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요리를 기다리겠습니다
오늘은 무슨 글을 쓸까 냉장고를 연다. 오래되었지만 상하지 않는 재료와 갓 따온 싱싱한 재료가 순서대로 가지런히 나열되어 있다. 어린 시절 기억에 남은 아버지의 뒷모습은 지금 먹기엔 조금 무거운 느낌이니 넘어가고 가벼운 걸로 골라볼까. 가볍게 먹기엔 싱싱한 야채가 좋겠지. 그래, 어제 마감을 끝내고 혼자 신나 춤추었던 기억으로 하자.
치커리같이 가벼운 기억을 꺼내 흐르는 물에 씻는다. 시원하게 물이 흐르며 기억이 다듬어진다. 상한 밑동은 떼어내고 필요한 부분만 골라낸다. 여기에 포인트를 더할 춤에 대한 못난 재능에 대한 기억 하나를 꺼내 마저 씻는다. 방울토마토 같은 기억의 꼭지를 똑 떼어 다듬고 치커리 같은 기억 옆에 놓는다. 재료는 준비됐다.
이제 맛을 더할 향신료를 찾기 위해 찬장을 연다. 소금, 후추, 간장, 맛술... 갖가지 감정이란 향신료가 나란히 놓여있다. 적당한 비율로 향신료를 섞는다. 원고를 다시 써야 했던 아픔이란 식초 한 스푼에 그럼에도 보람찬 설탕 한 스푼. 원고를 마치고 술을 외쳤던 주체할 수 없는 뿌듯함 마요네즈 다섯 스푼을 넣고 휘휘 젓는다. 손가락을 찍어 맛을 보니 제법 맛이 난다. 마요네즈를 넣었으니...,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마요네즈가 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이제 비닐장갑을 끼고 준비된 재료에 양념을 버무린다. 살살 손으로 요리조리 움직이다 보면 양념이 치커리와 방울토마토 속에 스며들어 맛이 든다. 방울토마토의 붉은빛과 치커리의 초록빛에 마요네즈가 소스가 어우러져 제법 괜찮은 샐러드가 완성됐다. 여기에 마무리로 치즈 같은 대사를 하나 넣어준다. 데코로 남은 방울토마토도 살포시 올린다. 괜찮다. 사진을 찍어도 이쁘게 나올 샐러드 글 완성이다.
오늘의 요리
‘오늘은 축배를 내일은 쓰디쓴 소주를’
되지도 않는 춤을 춰댔다. 하나, 둘, 촤차차! 어린 나이에 고생 꽤나 겪은 간에게 일을 준다. 맥주를 들이켠 것이다. 춤과 술이 어우러진다. 무려 혼자서 이 난리를 친다. 이렇게 신이 난 것엔 이유가 있다. 원고 마감을 끝내고 ‘발송’ 버튼을 누른 것이다.
때는 벌써 일 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세이에서 소설로 야망을 키워오던 나는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 응모를 했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메일이 오기까지. 재작년 구 월.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측에서 미팅을 하자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때부터 마음이 두근댔다. 작가 인생 첫 수상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수상은 아니었다. 800편의 소설 중 10편의 최종심까지 올랐으나 낙선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후 미팅과 교보문고의 장편 소설 집필 제의를 받았다. 제의에 응해 시놉시스를 보냈고 2021년 10월, 교보문고와 계약했다. 공모전에 냈던 것은 단편이었기에 새롭게 장편으로 집필을 해야 하는 상황. 집필에는 딱 일 년이 걸렸다. 2022년 9월, 장편 소설이 완성되고 출판사의 문을 두들겼을 때 나는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며 마음을 놓았다. 그때, 청천벽력 같은 말이 돌아왔다.
“작가님..., 혹시 다시 써보실 생각 없으신가요?”
