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온통 까만색이던 날

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by 이수연
“우리가 결혼하게 되면 어떨까?”


우리는 종종 이 말을 하며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곤 했어. 우리는 갓 성인이 되었지만, 더 이상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상상하지 않았어. 너의 끝이 내가 된 것 같았고, 나의 끝은 너인 것 같았지.

너의 가족이 되기 위해 나는 부던 애를 썼어. 너희 어머니께 편지를 전하거나, 작은 일 하나 챙기려고 했지. 너희 어머니도 무언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게 연락하셨어. 너에게 말하면 함께 잘 안 가준다고, 너와 함께 먹으러 가자고 종종 연락하셨지. 너도 내 말이라면 들었으니까.


“헤어지게 되더라도,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렴.”


그 말을 지키지 못하게 돼서, 마음이 아프다. 내게, 너에게 남긴 얼마 되지 않은 말이었는데.


얼룩


나는 그 날을 기억해. 너희 어머니는 항상 출장을 가셨지. 타지에서 창고 정리를 하신다고 했어.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하고 또 돌아와서 며칠을 쉬기도 하셨지. 하지만 그 날은 어쩐지 출장이 길어지는 날이었어.

함께 밤거리를 걷던 내가 너희 어머니 안부를 물었지. 너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다 말했고. 나는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너를 닦달했지. 어머니께, 연락 한번 드리라고.


그로부터 다시 며칠이 지나고 너희 어머니는 돌아오셨댔지. 별 일 없으셨냐고 물으려던 내게, 너는 어머니가 입원하셨다고 했지.


“그냥 몸이 좀 안 좋으신가 봐. 병원에 입원하셨어.”

내가 기억하는 너희 어머니는 굉장히 마르셨어. 네가 보여준 옛날 사진과는 많이 달랐지. 얼마 되지 않는 경험으로 불행을 짐작했어. 안타깝게도 내 짐작은 틀리지 않았지.


“유방암 말기래. 몇 달 안 남으셨대.”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네가 나에게 한 말이야. 너도, 너희 누나도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지. 그저 일이 힘들어서 말라가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너는 입시 준비도 그만두고 병원에서 살기 시작했어. 어머니는 임종을 앞두고 계셨고. 철없게도 나는 너를 보지 못하는 것이 속상했지. 너를 보기 위해 나는 너희 어머니가 입원하신 병원에 찾아가고 잠깐 얼굴을 보았어. 분명 힘들었을 시간일 텐데, 너는 나를 보며 웃었고, 괜찮다는 말을 했어.

사실 그때 같이 병원에 갔던 A에게 너와의 이야기를 많이 했어. 나는 너의 입시를 기다렸고, 네가 나를 봐주길 기다렸어. 그런데 그 큰 마음에 혼자 지쳐가고 있었어. 안그래도 힘들어 할 너에게 말하지 못해, A를 붙잡고 그 얘길 했지.

너를 너무 좋아해서, 내 마음이 힘들다고 생각했어. 함께 그 곁을 지킬 수 있는 이유도, 구실도 없었어. 어쩔 수 없는 일들 속에서 나는 너무 무기력했지. 그래서 너를 만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A에게 말했어. 그로부터 석 달도 되지 않아, 너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지.


온통 세상이 까맣던 날


나는 그날, 평소와 같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 달라고 네게 신신당부를 했지.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두 시. 바로 네게 전화가 왔어. 그리고 너는 침착하게 말했지.


“오늘 새벽에, 어머니 돌아가셨어.
장례식장으로 까만 옷이랑 까만 양말 신고 와야 해.”
“아... 왜 바로 연락 안 줬어.”
“너, 일하고 있으니까.”


너희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그날 새벽. 너는 정신이 없었겠지. 그리고 일을 하고 있을 나를 생각해서 연락도 하지 않았지. 그날 나는 네 말대로 까만 옷과 까만 양말을 신고 친구와 함께 장례식장에 갔어.

내 가족이 아닌, 내 지인의 장례식은 처음이었어. 그것도 다름 아닌 남자 친구의.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그렇잖아. 장례식장에 가면 남 일 같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인터넷에 찾아보곤 하는, 그런 나이잖아.

그렇게 너희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내게는 충격적이었어. 네가 어머니를 잃은 상처만큼 크지 않았겠지. 하지만 내가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진짜 가족이, 나와 너에게 이쁘게 잘 만나라고 말해주시던 분이 한순간 돌아가셨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 그렇게 나는 믿지 못하는 발걸음으로 네게 갔지.


그날,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나와 같은 까만 옷에, 까만 양말, 까만 넥타이를 하고 있었지. 어린 나의 사랑은 상주가 되어있었어. 주변엔 어떠한 보호자도 없이. 나는 네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지. 그리고 너희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한참을 울었어. 너는 그날 울지 않았으니까. 내가 울어야 했어.


너희 어머니의 영정사진은 내가 봐온 모습과는 너무 달랐어. 건강하고 힘 있어 보였지.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어. 사람이 마지막이 되면 어떤 모습인지, 그날 알았어. 아마, 내가 그 사실을 먼저 알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겠지. 그 사실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아무것도 아닌 나


이렇게 한 순간, 이렇게 힘없이. 진짜 가족이 아닌 나는 어느 것도 하지 못하고, 어느 것도 해드리지 못했어. 그렇게 너희 어머니는 떠나가셨어. 그때 나는 진심으로 너의 가족이 되고 싶었어. 너의 곁에서 그 슬픔을 나눠 들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면, 너는 이해할까.

나는 너와 함께 장례식장을 지켰어. 손님이 오면 음식을 나르고 치웠지. 너의 친척분들도 모두 만나뵀어. 그곳에서 나는 그저 너의 여자 친구였어. 가족도, 무엇도 아닌 너의 여자 친구.


나와 사이가 좋지 않던 엄마도 그날 장례식장에 오셨지. 일을 마치고 늦은 시간임에도 들리셨어. 그토록 미워하던 엄마인데, 그 순간만큼은 든든하게 느껴졌어. 그리고 이렇게 잃어버릴 것 같았지.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 나도 그날은 엄마에게 와줘서 감사하다고 했어. 엄마는 말씀하셨지.


“좋은 일엔 못가도, 안 좋은 일엔 함께해야 한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말을 지키고 있어. 누군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늘 함께하려고 노력해.


나와 함께 갔던 친구 A와 난 발인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지. 하지만 너는 거절했어. 상을 치르는 내내 너는 울지 않았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그 순간에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래서 친척들과 시간을 보내겠다고 거절했지. 나와 친구는 너의 선택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어. 발인이 있던 그 시간, 나와 친구는 잠들지 않고 너를 걱정했다.


“우리 일은 잊은 거야?”


꿈에서 네가 말했지. 내 마음 깊숙이 있는 너라는 죄책감이 내게 말했지. 나는 그 무엇도 잊지 않았어. 그날의 장례식장도. 울지 않고 우는 나를 안아주던 너를.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검은색이던 우리를. 그날의 습한 날씨도, 무거운 공기도, 짙은 향내도. 어느 것도 잊지 않았어. 잊을 수 없었어.


그로부터 머지않아, 나는 너를 떠나게 되었지. 정말 너무나 어린 마음 때문에.




작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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