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네가 기억하는 내 모습은 항상 웃고 있는 모습이겠지. 하지만 나는 굉장히 우울하고 자기 파괴적인 사람이야. 내가 그렇게 자라온 것에는 많은 요인이 있었지. 하지만 지금 나를 치료하는 주치의 선생님은 그게 기질적 문제라고 바라보시곤 해. 그 정도로 아주 깊은 우울감이 내 피와 함께 흘러 뇌와 심장에 들어가곤 하지
내가 그렇게 자라왔던, 날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을 겪고, 나는 사랑에 집착하기 시작해. 나를 보호해 줄 유일한 사람은 엄마라고 생각했지. 엄마가 나를 떠나면, 내 세상은 사라질 거라고.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생각은 그런 것 밖에 없었어. 어쩌면 나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방어기제였을지도 몰라.
그렇게 사랑받기 위해 수년을 노력했지. 하지만 그 가장 사랑한 하나의 세계에게 부정당했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사라지길 바랐지. 그럴 거면 왜 낳았냐고 화내고 소리 질러도 돌아오는 것은 더 큰 상처였어. 나는 너를 바란 적이 없다고.
그때부터 내 세계는 무너졌어. 사랑받아야만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가족에게도 부정당한 나는 가치 없는 것이 되어버렸지. 차라리 처음부터 가족이 없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어. 그렇다면 상실의 아픔 또한 없을 테니까. 가졌기에 슬펐던 것. 어쩌면 너도 비슷했구나.
너무 깊은 우울감에, 학교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 말 수는 더 줄어갔고, 학교에선 친구 하나 없었지. 그런 나는 어딜 봐도 부적응자였어. 사회에,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주 모자란 것. 내가 하나의 사람이라고 조차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그래서 나는 그곳을 벗어나기로 해. 그렇게 음악을 하겠다는 좋은 구실로 학교를 그만두었어. 차라리 돈을 벌고 지옥 같은 가족을 벗어나기로 했지. 그럼 다시 나아질 수 있다고. 그렇게 억척같이 돈을 모았어.
일찍이 결혼을 꿈꾼 것도 그 때문이야. 물론 지금의 남편이기에 결혼한 거지만, 늘 일찍 결혼하고 나만의 가정을 가지고 싶었어. 정착하고 나를 보호해주는 울타리를 가지길 바랐어. 분명하게 나를 계속 사랑해 줄 사람을 찾아서. 나를 보호해 줄 무언가를 찾아서. 그 정도로 나는 혼자 설 수 없이 나약한 사람이었어.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우리는 만날 수 없음을 알았다
우리가 헤어진지 일주일. 나는 어김없이 지하 작업실에 있었지. 그리고 누군가 노크를 했어. 같은 작업실을 쓰는 친구들인가, 하면서 문을 열자 네가 서 있었지. 나는 그대로 몸이 굳었어. 너는 아무일 없다는 듯 내게 인사했지.
“뭐하고 있었어?”
“그냥, 있었어.”
너는 마지막 보았던 때보다 조금 더 말라보였지. 안그래도 마른 몸이, 더. 솔직히 그때 내 마음은 죄책감이었어. 섣부르게 너를 떠나고 상처주고, 부족했던 내 과거를 숨기고 싶었어. 사랑했던 만큼, 철저하게 지우고, 잊고 싶었어. 너를 다시 만나도, 너를 상처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테니까.
조금 걷자는 네 말을 따라 우리가 수없이 걸었던 길을 다시 걸었지. 네 눈을 볼 수 없었어. 네 얼굴보다 지나가던 보도블럭이 떠오를 정도로. 수십 번을 다시 만나도, 내가 네게 준 상처는, 과거는 변하지 않으니까 너에게 나는 더이상 사랑이 아닌, 죄인이 된 것 같았지.
너와 나는 마주앉아서 대화를 했어. 평소와 다름없이 요즘 지내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친구들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다시 돌아갈거라고 생각했나봐.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알았어. 너를 다시 사랑하기엔, 내가 너무 지쳤다는 걸. 그래서 내가 자리에 일어나며 말했지.
