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별

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by 이수연

너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고요한 일상이 찾아왔어. 정말이지 그 일이 모두 없었던 것 같은 고요함이었지. 그리고 너는 그간 하지 못한 얘기를 내게 털어놓았어.

항상 너는 그랬어. 누구에게도 하지 않을 얘기를 내게만 말했지. 말 수가 적고 입이 무거웠던 네가 너의 속을 얘기해줄 때면 나는 너에게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았어. 그리고 동시에 그 무게가 조금 무서웠어.


너의 이야기

어머니는 돌아가실 거란 걸 알고 계셨댔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유난히 길었던 그때의 출장은 남겨질 너와, 너희 누나를 위해 주변에 부탁하는 말을 남기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순간, 너는 어머니께 말했댔지.


“엄마, 이제 걱정하지 마.”


어머니도 그 말을 들으셨는지, 눈물을 흘리셨댔지. 그렇게 가느다란 숨이 조금씩 끊겨갔댔지. 나는 그 병실을 본 적이 없지만 어떤 모습이었을지 눈에 그려져. 손을 잡은 너와 너희 누나, 그리고 뒤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친인척들. 그렇게 어머니는 돌아가야 하는 길을 가셨댔지.

재산을 정리하고 집을 정리했댔어. 유난히 장례를 많이 치른 너희 친척들은 익숙하게 짐을 함께 정리했댔어. 너희 사촌 형은 너를 도와 곁에 있어주었고, 장례를 마친 뒤, 나와 너에게 먹을 것을 한껏 사주셨지.


“엄마 장례를 치르고, 납골당에 갔는데 아버지 자리 바로 맞은편에,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더라.
어머니는 그곳에 아버지와 같이 모셨어. 마치 아버지가 기다린 것 같았어.”


신기하게도 너희 아버지 맞은편에 자리가 났댔지. 그곳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함께 모셨다고, 이제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지. 어머니도, 아버지도, 이제 외롭고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고. 너희 어머니 장례식장에 오신 입시 학원 선생님은 네가 대학에 갈 때까지 도와주기로 했다고 말했어. 너는 남은 시간 동안, 어머니의 뜻대로 공부를 하겠다고 했어.


그 후

나는 그 뒤로 너희 집에 갔어. 짐은 정리되어 있었고 냉장고엔 아직 쉬지 않은 음식들이 있었지. 우리 엄마도 너와 함께 먹으라고 음식을 시켜주셨어. 나와 너, 그리고 너희 누나 셋이서 피자를 나눠먹었지. 그리고 티브이가 놓인 장 한편에는 너희 어머니가 남긴 작은 도자기가 있었어.

너는 문을 한참이고 바라보았지. 그 문을 열고, 어머니가 오실 것 같다면서. 돌아가실 것을 알고 재산을 정리하신 어머니 덕에 일이 많이 줄었다고 했어. 그리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기로 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 어쩌면 이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것도 그때였어.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너에게 나는 조급함이 들었어. 너와 함께하고 싶고, 너의 아픔을 나누고 싶고, 너와 가족이 되고 싶었어. 하지만 너는 다시 대학을 준비해야 했고, 군대에 가야 했고, 취업을 해야 했지. 네가 말한 ‘나중에’는 내겐 너무 긴 시간이었어. 그래서 나는 그다음 날, 너에게 말했지.


“우리, 결혼하자.”


당시의 내가 가진 돈은 천만 원 남짓이었어. 열심히 일을 해서 조금씩 모은 돈이었지. 그 돈으로 집을 구하고 결혼하자고 말했어. 어차피 함께할 거라면, 지금 함께하자고. 너의 가족이 될 수 없다면, 너를 우리 가족으로 들일 거라고. 너에게 부족함 없는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었어.

정말, 내가 그 순간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아니. 내가 너와 헤어지지 않기 위한, 얼마나 절박한 마음이었는지 아니. 나를 너무나 잘 알았기에 나는 그 말을 했다. 어린 마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아. 지금 나이가 들어 되돌아봐도 그때만큼 확신에 차 말한 기억이 없을 정도니까.


너는 거절했지. 여전히 ‘나중에’라는 말을 했어. 그 나중이 언제일까. 아직 대학도 가지 못한 우리가 언제쯤이면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기다릴 수 없었어. 지금 결혼하지 않으면, 우리가 헤어질 거란 걸 알고 있었거든. 나는 기다리는 것을 못하는 사람이니까. 조금씩 기다리는 것에 지쳐갔고, 무엇보다 멀리서 지켜봐야 하는 내가 가장 싫었어.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지


시 월이었어. 너의 수능이 한 달 남은. 그날 우리는 헤어졌어. 나는 너를 기다리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고, 너는 지금은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어. 좁혀지지 않는 우리는 헤어지길 선택했지. 그날 우리는 아주 긴 대화를 했고, 눈물을 흘려야 했어.


헤어지던 날, 네가 마지막으로 줬던 편지를 항상 들고 다녔어. 가방 귀퉁이에 항상 그 편지가 있었지. 그런데 막상 지금은 그 편지를 잃어버렸네. 그래도 기억해. 수 십, 수 백번을 보았던 편지거든.

너는 편지에서 나와의 헤어짐을 알고 있었어. 그리고 자신이 이런 모습이길 바라지 않았다고, 이렇게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지. 다섯 장이 넘는 편지의 초반에는 나를 잡으려고 하는 네가 있었고, 중간에는 가족을 잃은 슬픔과 후회가, 마지막엔 체념하듯이 나를 보내주는 내용이 있었어.


변해가는 네 마음과 생각이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지. 그 마음이 너무나 슬퍼서, 수없이 울었다. 분명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헤어지는 걸까. 너도, 나도 상황을 탓해야 했지.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도 있잖아. 수없이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우리는 헤어져야 했을 거야. 너는 미래를 말했고, 나에겐 현재밖에 없었거든.


나는 지금도 현재를 살아. 수없이 변한 것 중 변하지 않은 하나지.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곤 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도, 행동하고 변화할 수 있는 것도 현재뿐이니까. 그래서 과거에도, 미래에도 그다지 상처받지 않아. 그런 내게도 후회가 남아있는 하나, 그것이 너다. 도망치듯 너를 떠나고, 조급해했던.

지금의 나라면 기다려줬을 텐데. 최소한 네가 수능을 볼 때까지만이라도, 대학에 붙을 때까지라도, 곁에서 힘이 돼주었을 텐데. 우리의 사랑을 사랑으로 남길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렸을텐데. 도망치지 않고, 너를 마주했을 텐데.


진심으로, 진심으로 미안하다. 내가 어리고 서투르고 좁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서. 네가 나를 원망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다만 내가 아닌, 너를 위해, 나를 용서했길 바라는 마음이야. 용서받지 못한 사람보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더 아프다는 것을, 이제는 알거든. 차라리 그 원망을 내가 들고 싶어서, 나를 한참 용서하지 않았거든.


너와의 얘기는 여기까지 일 것 같지만, 네가 떠난 후에도 나에게 남은 네 이야기가 있어. 내가 아파한 시간들을. 용서받지 못한 내가 얼마나 엉망으로 살았는지, 네가 봐주지 않아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네가 나를 잃었듯, 나도 너를 잃어야 했다. 너와 함께한 시간, 그 이상으로 나는 너를 벗어나지 못했어. 네가 그러했듯.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보여줄 이야기는 너의 잔해야.




작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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