내용은 이러했다. 나와 계약한 곳은 스토리 공모전 팀으로 에이젼시에 해당하고 대형 모 출판사에 영업이 들어갔는데 피드백이 왔다. 내용은 ‘가능성이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다만, 어느 정도 수정을 거쳐 다시 썼으면 한다는 것. 나를 담당한 PD님 측에서도 내게 다시 쓰라는 얘길 하는 게 속이 쓰렸겠지만(역시나 일 년 넘게 함께 해왔기에), 원고가 아니면 단호하게 “안된다”라고 하는 출판사에서 가능성이 있다며 얘기했으니 다시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온 것이다. 이어 “물론 원하지 않으면 다른 출판사를 알아볼게요.”라고 내게 선택지를 주었지만, 중고신인 작가로서 나는 어쩔 수 없었다. 더 좋은 작품만 나올 수 있다면 다시 쓰는 것 즈음이야. 나는 역시 쓰린 마음을 안고 애써 웃으며 말했다.
“다시 써보겠습니다!”
그리고 한 달. 무려 한 달 만에 나는 원고지 780매 분량의 장편 소설을 다 써냈다. 이 주 만에 시놉시스를 완성하고 PD님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한 달 만에 완성한 것이다. 그간 나는 글 쓰는 기계 수준이었다. 하루 여섯 시간씩 자리에 앉아 소설만 썼다. 시놉을 확인하며 쓰고 또 썼다. 주춤거리거나 고민할 틈은 없었다.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었다(충분히 감상에 젖어 괴로워했기에). 쓰고 또 썼다. 그렇게 소설은 한 달 만에 완성됐다.
보통 원고가 완성되면 이 주에서 한 달 정도 숙성시킨 뒤 퇴고 후 전송 버튼을 눌러야 했지만, PD님이 제시한 원고 마감은 고작 한 달 반이었다. 그 말인즉슨, 퇴고보단 “빨리 써서 줘라”라는 뜻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완성한 뒤 하루 만에 퇴고했고 발송 버튼을 눌러버렸다. 물론 조금 성급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마감과 이해관계가 중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냈잖아?! 나!
소설은 아직 결과가 나지 않았다. 솔직히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두 개의 소설을 썼다는 건, 비교가 된다는 것이다. 두 작품 중 전작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인간은 늘 발전하는 존재는 아니니까. 그렇기에 나는 위로한다. 이렇게 마감을 해낸 것만으로 충분히 잘했다고. 오늘 하루쯤은 춤을 추며 맥주를 마셔도 괜찮다고. 앞으로의 쓰디쓴 걸음은 또 내가 잘 견뎌낼 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모두들.
내가 가장 자주 갔던 식당은 매일 메뉴가 바뀌었다. 매일 메뉴가 바뀌니 가도 가도 질릴 틈이 없어 딱히 생각하지 않고도 들릴 수 있는 곳이 그 식당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식당 사장님의 가장 큰 고민은 이것이었다.
“이번엔 무슨 요리를 하지?”
식당 사장님의 고민은 ‘오늘 뭐 먹지?’라는 나의 고민을 덜어주었다.
매일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만큼이나 나는 매일 ‘오늘 뭐 쓰지?’라는 고민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글쓰기는 요리와 같다. 기억이라는 냉장고에서 경험이란 재료를 꺼내고 기억이란 향신료를 더한 갖가지 요리. 매번 새로운 경험이 생겨나고 새로운 감정이 더해진다.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들이다. 이곳에서 선보일 글은 그런 ‘요리’들이다. 여기는 ‘오늘 뭐 읽지?’라는 고민을 덜어줄 당신만을 위한 공간이다.
이곳에선 아주 다양한 글을 선보일 것이다. 당신이 궁금해하는 것도,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을 만한데 보고 나니 “아하!” 할만한 것도. 어쩌면 연재된 글을 읽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당신도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글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을 가지며. 재료 본연의 맛을 본 사람에게 요리 방법은 중요하지 않듯이.
다양한 글과 다양한 이야기, 갖가지 요리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삶은 글쓰기 레시피.
당신도 글을 쓰고 싶게 만들 이야기가 가득한 곳.
당신의 요리를 기다리겠습니다.
본 연재물은 <팬딩>을 통해 유료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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