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결혼하지 못한 사랑에게
나와 너의 이야기가 과거를 지나 벌써 현재에 왔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너의 잔해는 남아있을 거야. 내가 모든 기억을 잃지 않는 한, 나는 너를 계속 기억할 테니까.
과거의 너를 말하는 나
글을 쓰기 얼마 전, 나는 잊었던 너의 전화번호를 문득 기억해냈어. 마치 잊어온 시간이 너를 잊은 것이 아니라, 잊고 싶었다고 말하는 듯, 당연하게. 이제는 잊어야 할 것이 아니라, 남겨야 할 것이라 말하는 듯했지. 그래서 네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이 되었구나, 알 수 있었어.
어쩌면 일반적일지도 모르는 너의 기준은 이제 나에게서 많이 지워졌다. 세상이 그렇게 기준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조금은 알았나 봐.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더라고. 그런데 그 모습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더라고.
지금은 나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있어. 친구와 가족, 주변 사람들 모두 나를 많이 생각해줘. 가끔 네 이야기가 나오면 그것도 웃으며 받아치곤 해. 주변이 놀리듯 그 이야기를 하면 나는 항상 진심으로 말해.
“그래도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야.”
이 글을 다 써갈 즈음, 그니까 얼마 전에, 네가 다시 내 꿈에 나왔더라. 학교가 배경이었는데, 너를 보고 내가 장난스럽게 물었어.
“그래서, 왜 내 결혼식에 전화했어?”
“너는 그럼 왜 결혼했어?”
꿈에서 그렇게 말하며 투닥거리고, 장난쳤어. 한결 마음이 편하면서도 복잡했지. 어쩌면 너는 아직 이런 마음을 가지지 못했을 텐데, 나 혼자 마음 편한 대로 생각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하고.
글을 쓰는 내내 네 걱정을 많이 했다. 그때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힘들었을까 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내가 실수한 모습들을 올곧이 바라봐야 했지. 지금의 나라면 하지 않을 실수들인데. 너도 분명 그때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있겠지.
고등학교에 강연을 간 적도 있어. 고등학교 삼 학년이었는데, 우리가 만나던 나이였지. 그런데 고등학생을 만나 얘기를 해보니까, 마냥 학생 같더라. 귀엽기도 하고, 풋풋했어. 나도 저 과정을 겪었는데, 생각을 하니 믿기지 않았어. 우리는 저렇게 어린 나이에 사랑이란 걸 했구나, 하고. 비록 나는 그 나이에 돈을 벌고 있었지만, 분명 나도 저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겠지. 나름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이였는데 말이야.
지금도 우리를 보면 누군가는 마냥 아이 같다고 할지도 몰라. 하지만 아마 고등학생이 우리를 본다면 영락없는 어른이었겠지. 나이라는 건 조금씩 들어가지만 항상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렇게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될 거라 생각하면 상상이 안돼. 하긴, 우리의 지금도 그때는 생각할 수 없는 나이였겠지. 그때가 되면 아주 많은 것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을 거야.
그렇다고 어린 시절의 마음과 사랑을 가벼이 여기지 않아. 이렇게 긴 시간 네가 나에게 녹아있을 정도로 나는 진심으로 너를 사랑했으니까. 그래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 생기면 항상 진심으로 대하고 존댓말을 써. 내가 나의 과거를 존중하듯, 그들의 현재도 존중하고 싶거든.
내 기억과 마음은 내 것이야
내가 주치의 선생님과 대화에서 나를 이렇게 기억해 주었다고 했을 때, 주치의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어.
“제 마음은 제 것이에요.”
맞다, 그렇지. 그렇게 생각했다. 네게 내가 어떻게 남아있던, 내 마음 또한 내 것이야. 그러니까 나는 내 마음을 이렇게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이래라저래라, 너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것은 없어. 그것 또한 너의 마음이니까. 하지만 네가 덜 아픈 선택을 하고 덜 아픈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 나는 다시 너에게 상처 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음을 알고, 그렇게 나를 상처가 아닌 것으로 인정했으면 좋겠어. 내가 아닌, 너를 위해서.
이제야 너를 이해하는 나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너의 말들도, 너의 기준에서 생각하니 하나씩 이해가 되더라. 나를 사랑하기 전까지 나는 가족이 더 중요하거나, 내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전혀 알 수 없었거든. 그런데 이제 나라는 존재가 생기니까,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네가 나에게 했던 말들도 모두 이해가 가. 작은 단어 하나까지도.
다른 사람이 우리의 이야기를 본다면, 어쩌면 누가 더 잘못하고 못됐네,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 잘못을 따지기 위한 글이 아님을 알거라 믿는다. 그저 사랑의 기억은 사랑으로, 잘못했던 감정과 사건은 인정하고 용서하는 과정이니까. 있어야 하는 책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듯, 우리의 기억은 반듯하게 놓여있을 거야. 그리고 꺼내고 싶을 때, 바로 꺼내 볼 수 있겠지. 이제야 나는 웃으며 너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너에게 사랑받아서가 아닌, 너를 사랑해서 빛난 나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기억은 나를 중심으로 기억될 거야. 이건 내가 가진 소중한 기억과 나의 과정이니까. 너에게는 네가 기억하고 싶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겠지. 네 기억 속에 존재할 나도, 사랑하려 해.
어때, 나도 조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 이런 말도 하고. 이제 더 이상 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게. 네가 나를 용서하던 미워하던, 나보다 잘 지낼 거라고 믿으면서. 너는 나보다 강하고, 자신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이 글을 마지막으로 고마운 마음을 남길게.
고마워. 내게 이런 사랑을 경험하게 해 주어서.
작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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