생각했어. 그 날 잃어버린 것은 너뿐만이 아닌, 나의 가족이었어.



작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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