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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Dec 20. 2020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

그 뚜렷한 선이 조금씩 옅어져 간다

(본 작품은 민음사 TV 유튜브 채널의 '출판사 에디터의 고민 상담&책 추천' 편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얼마 전, 아빠 생신이었다. 평일이라 출근하기 전에 짧게 전화를 드렸다. 부끄럽게도 이런 큼직큼직한 날이 아닌 이상 먼저 자주 연락을 드리지 않는 불효자식이다. 통화음이 몇 번 울리고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음성이었다.


 아빠, 방금 일어났어?

 아니, 허리가 아파서.

 ......

 미역국은 드셨어?

 아니, 들 엄마가 지금 만들어 주고 있어.

 그렇구나. 아빠 생일 축하해.

 고마워.

 사랑해.

 나도.

 나 이제 곧 출근하려고. 끊을게.

 , 알겠어.


 기다려도 아빠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아 내가 먼저 눌러버렸다. 마음이 헛헛해졌다. 출근하고서 무뚝뚝한 통화 내용을 자꾸 되새김질했더니 괜스레 훌쩍댔다. 요즘 아빠의 허리가 부쩍 안 좋아지셨다. 바지를 입을 때 숙이면 허리가 아파 벽에 기대어 입으셨다. 점심시간에 휴대폰으로 복대를 검색했다. 많은 후기를 보아도 온라인은 왠지 신뢰가 안가 근처 의료기상사를 찾아보았다. 아빠한테 말씀드렸더니 단호한 거절의 전화가 왔다. 주변에서 준 것도 이미 많고 주사 맞으면 금방 괜찮아진다고. 매번 물질적인 선물을 완강히 거절하실 때마다 자식으로서 참 속상하다. 얼마 전에는 적지 않은 돈으로 안마기를 사드렸는데, 사용해 보니 너무 아프다며 다음엔 괜히 비싼 거 사 오지 말라 하셨다. 그렇게 축적된 기억들에 선뜻 내 맘대로 사드릴 수도 없었다.


 기뻐해야 할 날에 느꼈던 아빠에 대한 이런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은 엄마에게로도 가닿았다. 엄마는 겉으론 건강해 보이지만 중년의 나이에 흔히 나타나는 증상들을 가지고 계신다. 요즘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며 기름기 있는 음식은 거의 드시지 않는다. 갱년기를 겪으면서 칼슘 수치도 낮아 뼈 건강도 염려스러웠다. 엄마는 나를 아직도 아이처럼 대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점점 작아지는 걸 느낀다. 아주 조금은 철이 든 건지 괜히 집에 가면 말에 애교가 품어 있다. 포옹도 자주 하는데, 이젠  엄마가 내 품 안에 쏙 들어온다. 그런 엄마가 사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겁이 난다. 너무 작아질까 봐.


 아직은 부모님이 보호자 역할을 해주시지만, 서로의 역할이 바뀌는 날은 분명히 올 것이다. 내가 부모님을 보살펴드려야 할 순간이. 그때 나의 마음은, 부모님의 심정은 어떨까. 부모님이 나를 능숙하고 프로답게 보호해주셨던 만큼 나도 잘 해낼 수 있을까. 자식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스스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약해져 있음을 깨달을 때, 부모님은 의연하게 받아들이실 수 있을까. 우리는 자연스레 뒤바뀐 역할에 서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조금씩 보호해주는 자와 보호받는 자의 경계가 허물어져 결국엔 바뀌어질 그 순간이 겁이 난다. 불가피한 일이지만 최대한 늦게 왔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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