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을 즐겨 듣는다.
지금도 내가 머무는 곳곳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핸드폰, 차 안, 컴퓨터 본체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수백 곡의 노래가 저장돼 있다.
그중 절반 이상은
1990년대, 내가 10대 시절에 즐겨 들었던 노래들이다.
감수성이 극에 달해 있던 그 시절,
90년대 노래의 가사는 정말 ‘시’에 가까웠다.
지금 다시 읽어도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나는 멜로디보다 가사를 먼저 듣는 편이다.
그래서 그때 들었던 노래들은
지금도 여전히 마음을 붙든다.
그 시절, 마음에 남은 이름들
에메랄드 캐슬, 장혜진, 페이지, 김동률, 서영은,
MC 스나이퍼, 신해철, 토이, 정재욱.
그리고
넬, 부활, 이문세, 쿨, 넥스트…
이름만 떠올려도
그 시절의 공기,
밤하늘의 별빛,
학교 끝나고 떡볶이랑 쫄면을 먹으러 가면서 이어폰을 나눠 끼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어릴 때는 그 노래의 가사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는
특히 그랬다.
‘병아리를 키우다가 떠나보낸 이야기인가?’
‘작은 생명의 소중함을 노래한 건가?’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저 그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그땐 이해하지 못했던 노래들이
어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알 것 같았다.
삶은 언젠가 끝이 있고,
그 끝 어딘가에선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나게 될까.
그래서「날아라 병아리」는
이제 눈을 감고 듣는 노래가 되었다.
굿바이 얄리.
이제는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도
처음엔 그냥 좋은 노래였다.
그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이성이든, 동성의 친구든
그냥 "같이 지내자"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
문득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내 일상에 초대한다는 건,
그 사람을 깊이 사랑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란 걸.
평온하고 익숙한 나의 하루에
타인을 들인다는 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최근 MC 스나이퍼의 「고려장」을 들었던 날,
나는 차 안에서 참 많이 울었다.
그 시기, 부모님이 많이 아프셨고
‘내가 더 잘 챙겨드렸더라면
지금보다 덜 아프셨을까…’
하는 마음이 날 붙잡고 있던 때였다.
노래 속 한 줄 한 줄이
마치 나에게 말 걸듯 다가왔다.
그래서 그 노래는
한동안 다시 듣지 못했다.
노래는 그런 식으로
어떤 기억과 엮여
한 시절을 꺼내 앉힌다.
이제는, 그 노래들을 내 아이에게 들려준다.
지금 내 아이는 9살이다.
신해철의 「그대에게」 앞부분 리듬은
우리에게 ‘힘이 나는 리듬’이다.
이를 닦을 때,
세수를 할 때,
우리 집 욕실에서는 그 노래가 흘러나온다.
요즘 9세 아이도
사는 게 녹록지 않다.
억울한 일도 많고,
하기 싫은 것도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은 나날이다.
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힘든 일도,
더 억울한 일도 만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만한 이유가 생기는 건—
잠시 쉬며 듣는 노래 한 곡,
머릿속에 남아 있는 추억의 장면 하나,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 나를 정말 사랑해 줬다는 기억 때문이라는 걸
알게 해주고 싶다.
나는 내 아이의 세상 마지막 날까지 곁에 있어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살아갈 힘을 아이의 마음속에
함께하는 시간 동안 심어주고 싶다.
내 기억 한 장면 속,
엄마께서 "엄마야 누나야"를
반복해 불러주시던 순간처럼.
“엄마가 이 노래를 들려주면서 나에게 힘을 줬지.”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기를…
20년 가까이 된 카세트테이프입니다. 지금은 듣고 싶은 노래를 버튼 하나로 바로 들을 수 있지만,
그 시절엔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 나오기를 기다리며 녹음 버튼을 누르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녹음한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