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너를 만나기 전에 나에겐 이상형이라 할만한 사람은 없었어. 이런 사람은 호감이더라, 하는 것도. 너를 만나고 주변에서 이상형을 물으면 나는 키가 너무 크지 않고, 마르고, 쌍커풀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어. 네 모습을 떠올리며, 너를 말했어.
지금은 다시 이상형이라 할 게 없다. 내가 아무리 꿈꿔봐도, 현실은 다를 때가 많잖아. 지금의 남편은 너와, 내가 말해온 이상형과 많이 다른 사람이야.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진한 쌍커풀을 가졌지. 술을 좋아하고 담배피기를 즐겨. 내가 너에게 했던 그 역할을, 지금은 남편이 해. 오히려 지금의 나는 사람을 만나도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남편의 뒤에 숨곤 하지.
너라는 틀
너와 헤어진 후, 나의 사랑 조건은 마치 네가 된 것 같았어. 너와 같이 말 수가 적은 사람. 조금은 엄격하고, 몸집이 크지 않은 사람.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 너의 모습을 그 사람에게 끼워맞추려 했지. 하지만 그 누구도 네가 될 수 없었어. 네가 아니니까.
내가 저질렀던 나의 잘못을 그런 사람으로 대체하고 죄책감을 덜고 싶어서 어떤 이를 만난 적도 있다. 그런 사람의 가족이 되고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내 죄책감이 덜어질거라고, 무의식적으로 그런 기대를 했어. 내 마음의 키는 아직 너를 가리켰지.
그런 어린 마음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준 것도 있을거야. 그럼에도 너에게 상처준 것이 아직 남아있는 것은, 너는 나를 용서하지 못할거라 확신하기 때문이야. 남편 이전에 내가 만난 사람 중 너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었고 너만큼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이제 미안하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에 와서 너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그간 나는 용서하는 것에 급급했기 때문이야. 나에겐 용서해야 하는 많은 것이 있었어. 너는 알지 못하지만, 나를 이용했던 사람, 가장 가까워야 했던 가족, 나를 떠난 친구, 우리가 겪어야 했던 상황, 그리고 나 자신.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아니. 나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인지 아니. 모든 것을 가져도 나는 나를 가지진 못했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모든 것을 가져도 아프고 힘든 나에게 되려 화를 냈지. 왜 이렇게 만족하지 못하냐고, 대체 어떡해야 행복할거냐고. 그렇게 한참 나를 죽일듯이 미워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누구 하나 미워하지 못하는 사람이잖아. 근데 그 대상이 내가 되면 나는 달라졌어. 너무나 쉽게 화를 내고 스스로를 해쳤지. 누구 하나 다치게 한 적 없는 내가 나를 수없이 다치게 했다. 참 슬프고, 아픈 일이지. 내가 남긴 나의 흉터를 보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
너에게 상처를 준 순간을 떠올리면 나는 또 나를 다치게 해. 나를 잡지 않은 너를 한번도 원망한 적이 없다. 그런 너를 떠나겠다고 말한 내가 잘못이라고, 나는 어리석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나에게 가혹하게 대했어. 화를 내지 못하는 것을 삭이다 찾은 가장 만만한 상대가 나였던 것 같기도 하다.
완벽했던 너에겐 나는 흠이었고, 나는 그 흠을 참을 수 없었지. 나도 너와 같은 완벽한 구가 되고 싶었어. 어딘가 선 하나만 흐트러져도 그것은 완벽이 될 수 없다고 말했지. 분명 그것도 구의 한 종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 준 사람
그런데 남편을 만나면서, 나는 내가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천천히 알았다. 이런 나도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내가 해온 많은 것들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어쩌면 남편도 그 잘못을 똑같이 반복해 보았던 사람이라 서로를 이해했을지도 몰라. 너를 사랑했다는 것도, 이해하는 사람이지. 다르게 말하면 나와 같이 엉망이었던 그를 사랑했던 것 같아.
“그래, 나도 그랬었지.”
그가 아픔을 말하면 나는 종종 그 말을 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나는 너무나 당연한 듯 그의 아픔을, 실수를 옹호했어. 내겐 한번도 해본 적도 없는 일이면서 그에게 만큼은 넓은 마음을 가졌지. 그런데 그도, 나의 실수와 아픔을 얘기하면 나와 같은 말을 하더라.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복잡했어. 도저히,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게 그렇게 말한 적이 없으니까. 그를 만나면서도 나는 종종 자신을 비난했어. 그 모습을 바라본 그는 내가 아닌 나에게 화를 내었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비난하지 마.”
내가 그토록 비난했던 나는, 누군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음을 느꼈다. 내가 함부로 대해서도, 말해서도 안되는. 그때부터 조금씩 단어를 바꿔나갔어. 나를 향한 비난을 줄였고, 한 사람에게라도 사랑받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려 노력했지. 그는 네가 나에게 했던 단어처럼, 나 자체를 비난하지 않았어. 나를 인정하고 보호하려 했지.
분명 모두가 사랑이었어
너와 했던 것도 사랑이었고, 그와 하고 있는 것도 사랑인데, 나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방식의 차이였을까. 가치관의 차이였을까. 경험과 기억의 차이였을까. 너를 만나던 나는 한없이 모자란 사람이었는데, 그를 만나는 나는 마치 마침내 완성된 하나의 존재같아.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를 떠난다고 해서 나는 이 완성된 존재를 이제 잃어버릴 것 같지 않다. 앞으로의 나와 남편이 어떤 일을 겪을지,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지. 어쩌면 끝나지 않을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 올지도 몰라. 너를 겪어서인지, 모든 것이 영원하고 변하지 않을거라 기대하지 않거든. 하지만 그렇더라도, 내가 사랑했다는 기억을, 사랑 받은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것처럼, 완성된 내가 다시 무너지지 않을거야.
지금 나는 이 모든 것을 잃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 잃을 수도 있겠지. 변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가치없는 것이 되지 않아. 그게 나를 사랑한다는 마음인가봐. 타인에 의한 사랑의 확신이 아닌, 나 자신을 통한 사랑의 확신.
나는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어. 그러기까지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걸렸다. 너 때문에 내가 그렇게 되었었다는 말이 아니야.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너와 헤어질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조금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너가 아닌 그와 결혼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해.
자신이 사랑하는 형태로 만들려 하는 사람이 아닌, 고유의 나를 만들어 주는 사람. 나는 그 사랑을 받고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작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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