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네가 전화를 걸었던 그 순간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서, 나는 모르는 번호가 오면 잘 받지 않게 되었어. 전화를 받으면 한동안 상대가 먼저 말하길 기다리기도 했지. 상대방이 네가 아니라는 걸 알면 그제야 내 목소리를 냈어.
그렇게 너의 목소리를 듣고 두어 달이 지났을까. 내게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전화가 몇몇 왔어. 그중 무엇이 너였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울리는 휴대전화가 무서워 쳐다볼 수 없었으니까. 차마 누군가와 연락할 용기도 생기지 않아 연락을 피하고 싶은 사람은 모조리 차단했어. 근데 그중에도, 네 번호는 차단하지 못했지.
이상하지. 너일까 봐 무서워서 연락처를 정리했는데, 너는 지우지 못했다니. 왜였는지는 모르겠다. 너를 기다린 것도, 기대한 것도 아닌데. 그냥 무언가를 지우고 싶었나 봐. 근데 너를 지울 자신까진 없었나 봐.
마지막 전화
그렇게 내게 남은 사람은 몇몇 뿐이었어. 그 사람들만 있어도 내 하루가 유지될 수 있는, 그런 사람만을 남겼어. 전 직장에 관련되었던 사람도 모두 정리하고, 모두를 뒤로 하고 유학을 준비하려 했지. 차마 너도 그곳까진 올 수 없었을 테니까. 너 때문에 결정한 유학은 아니었지만, 너라는 이유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몇 남지 않은 사람 중 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어. 지하철에서 전화가 울렸지. 나는 이호선을 타고 있었고 약속 장소는 합정이었어. 나는 어쩐 일인지 두려워하며 전화를 받았다. 평소라면 받지 않았을 텐데, 알지도 못하는 번호였는데도 나는 전화를 받았다.
“나야.”
익숙한 너의 목소리. 지하철의 소음에 잘못 들은 게 아닐까, 하고 네 이름을 말하며 다시 물었지. 아마 내가 수십 번을 물어도 그건 너였을거야. 나는 그렇게 도망가고 도망하다, 너의 전화만을 받았다.
너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어. 결혼한 전 여자 친구에게 하는 전화가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겠지. 그리고 결혼 뒤에 온 전 남자 친구의 전화가 달가웠을 리가 없고. 그럼에도 나는 휴대전화를 귀에 바짝 대고 너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니,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너는 네 이야기를 하기 바빴으니까.
“너한테 돌아가려 했어.
너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했어. 그런데 어떻게...”
나는 말없이 네 이야기를 들었지.
“너와 헤어지고, 주변에서 다시는 너를 만나지 말라고 하더라.
네가 나쁘다고, 너를 떠나라더라.
그런데 그래도 나는 너를 만나고 싶어. 주변이 뭐라 하던.”
그 말을 듣고 이제야 나는 알았다. 나는 절대 너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사랑은 죄책감이 아니더라
네가 그때 한 말은 사실 별거 아닐지도 몰라. 그런데 너는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주변이 나를 비난한다고, 그럼에도 너는 나를 만나고 싶다 말했지. 내가 그 비난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아니. 내가 얼마나 도망가고 싶던 일인지 아니. 너는 다시, 그렇게 나를 죄책감으로 묶으려 했어.
참 어른스럽게 기억되는 너였는데, 그때는 네가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책감이 아니고선 나를 잡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라고. 설령 네가 시 월의 약속을 지켰더라도, 나는 너를 다시 만나지 않았을 거야. 너를 만나면 끊임없이 넌, 나의 약점을 잡을 것이고, 나를 비난하게 만들 것이고, 그렇게 네 손 위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겠지.
그런 너의 죄책감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엔, 나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남편을 만나 사랑이란 죄책감이 아니란 것을 배웠지. 아마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다시 너의 죄책감에 들어갔을지도 몰라. 그렇게 네 곁에 있는 것만이, 이 마음을 지울 수 있는 길이라 믿으면서.
참 슬픈 일이지. 우리의 빛나던 사랑이 그렇게 변한다는 게. 남은 것은 집착과 죄책감이라니. 어느 것으로도 나를 잡을 수 없어, 본능적으로 나의 약점을 잡은 너를 어리게 바라보게 된 나와 그 사실조차 모를 너. 차라리, 차라리 사랑한다고 말하지.
“나는 약속을 지켰어. 네가 약속한 때를.”
내가 한 말은 변명이었다. 네가 그 말을 하면서 너를 다시 만나지 않을 거란 것을 확신했지만, 죄책감은 도저히 덜어지지 않았거든. 그래서 일말의 끈이었던 우리의 약속을 말했어. 나는 그렇게 잘못하지 않았다고.
“그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도 힘들었어.
우울증이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알잖아, 나...”
결혼했다고. 그렇게 말하려 했지. 그런데 너는 내가 할 말을 알았기에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말하지 마. 그냥 다시 돌아와 줘.”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니. 차마 내 목소리로 들을 수 없는 단어였니.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는 것이. 결국, 나는 그 단어 하나 너에게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나는 행복하다고, 너도 행복하라고. 그렇게 말했다.
전화를 건 너는 군인이었지. 전화를 받으며 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걱정하기도 했어. 그래서 살라고 했어. 잘 살라고. 절대 죽지 말라고. 나는 행복하니까, 복수하듯 너의 행복을 찾아가라고.
너는 군대에서 사고 칠까 걱정하는 내 말에 조금 어이없어했지. 그래, 너는 나 때문에 그럴 애가 아니지. 근데, 내가 왜 그 얘길 했는지 아니. 나는, 나는 그런 사람이었거든. 쉽게 죽으려 하고 죽음과 맞닿아 있는. 내가 그렇다고, 너도 그럴 거라 생각한 것도 참 짧은 생각이었지.
나에게 남겨진 것
이호선이 반 바퀴를 도는 동안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나에게 원망을 쏟아냈지. 나는 나를 방어하려 했고, 내 얘기는 꺼내지 못했지. 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말하지 못할 거야. 내가 그 뒤로 어떤 삶을 살았고, 너를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끊임없이 네게 미안하다 말하고, 너의 칼을 품에 안으려 하겠지. 나는 그래야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내가 쥔 칼은, 오직 나만을 향하는 것이니까.
만약 네게 이 글이 닿는다면, 내게 미안하다고 말할 거니. 아니면 그때와 같이 말할 거니. 내가 이렇게 살았다는 것이 네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을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게 네가 나를 만날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비하하며 아무것도 아니게 잊어도 좋겠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네가 나를 찾지 않는 거라고.
너에게도 우리의 사랑이 사랑이었다고 남길 바라는 마음에 쓰는 글은 아니야. 다만, 나에게 그렇게 남기고 싶어 쓰는 글이야. 만약에,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이미 나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찾아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지금의 나처럼.
작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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