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나의 결혼식

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by 이수연

내가 결혼하던 날, 나의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군대에 갔고, 다른 친구들은 사회생활도 안 해본 대학생이었지. 나는 그 애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결혼하는 사람이었어.


결혼을 준비하면서 모두 나를 ‘신부님’이라고 부르더라. 그리고 그날 내가 가장 이뻐 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 생전 한번 해본 적도 없는 네일아트를 하기도 하고, 남이 해주는 화장을 받아보기도 했지.

나는 이전부터 결혼식에 관한 환상은 없었어. 뭘 그런 걸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했지. 남편과도 결혼식을 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어른들이 그래도 식은 올리라고 해서 잡은 결혼식이었어. 그래서 부담 없이 형식만 갖춰서 결혼을 준비했지.


막상 결혼식이 되니 모두 나에게 축하한다고, 너무 이쁘다고 말했어. 한 동료분은 내게 이렇게 긴장 안 하는 신부는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어. 그날 나는 이제부터 결혼생활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 지금처럼 지내는데 식만 올린다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식을 올렸어. 많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여러 사람들이 왔어. 친구, 직장 동료, 여러 음악인들, 가족들. 식장을 가득 채웠고 한 사람씩 인사하기도 힘들었지. 아침부터 일어나 화장을 받고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생각보다 정신없더라. 그래도 무사히 결혼식을 마쳤어. 부산으로 돌아가는 시댁 식구를 맞이하고 엄마 집으로 가서 짐을 정리할 생각이었지.


모르는 번호


그날이 생생하다. 결혼식을 마치고, 아직 지우지 못한 진한 화장에 이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엄마 집으로 향했지. 차 앞자리에는 이모와 엄마가, 옆에는 남편이 있었어. 남편도 결혼식이 힘들었는지 세상모르고 잠에 들어 있었지. 나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채로.


전화가 울렸어.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서울이 아닌 지방 번호가 떴지. 흔히 말하는 군대 번호였어. 친구들 중 몇몇은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결혼하는 것을 안 친구가 축하전화를 했을 거라 생각했어. 그렇게 너라고 생각할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연아, 나야.”
“누구?”


상상도 못 한 전화에 네 목소리를 듣고도 차마 너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당연하게 친구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다음에 네 이름이 네 목소리를 타고 전해졌을 때, 나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는 남편이 있었어. 행여나 깰 수도 있었지. 앞에는 가족들이 있었고. 너와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리고 그날은 한 번뿐인 나의 결혼식이었어. 그런 날 소식 없던 너는 나에게 전화를 걸었지. 그것도 군대에서.


“잠깐...”
“미안, 끊을게.”


급하게 전화를 끊었어. 남편이 눈치채진 않았을까, 살짝 보았지만 다행히 자고 있었지. 전화를 받고 내가 얼마나 당황했으면, 앞에 계시던 우리 엄마도 너라는 걸 눈치챌 정도였어. 엄마는 급하게 전화를 끊은 나를 뒤돌아보며 남편이 깨지 않도록 작게 속삭이며 말했지.


“왜? 걔야?”
“... 응.”


결혼식이란 것은, 삶의 행복한 순간 중 손에 꼽히는 때가 아닐까 생각해. 모두가 축복해주고, 그 축복을 받고 앞으로를 함께 하는 순간이지. 그런데 너는 그날 내게 전화를 걸었다. 행복해야 하던 나의 결혼식은 그렇게 한순간 너로 마음 아픈 날이 되었어.


아마 너는 내가 잘하지 않는 SNS를 지켜보았던 것 같아. 그리고 친구들이 전체 공개로 올린 내 결혼식 사진을 보았겠지. 놀란 마음에 내게 전화를 걸고,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 하지만 너의 그 행동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꼭, 그날, 그때여야만 했을까.


그날 나는 아주 많이 아팠다


차라리 하루라도, 이틀이라도 먼저 전화를 하지. 왜 나의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순간에 나타나, 나를 힘들게 만드는 걸까. 나는 너를 위해 약속까지 지켰는데. 네가 아픈 만큼, 나도 고통받길 바랐니. 아님 내가 그렇게 힘들어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니. 네 마음이 너무 중요해서, 나를 생각하지 못했던 거니.

혼자 안을 수 없는 너무 큰 죄책감에 내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즐겁게 여행을 마쳐야 하는데 차마 웃을 수 없었다. 우울하고 불안했어. 결국, 나는 그날 저녁, 신혼여행에서 남편에게 네 이야기를 해야 했어. 결혼식 날, 너에게 전화가 왔다고.

너를 지우려 해도, 나의 연애부터 결혼식까지 너를 지울 수가 없다. 우리는 결혼을 한 순간에도 네 이야기를 해야 했지. 남편은 크게 놀라거나 네게 화를 내지 않았어. 다만 내가 아파하는 것을 아는 듯 나를 챙기려 했지.


“네가 그 애를 말해서 네 마음이 편하다면, 얘기해도 좋아.
그리고 만약 얘기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무조건, 네 마음이 편한 선택을 해.”


남편은 그렇게 말했어. 내가, 내 마음이 먼저라고. 그 말에 조금 죄책감이 덜어졌지만, 너를 도망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여파로, 지금도 나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벌벌 떨어. 행여나 너일까, 네가 나를 찾지 않을까.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


바꾸지 않은 전화번호


편하게 번호를 바꾸라는 사람도 있었어. 너는 이미 번호를 바꿨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아직 번호를 바꾸지 않았어. 너무 오래 써온 번호이기도 하고, 바꾸게 되면 정말 모든 것이 끊어질 것 같거든.


너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야. 지금도 네게 연락이 올까 두렵기도 해. 하지만 네가 나를 다시 찾을 때, 내가 너의 목소리를 듣고 이렇게 써온 편지처럼 너와 나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어. 그리고 우리의 기억을 아픔이 아닌 사랑으로 되돌릴 기회를 가지고 싶어. 내가 번호를 바꾼다면, 정말 네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간다면, 우리의 잘못과 기억을 되돌릴 기회를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 말은 아직 나는 너에 관한 죄책감을 다 덜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지.

아마 앞으로도, 나는 번호를 바꾸지 않을 거야. 한참을 네 생각으로 글을 쓸 정도니까. 나는 네가 나에게 절대 하지 않은, 축복과 용서를 듣고 싶다. 그래야 나는 너라는 사람을 마음에서 깨끗하게 놓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그건 널 위한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을 위한 일이지.


네가 나를 용서하면, 그때 정말 우리의 모든 인연이 과거가 되는 순간일테지. 나는 그 순간이 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누구를 더 위하는 것이 아닌, 우리를 위해.



작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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