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네가 앞으로도 모를 이야기

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by 이수연

네가 마지막에 한 말을 아주 오랫동안 곱씹어봤다. 너는 내가 결혼해서 너를 잊고 마냥 행복할 거라 생각했겠지. 자신을 잊고 다른 남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거라고. 그게 너를 화나게도 했고, 어리게도 만들었겠지. 그런데 내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면, 너의 마음은 어떨까. 행복하지 않았다고.


네가 절대 모를 이야기


남편과 결혼하고 우리는 유학 준비를 했어. 나는 음향을 더 배우기 위해 대학에 가려했고, 남편은 이민을 준비했지. 하던 일도 그만두고 공부에만 전념했어. 그렇게 외국에 나가 잘 살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나는 그때 계획한 그 어느 것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거든. 네가 마지막 말 중 그런 말을 했지. 우울증 같은 게 있었다고. 아픔을 비교하진 않을게. 아픔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 없으니까. 하지만 나도 너 못지않은, 혹은 그 이상의 힘든 시간을 보냈어.


결혼과 함께 우울증과 식이장애, 공황장애가 급격하게 심해졌어. 이상하지. 행복한 미래만이 있을 거라 생각한 때였는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병들었고, 아파했다. 너와의 헤어짐보다 더욱. 몸무게는 빠지고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어. 남편이 나보다 먼저 잠에 들면 불안해서 잠도 못 잤지. 남편은 잠들지 않는 나를 밤새 봐주며 괜찮다고,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말해주었어.

그래도 나는 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어렵게 쌓은 행복이 늘 그래 왔듯, 한 순간. 나의 상처와 경험은 이 모든 것이 망가질거라고 말하고 있었지. 그에게 아무리 사랑받아도, 나를 사랑하지 못한 내가 말했지. 너는, 나는 행복할 수 없다고.


그렇게 결혼한 지 넉 달, 나는 다시 정신과를 찾아야 했어. 남편을 만나며 끊은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했어. 병원에 가는 길도 손과 심장이 떨려서 잔뜩 긴장했지. 머릿속에선 죽고 싶단 생각이 가득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어. 그렇게 다시 두 달이 지나고, 나는 정신병원에 입원했어.

그렇게 지금까지도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내가 정신병원에서 보낸 시간은 일 년 가까이야. 수 번의 입퇴원을 반복했고, 정말 죽을 뻔한 적도 있었어. 모두가 나에게 살아서 다행이라고 말할 때, 나는 죽지 못해 안타깝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여러 번, 나는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분명하게 말할게. 너 때문은 아니었어. 그러니까 죄책감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야. 그건 그냥 내가 겪고 가져야 했던 경험이었고, 과정이었어. 너를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않았고, 나 자신 때문에 괴로웠으니까. 굳이 무엇을 탓해야 했다면, 그건 나야. 내 탓으로 나는 아팠고, 아프고 있어.


정신병원에 있는 동안, 네가 나에게 연락을 했던 때가 있었을까. 나는 휴대전화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알 수 없네. 우울증이 얼마나 심하고 나아지지 않던지, 안 해본 치료가 없었어. 그 정도로 나는 아프고 괴로워야 했어. 어쩌면 그것 또한 너처럼, 아파야 했을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 모습이 되기 위해. 너를 사랑으로 남길, 나를 위해.


네가 보지 못한 모습


만약 내 옆에 남편이 아닌 네가 있었다면, 과연 그 과정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너는 내가 버겁다며 나를 떠나지 않았을까. 너는 너무 아파서, 내가 힘들다고. 그때의, 마지막 내게 남긴 말처럼 그렇게 말했을까.


남편에게 수없이 나를 떠나라 했어. 나는 이렇게 아프고, 엉망인 사람이니까. 나와 함께하면 행복할 수 없을 거라 했어. 나는 이 사람이 있어도 이렇게 아프고, 이 사람은 나를 떠나면 다시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남편은 나를 떠나지 않았어. 내가 있어야만, 행복한 거라고 그렇게 말했어. 한 순간도, 내 손을 놓지 않았어.

병원에 있는 동안 내 모습이 어땠는지 아니. 한 번은 얼굴에 새까맣게 멍이 들어있었고, 어떤 때엔 자해를 하기도 했다. 내가 너무 싫고, 죽이고 싶어서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줬다. 내가 이렇게 죽어도 너는 이런 나를 모르겠지. 내가 행복할 거라 믿고, 잘 지내겠지. 그게 내게 위안이었다.


그런 너를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어. 어쩌다 상담에서 네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잘못했던 것이라 말했어. 내가 실수했고, 상처 줬다고. 오히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다시는 나를 찾지 않을 너에게 감사했어. 이런 모습을 본다면 너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을 테니까. 그때 행복하다고 말한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했지.

그렇게 너를 원망하지 않고 마음에 품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심리상담에서 네 이야기를 했지. 내가 가장 상처를 주고 죄책감을 가진 사람이 너라고. 그리고 마지막에 나에게 그런 전화를 했다고. 그러자 심리상담사분이 말했어.


“그분은 자신의 마음을 얘기하고 자신만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수연 씨에게 죄책감을 주는 말들을 했어요.
수연 씨처럼 감정을 숨기고 배려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화를 내도 괜찮아요.”


너에게 화를 내야 한다고 말했어. 너와의 감정을 풀어내야 한다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화가 나지 않는다. 지금도 마찬가지야. 그저 내 잘못인 것 같고, 미안하고 그래.


주변에서 네가 잘못했다고 말해도, 나는 너의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어. 우리의 사랑은, 내가, 그리고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마 수없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전화한 때로 돌아가도 나는 네 이야기를 말없이 들을 것 같아. 나보다 더 사랑했던 너를, 나보다 너를 더 이해하는 나 때문에.

다만 완벽하게 느껴지던 네게도 흠이 있었다는 것은 어렵게 알 수 있었다. 내가 잘못해온 만큼, 너도 내게 잘못이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네게 용서를 구했지만, 이제 나도 너를 용서해야 한다는 걸 느껴.


우리는 아마 많은 잘못을 해왔겠지


완벽한 것은 어쩌면 없다. 나도, 너도 어리고 부족하지. 그걸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조금 편해. 내가 부족해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상대가 잘못해도 그럴 수 있다 생각하지.

너에겐 나는 완벽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니. 아니겠지. 너는 나의 흠을 너무 잘 알고 있었지. 내가 무엇에 약하고, 괴로워하는지도. 너를 완벽이라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었지. 너는 항상 옳고, 나는 틀린 사람이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네게 편지를 써보자는 말이 나온 것도, 그 상담에서였어. 뿌리 깊은 너의 기준을 이제 지워야 한다고.


사실 너에겐 아무것도 아니었을 사랑일지도 모르는데, 나만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떡하겠어. 너는 내게 그런 사람인데. 아마 앞으로가 지나도 기억나고, 사랑으로 남을 사람인데. 지금 나는, 네 마음에 내가 어떻게 남을지보다, 내 마음에 너를 어떻게 남길지가 더 중요하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남기려고 해. 상처와 죄책감을 조금씩 내려놓고, 나를 위해서.



작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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