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로 이성을 유혹할 수 있는가?
나는 보통 전철에서 책을 읽는다. 바쁠 때는 책 읽을 시간이 많이 부족해서 전철에서 책 읽는 시간은 매우 소중하다. 가끔 출퇴근 시간에 사람이 미어터질 때가 있다. 그때는 공간이 너무 협소해 책을 잡을 공간조차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음악을 듣거나 팟캐스트를 듣는다. 그러나 제외하면 웬만하면 책을 읽는다. 집중도 잘 되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블로그 글도 쓰기는 하는데 블로그는 노트북으로 쓰는 게 더 편해서 잘 쓰지 않는다.
책을 읽다가 드물게 책에서 집중을 뺏기는 일이 발생한다. 가장 많은 경우는 전철 정거장을 확인할 때다. 책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친 적도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수시로 정거장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리고 주변에 들리는 휴대폰 소리나 신경 거슬리는 소음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근데 내 집중을 앗아가는 것은 물론 내 모든 감각을 홀려버리는 요소가 있다. 바로 향기다.
책에 몰입하고 있다가도 갑자기 향기가 나면 향기가 나는 곳으로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다. 개인적으로 향수보다는 섬유 유연제 냄새(다우니 국룰) 더 좋아하는데, 그 냄새를 맡으면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아무리 책에 집중하려고 해도 이미 내 몸의 초점은 향기 나는 곳으로 향해있다. 신기할 따름이다.
<냄새의 심리학>은 우리의 오감 중인 하나인 후각에 대해서 심리학 측면에서 쓰인 책이다. 냄새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지, 우리가 냄새의 영향력 안에서 어떠한 행동들을 취하는지, 후각 능력을 키울 수 있기는 한지, 키울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정말 다양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저자에게 있다. 저자가 글을 매우 잘 쓴다. 가독성 있게 글을 잘 쓰기 때문에 책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군더더기 없는 글에 재밌는 내용까지 조화를 이루니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더욱 높여주는 느낌을 받았다. 가끔 책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가치에 비해 저자의 글쓰기 능력 때문에 매력이 확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다. <이기적 유전자>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학계는 물론 과학 분야에서도 대중서로 널리 알려진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기 힘들 것이다. 저자가 거의 논문을 쓰는 수준으로 책을 썼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30페이지까지만 읽고 책장에 내버려 두다가 지금은 라면 받침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저자의 글쓰기 실력은 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조금 아쉬웠던 점을 생각해 보면 단연코 후각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자기개발 서적을 굉장히 좋아한다. 보통 자기개발 서적을 읽으면 그 책을 쓴 저자들은 사고방식과 행동의 변화에 대해서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 주장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객관적인 근거들 혹은 인상 깊은 사례들을 담아 독자들을 충분히 이해시킨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생각화 행동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정리해놓는다. 이런 패턴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나는 이 책에서도 후각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후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기대를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설득력도 많이 부족하고, 후각을 향상시키는 방법도 부족해 보인다. 과연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후각을 향상시켜야겠다는 결심을 설지 의문이다. <그릿>, <역행자>,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등 정말 유용한 책을 읽어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냄새의 심리학>은 생각의 변화까지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 책은 가볍게 심리학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후각에 대해서만 내용을 정리하지 않고, 심리학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설명하고 있다. 행동 심리학에서 접할 수 있는 고전적 조건 형성과 조작적 조건 형성 내용도 나오고, 자기 효능감에 대한 내용 그리고 행복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가장 인상 깊었던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유명한 사람들의 말과 동일해서 기억에 남는다.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내용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서로써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동물이 성적 매력을 어필하거나 교미할 채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데 냄새를 활용한다. 아주 흔치 않지만 누에나방의 성적 유혹 물질은 단수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은 누에나방이 아니다. 우리의 유혹 물질은 한 번도 풀린 적 없는 비밀번호처럼 아주 잘 암호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섹스 스프레이, 러브 스프레이 같은 건 나올 수 없다. 우리는 아무런 도구 없이 짝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생겼든, 어떤 냄새를 풍기든 다 자기 짝을 찾아야 한다. 짚신도 제 짝이 있는 법이다.
<냄새의 심리학>, p214~215
다 필요 없다. 내가 주목한 것은 '냄새가 이성에게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였다. 연애고자인 필자는 후각의 영향력을 빌려서라도 이성에게 다가가는 법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후각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렇게 설명해놓고서도 이성에게는 질질 끄는 슬리퍼만큼도 영향력이 없다고 설명한다. 결국 향수나 섬유 유연제의 파급력은 그다지 효과가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가장 열받았던 것은 마지막 문장이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그럼 나는? 나는 짚신보다 못한 존재인가? 연애 고자에게 오승환 급 돌직구를 날리는 저자는 너무 가혹하다. 짚신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을 변화구 같은 꽉 찬 돌직구로 날리는 저자의 멘트력에 감탄하고 화가 날 뿐이다.
이처럼 재밌는 내용도 많고, 심리학 내용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놓아서 접해보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동안 심리학에 대해서 많은 내용을 다시 상기시킬 수 있어서 대학교 수업을 듣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처럼 이성에게 후각으로 매력 어필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은 읽지 않아도 된다.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라고 저자가 강하게 주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