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에세이
짱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사 년 전, 인천공항이었다. 이왕 죽을 거 돈이나 다 쓰고 죽자며 유럽 여행을 신청한 나와 마지막 이십 대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유럽 여행을 신청한 짱언니는 우연히 같은 패키지를 신청한 일원이었다. 서로 여행 온 이유는 달랐으나, 같은 이십 대에 혼자 패키지여행을 신청했다는 점이 비슷해서인지 가이드는 항상 나와 짱언니를 함께 붙여놓았다. 나와 짱언니 또한 낯선 사람들 속에서 비슷한 나이대에 혼자 여행 온 사람이 나 말고 있다는 것에 내심 안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 두 가지를 제외하면 나와 짱언니는 여행을 신청한 이유만큼이나 너무 다른 스타일이었다. 사진은 절대 사양이라는 나와 달리 짱언니는 언제나 사진을 꼭 남겼고, 자유시간엔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싶은 나와 달리 짱언니는 구석구석까지 구경하는 스타일이었다. 유럽을 여행하며 현지인이 우리에게 “니하오!”라고 외치며 놀릴 때면 나는 벙쪄 가만히 있었고 짱언니는 찰진 사투리로 욕부터 외쳤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알 수 있는 것은 고향까지 달라 나는 서울말을 쓰고 짱언니는 진한 사투리를 썼다는 것이다.
이토록 다른 스타일을 가진 나와 짱언니었지만, 어쩐지 여행 내내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버스에서도 수다, 기차에서도 수다, 숙소에 돌아오는 시간이면 함께 근처 마트에 가 맥주나 와인을 사 온 뒤 숙소에서 밤새 또 수다, 수다. 처음에는 헤어진 남자친구 욕으로 시작했고 밤이 깊어질수록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와 과거, 쉽사리 할 수 없는 대화로 마음까지 깊어졌다. 고작 9박 10일을 함께 한 짱언니였지만, 그동안 수없이 웃었고 또 몇 번은 울었다.
그렇게 스쳐갈 수 있었던 나와 짱언니는 서로 인연을 붙잡았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종종 연락하게 되었고 짱언니가 서울로 상경하면서부턴 얼굴도 다시 볼 수 있었다.
모든 인연이 그렇듯 그렇게 자주 연락을 나누진 않지만, 그래도 잊지 않을 만큼은 서로를 기억하고 만나왔던 짱언니에게 며칠 전 연락이 왔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시간은 오후 11시 30분 정도. 그러니까 아슬아슬하게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은 시간에 짱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늦은 시간인 줄 알면서도 짱언니는 내 생일이 지나기 전, 축하하기 위해 연락을 해왔다. 축하 연락과 함께 파우치 선물까지 잊지 않았다. 나도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서 생일 축하 연락을 받아왔고 이제 연락 올 곳은 다 왔구나 싶은 때 온 짱언니의 연락이 반가워 대답했다.
“언니! 생일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는다는 것이, 게다가 그것이 내가 태어났다는 단 하나의 이유라는 것이 기뻐 짱언니에게 ‘행복’이라는 말을 썼다. 어쩌면 가벼운 축하의 답례이고 인사치레 같은 단어였다. 그런데 짱언니는 내 ‘행복’이란 말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이내 짱언니에게서 긴 답장이 왔다.
“수연아, 나는 네가 유럽에서 ‘행복하지 않다’라는 말을 했던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요즘 사랑받는 네 모습을 보면 이제 조금 네가 행복해졌을 거라 멋대로 생각해본 적이 많았어. 근데 너한테 행복이란 단어를 쓰면 네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상기시킬까 봐 걱정했었거든. 근데 방금 네가 그렇게 직접 말하는 걸 보니 나마저도 너무 행복하다.”
짱언니의 답장을 보고 순간 마음이 먹먹해졌다. 사 년 전, 유럽의 한 구석에 있는 숙소에서 달을 보며 맥주 한잔에 했던 그때의 내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하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행복하지 않아요. 다시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제 바라지 않으려고요.”
그것은 가깝지 않은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정말 나를 아낄 사람이라면 그 말에 속상해 할 것이고, 마음 아파할 테니까. 내 말에 신경 쓰지 않을 낯선 사람에게만 말해보는 그 진심을 나는 잊고 있었다. 그런데 짱언니는 잊지 않았다. 내가 인연을 이어갈 거라 생각하지 못하고 한 그 말에, 고작 열흘을 함께한 나를 위해, 기억하고, 신경 쓰고, 한편으론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무려 사 년 동안.
짱언니의 말을 보고 나는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오래 그 말을 기억할 줄 몰랐고, 이렇게 오래 인연이 깊어질 줄도 몰랐고, 이렇게 오랫동안 나의 생일을 축하해 줄지 모르고 했던 말들에 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었다. 그리고 짱언니의 대답에 인사치레 같던 ‘행복’이란 단어는 진짜 행복이 되어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해요.”라는 짧은 문장이었다.
“늘 밝게 웃는 네 모습이 좋아.
역시 수연이의 웃음은 그렇게 잘 웃으라고 만들어주신 걸 거야.”
짱언니는 마지막까지 내 웃음이 좋다고 하며 “부끄러우니까 이만 잘게!”라며 짧게 인사했다. 나도 짧은 인사로 대화를 마쳤지만 짱언니의 말은 가슴 깊이 남았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이었기에, 나는 사 년 간 무엇이 달라졌기에 이제 행복을 말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겼다.
나는 결국, 행복은 그림자 같다고 생각했다. 너무 어둠이 짙으면 보지 못한다. 빛이 너무 많아도 보기 힘들다. 위만 바라본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닥만 본다 한들 고개를 잘 맞추지 않으면 여전히 발견할 수 없다. 형태는 나와 비슷하지만 무언가 찌그러져 있기도 하고 눈코입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도 하다. 나의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림자를 보고서도 이것이 나의 그림자인지 눈치채지 못하기도 한다. 항상 분명 존재하는 것임에도 빛과 어둠과 시선과 방향, 그리고 자신을 알아야만 알아챌 수 있는, 당연하지만 알아채기 힘든 것이다.
사 년 동안, 나는 시선을 제대로 두는 법을 조금 익혔다. 나의 형태를 알고 나라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도. 그렇기에 이제 ‘행복’을 말하고, 또 행복이 어디즈음 있는지 대충 알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어둠이 짙어지면 나는 그림자를 잃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지금처럼 시선을 제대로 두고 나를 본다면 빛이 조금이라도 들 때 다시 그림자 같은 행복을 발견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빨리. 그리고 제대로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어딘가에 분명 그림자가, 그리고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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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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