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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지 Jun 19. 2017

회전목마와 거리의 악사

피렌체 광장과 판테온 광장에서 든 생각.

친한 친구가 최근에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와 세삼 유럽여행에 대한 기억을 너무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유럽에서 쓴 수첩과 사진을 찾아보며 기억을 꺼내봤다.

피렌체 광장의 회전목마


1. 회전목마는 꿈과  도상(圖像)  같다. 그래서 회전목마를 딱히 좋아한 것도 아니었는데 회전목마를 보고 있으면 동심으로 돌아가 행복해져야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케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오늘 무슨 날이야?' 하고 물어봐야   같은 느낌으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릴 때부터 스릴 있는 놀이기구만 좋아했다. 그래서 내 기억 속 놀이동산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어린이 날에 아빠 손잡고 바이킹을 탄 것이다. 하지만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도 놀이동산을 여전히 좋아하는 나는 아직도 놀이동산을 떠올리면 회전목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놀이동산=꿈과 희망의 세계=회전목마


판테온 앞의 할아버지 악사

2. 유럽여행 내내 거리의 악사들에게 많은 애정을 쏟았다. 시간을 반드시 맞춰야 하는 일정이 있는 것이 아니면 일단 어떤 버스킹이든 거의 두 세곡 이상은 들었던 것 같다. 선곡 취향이 맞으면 삼십 분은 기본이었다. 평소에 노래를 듣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연주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 거리의 분위기에 순식간에 빠져 들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한 번은 프라하에서 드럼 스틱에 피노키오 막대인형을 연결해 연주하는 드러머가 있었는데 스틱이 움직일 때마다 피노키오 인형이 춤을 추듯 움직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연주 실력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프라하를 떠올리면 그 드러머가 떠오른다. 내 취향은 역시 실력보단 분위기인 것 같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로마의 판테온 앞에서 만난 할아버지 악사시다. CD를 두장이나 사 왔으니. 그리고 그 CD는 유럽에서 산 기념품 중에 단연 유럽 여행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강력한 매개체다. 정말 말 그대로 기념이 되는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그런 물건이다. 기타 한 대로 비틀즈부터 타이타닉 주제곡 우리 귀에 익숙한 온갖 올드팝들로 무대를 채우셨는데 정말 포스가 남다르셨다. 관객들 중에 종종 CD 가격을 흥정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렴한 가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흥정을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너한테 안 팔아'이런 느낌으로. 대신 CD를 구매하는 관객들에게는 감사의 의미로 한번 찡긋 웃어주셨다. 그때 '그 CD 산 거 후회 안 할 거야, 내 가치를 알아봐 줘서 고마워' 이런 기분이 들었다.


지위의 높고 낮음을 절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옳지 않지만 통상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흔히 말하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거나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남들이 볼 때는 좋아 보이지만 본인은 막상 주말만을 기다리며 사는 것이 흔하고 심지어 당연해 보인다. 로또 당첨되면 지금 하는 일 그만둬야지 생각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하지만 어쩐지 판테온 앞에서 연주하는 할아버지께서는 기타 한 대와 스피커 한 대만으로 광장을 무대 삼아 연주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충분히 높이 사시는 분 같았다.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이셨다. 그래서 남들도 함부로 깎아 내릴 수 없어 존중받고 존중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세상에 수많은 기준이 있지만 자기 안에 분명한 기준이 있는 사람들은 그 외의 기준을 압도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좋은 무대에서 각 잡고 실력을 검증받은 음악회를 듣는 것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거리에서 연주하더라도 표정이 밝고 행복해 보이는 연주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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