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너의 잔해

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by 이수연

너는 나와 헤어지고 그런 일이 있을까. 사진을 꺼내보고, 연락처를 잊지 못하고, 너와 닮은 사람만 보아도 뒤돌아 보게 되는. 나는 그 모든 일을 겪고서 지금에 왔어.


너와 헤어진 이후로, 너와 닮거나 비슷한 모습을 한 사람이 있으면 눈을 떼지 못했어. 혹시나 너일까, 행여나 너일까. 버스에서 내리던 사람이 너와 무척 닮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네가 아닌 비슷한 사람임에도 심장이 무척이나 뛰더라. 솔직하게 말하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설렘이나 기대가 아닌 죄책감에. 지금의 너라면 나를 분명 싫어할 테니까.

너는 항상 그런식이라고 말할 것 같았어. 마음이 가볍고, 쉬운 사람. 너의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 세상 모든 사람이 나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도, 네가 괜찮지 않다면 모든 것이 틀린것 같았어.


나는 그대로 서서 그 사람이 시야에 사라지길 기다렸어. 정말 네가 아니라서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란 생각 했지. 그렇게 그 일을 몇 번 반복하곤 했다. 사실, 지금도 조금은 그래.


너를 떠올릴때면, 너무나 마음 아파서 매일 술을 마셨다. 술을 먹고 너와 너희 어머니 일을 얘기하며 한참을 울기도 했어. 결국, 머지않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지. 병원에선 술을 줄이고 너를 잊으라 했어. 그런데 어떻게 너를 잊을 수 있을까. 그때의 나에게 술마저 없었다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았지.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더 망가질 곳이 없어 보였어.


지금의 너를 알 수 없고, 물을 수 없다


지금 네 옆에는 어떤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네가 나를 잊고 살고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니까. 나는 너를 잊지 못해도 다른 사람을 만났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니. 이기적이지. 내 마음 편하자고 그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 그런데 너라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사귀지 않을 것 같아. 왠지, 변하지 않을 것 같거든. 나에게 너는 내 기억속이 전부니까.

너도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그리고 결혼한다는 내 소식을 보았을 때 너를 잊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게 그런 전화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생각한 것만큼, 나는 너를 잊지 못했어. 너를 잊기 위해 살았고 동시에 너의 틀 안에서 살았지. 내가 이만큼이나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걸, 네가 알면 좋아할까. 아니면 안타까워할까. 나는 네가 나만큼 아프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한데.


아픔은 비교할 수 없겠지. 나의 아픔은 내 것이었고, 너의 아픔은 오롯이 너의 것이었으니까. 아마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몰라. 지금은 이해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고. 그 기회를 가져보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조금 더 달라졌을까.

지금 너는 나를 만나면, 웃을 수 있니. 내 꿈에 나와서 내게 말한 것 같이. 이제 괜찮다고,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까. 나는 아마 너와 눈이 마주치면 웃을 것 같아.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숨기기 위해서. 네가 무슨 말을 할지 마음 졸이면서. 너는 나에게 뭐라 말할 거니. 우리의 열아홉, 스물처럼 나지막하게 내 이름을 말할 거니.


“왜 그랬어?”

내가 생각하는 너의 첫 단어야.


“고마웠어.”

네가 말해주길 바라는 너의 첫 단어야.


지금 네가 어디에 사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나는 전혀 알 수 없다. 넓디넓은 곳에서 너를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평생의 시간을 닿을 수 없겠지. 가끔, 혹은 자주 서로를 떠올리며 원망하고 용서하고 고마워하겠지. 어쩌면 나처럼 줄 수 없는 편지들을 적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괜찮아지고 싶어서.


너를 향한 죄책감


다시는 네 소식을 듣지 않길 원하는 나였어. 네가 무서웠으니까. 네가 할 말을, 원망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너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느낀다. 나는 네가 나에게 했던 아픈 말들을, 행동을 모두 용서하고 너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 우리가 함께했던 기억이 왜곡되지 않고 있어야 할 자리에 이쁘게 놓여있으면 좋겠어. 차마 버리지도 못하고 눈을 돌리면 웃음이 나는, 그런 관계가 되고 싶어.


그렇게 나는 너를 용서하고, 너에게 그렇게 대한 나를 용서하려 한다. 그래, 네가 아닌 너를 만나 상처 준 나를 용서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다시 용서를 구해. 어리고 부족했던 나를 용서해 달라고. 네 마음속에서도 나를 편하게 두어달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도, 어쩌면 네게 다시 상처가 될까 봐 조심스럽다. 그저 나는 지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야. 네가 평생 나와 같은 마음을 갖지 못하더라도, 나는 너를 이해하려 노력할 거야. 그리고 그런 너를 인정해 줄 거야. 그것은 네 마음이니까.


너는 내가 아니겠지만,


다만, 네가 행복을 향해 나아가려 할 때, 나와의 기억이 그 발목을 붙잡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남긴 상처를 보며 모두가, 사랑이 그런 일이라고 판단하지 않고 마음 편히 사랑했으면 좋겠다. 나에게 너는 너 하나뿐이고, 너에게 나도 유일한 존재이니까.

내가 이런 말을 남기는 이유는 내가 그랬기 때문이야. 사랑은 모두 그렇다고, 힘들고 아프고 상처를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사랑은 그런 것 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아마 이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너를 마음에 품을 거야. 그리고 사랑을 무서워했겠지.

나는 남편을 통해 사랑의 올바른 의미를 가졌고, 지금은 많은 것을 사랑해. 너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니, 스스로 치료하고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는 내 경험에 의해 세상을 판단하니까. 너의 세상을 알지 못하니까.

네가 실은 괜찮고 나 혼자 힘들어한 거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괜찮아, 그 마음은 내 것이었으니까. 나는 너와의 헤어짐을 통해 아주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 그 모두가 모여,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되었어. 네가 그러하듯.



작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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