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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지 Dec 22. 2016

찰스와 노아

배낭여행, '배낭'여행

배낭여행. '배낭'여행. 노아와 찰스와 함께한 여행.

배낭여행. '배낭'여행.


배낭여행에서 배낭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한 달 정도의 여행을 가려고 계획하면 생각보다 챙길 것이 많다. 옷이나 상비약은 물론 손톱깎이나 반짇고리까지 챙겨야 하니, 배낭을 챙기는 것부터 녹녹지 않다. 더불어 여행을 떠나면 갖고 싶은 것이 왜 이리 많은지. 배낭은 점점 무거워져 간다. 심지어 배낭이 무거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욕심을 부린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것은 책임져야 하는 것도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런데 동시에 배낭은 너무도 소중하다.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고 나의 기억까지 그 배낭과 함께한다. 그래서 배낭은 무겁지만 그 무거운 무게와 비례해서 소중해져만 간다. 여행 끝물에는 심지어 가방이 남자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거워서 내 행동에 제약을 만들지만 또 그만큼 소중한 존재.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배낭에 이름을 붙였다. 내 영어 이름은 앨리(Allie)인데, 영화 노트북의 여주인공의 이름 앨리에서 따왔다. (여자인 내가 봐도 정말 매력적이고 당찬 앨리를 닮고 싶은 내 바람이 담겨있다.) 그래서 내 배낭에 앨리의 남자 친구 노아(Noah)의 이름을 따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의 배낭은 철수가 될뻔했지만, 유럽을 여행 중이기에 철수와 발음이 비슷한 찰스로 했다.



초록 찰스와 파란 노아 그리고 소원이.


그렇게 우리의 배낭은 그냥 가방에서 우리와 함께 여행하는 '찰스'와 '노아'가 되었다. 찰스와 노아는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신기하게도 이름만 붙였을 뿐인데 여행 내내 찰스와 노아는 가방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이름 :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

내 이름은 특이한 편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으니,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삶에서 나의 이름은 고유했다.

오순지(吳 順: 순할 순 智: 지혜 지) 순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라는 뜻이다.

사실 어릴 때는 예쁜 이름이 부럽기도 했었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예쁜 여주인공 이름들을 부러워했을 때가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순지'라는 이름은 세련되기보다 투박하고 예쁘기보단 정감 간다. 그래도 지금은 내 이름이 좋다. 고유한 내 이름이 좋다.

이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있다. 가까이 지내는 동생 중에 한 명은 늘 이름을 물어본다. 예를 들어 내 남동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그럼 언니 남동생은 이름이 뭐야?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그래서 그 언니 이름은 뭐야? 꼭 묻고 그 이름을 기억해 주는 동생이 있다. 그리고 나중에 꼭 그 이름을 부르면서 그 사람의 안부를 묻는다. 생각해보면 예쁜 마음이다. 그 사람을 남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단어로 기억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다른 사람을 소개할 때 언제부턴가 어떤 대학에 다니는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를 앞세워 말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내 친구 중에 S대 다니는 애가 있는데, 아 그때 말했던 그  S대 다니는 애 있잖아" 이런 식으로.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에게는 정말 많은 모습이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속성만을 골라서 그 사람을 부르기에는 어떤 단어로 수식해도 그 사람을 담아낼 만한 것은 없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꼭 말해준다. "내 친구 중에 샛별이라는 애가 있는데 걔는 이런 애다."이렇게.

배낭이 그냥 가방에서 찰스와 노아가 된 순간 나에게 특별해진 것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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