“이러지 마. 우린 돌아갈 수 없어.”
너는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를 가늘게 떨어가며 말했지.
“생각해봤어.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네 말이 떨어지길 기다리면서.
“너는 네 상처가 너무 많아. 그래서 내가 힘들었어. 아마 앞으로도 그러겠지.”
마지막으로 내게 한 말은 사랑했다거나, 괜찮다거나, 나를 원망하는 말이 아니었어. 너는 네가 가지고 있던 힘듦을 내게 내려놓고 그렇게 떠났어. 그 말로 네 마음은 조금 가벼워 졌니. 내 상처를 먹고 네가 행복하다면, 나는 너의 행복을 빌어줄거야.
내가 너를 조금만 덜 사랑했다면, 내게 가족이 있었다면, 네가, 우리가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참 의미없는 의문이지. 어느것도 변화시킬 수 없이, 후회만 잔뜩 만들게 하는.
네가 떠나고, 나는 생각에 잠겼어. 내가 너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겠지. 내게 밥을 사주던 너의 사촌 형도, 장례식에서 뵈었던 친척도, 너의 가까운 친구들도 모두 나를 비난하고 있겠지. 나는 무서웠어. 나쁜 사람이 되기엔 나는 그릇이 작았거든. 내가 너와 다시 만나도, 그들은 나의 잘못됨을 잊지 않겠지. 나는 너에게 현재가 아닌 과거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었어. 그게 내가 다시 너를 만나지 못한 이유야.
너를 만나고 싶은 욕구와, 너를 떠나고 싶은 욕구, 모두가 내겐 있었어. 너를 사랑하지만, 너를 만날수록 나를 사랑할 수 없었거든. 고작 사람 하나에, 내 인생과 감정이 크게 바뀌고 요동치는 것이 지치고 힘들었어. 내가 없는 사랑에 지쳐갔지.
나는 너를 사랑하기 전에,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지. 그에 반해 너는, 너무나 당연한 듯이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그게 너무 당연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고 너를 사랑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주는 것이 서툴렀어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도, 어머니가 계시지 않아도 사랑받고 자라온 너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았지. 아버지가 살아계시고, 어머니가 살아계신 나는 받지 못한 사랑에 나를 사랑할 줄 몰랐지. 그렇게 나이가 조금 차니 연애로 그 사랑을 가지려 했어. 일종의 보상심리라고 해야 할까. 가족에게 받을 수 없는 사랑을, 타인에게 바라다니. 네가 버거웠을만하다.
네게 이런 얘기를 하려니 조금은 주저하게 된다. 내가 다시 너에게 나와 같은 죄책감을 주게 되진 않을까, 고민하면서. 하지만 이렇게라도 우리의 기억을 제자리로 놓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 있겠지. 사랑을 사랑으로 기억할 수 있다면. 슬픔을 오롯히 슬픔으로 볼 수 있다면.
소중한 사람아. 어쩌면 내가 틀리고, 네가 맞았을지도 몰라. 무엇이 틀렸는지 아는데도 긴 시간이 걸렸네. 너의 말처럼, 나는 너무 상처가 많았어. 세상을 다 겪지 못한 상처는 나를 이기적으로 만들었지. 그걸 이제야 돌아보게 되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저 네가 사랑한 사람이 이렇게 부족해서, 네게 상처를 남겼다고 기억해 줄 수 없겠니.
지금도 나는, 이렇게 나를 탓하는 것이 편한 사람이다. 아직도 부족하지. 하지만 나를 탓하는 것이 너를 위한 일이지 않을까 해서, 지금도 그 마음을 버릴 수 없다.
작가 이수연
*우울한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글을 씁니다.*
*스피치, 기고 등 제안은 이메일로 받고 있습니다*
Facebook https://m.facebook.com/leesuyeon0427/
Instagram @suyeon_lee0427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CggovWv6lSj9BCa4sKdUHA?view_as=subscri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