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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Dec 31. 2020

<거꾸로 가는 남자>

성차별을 재미있게 비꼰 프랑스 영화

"나는 쉬운 남자가 아니에요."


 주인공 다미앵은 남성 우월주의자다. 그는 잘 나가는 앱 개발자로 회의 중 여성과의 관계 횟수를 측정하는 아이디어를 내며 동료들에게 각광을 받는다. 회의실의 단 한 명의 여직원, 소피를 제외하고. 소피는 다미앵에게 묻는다.

 

 "여자에겐 어떻게 적용하지?"

 

 다미앵은 소피에게 남자들은 섹스한 여자들의 머리색이나 피부색 같은 프로필을 직접 설정할 수는 있다고 말하며 여자들은 그 어플을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다미앵은 회의 시간에 그녀에게 작업을 걸며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회사 밖에선 그의 남성 우월적인 면이 더욱 드러난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성들을 위아래로 훑으며 그가 괜찮은 여자라고 생각되면 바로 사탕 발린 말로 작업을 걸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벌을 받는 건지 다미앵에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한다. 평소처럼 그는 길을 걸으며 아름답고 날씬한 여성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어댄다. 그러다 그는 미처 기둥을 보지 못하고 머리를 크게 부딪치며 쓰러진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동행했던 동성 친구의 푸른색 머플러가 꽃무늬 머플러로 바뀌어 있다. 곧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집으로 돌아간 다음 날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옷장을 연 그는 제야 이상함을 감지한다. 평소에 입던 어두운 계열의 옷은 하나도 없고 화려하고 밝은 옷들만 걸려 있던 것이다. 출근한 회사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져 있다. 남자들은 허벅지를 드러낸 핫팬츠를 입고 여자들은 노출이 없는 정장을 입고 있다. 여직원들은 다미앵을 훑어보며 작업을 걸고 휘파람 소리를 낸다. 이뿐만 아니라 그의 업무 실적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네 프로젝트는 떨어졌어. 넌 평소처럼 열심히 했어. 똑똑하지만 너무 똑똑하달까."


 이 말을 한 직원은 바로 다미앵에게 희롱을 당했던 소피다. 소피는 예전과 달리 다미앵보다 직위가 높은 상태로 보이며 다미앵에게 프로젝트 낙선을 말하며 해고시킨다.


 일자리를 알아보던 다미앵은 유명 작가인 '알렉산드라'의 비서로 일하게 된다. 사실 그녀는 뒤바뀌기 전 세상에서 다미앵이 꼬시려다 실패한 여자다. 알렉산드라는 다미앵과 반대로 여성 우월주의자다. 그녀는 많은 남자들과 원나잇을 즐기고 고급 외제차를 운전하며 취미로 복싱을 배운다. 알렉산드라는 다미앵을 자신의 비서로 두기 위해 집으로 들이고 그에게 커피를 타 오게 하거나 간단한 서류 정리, 식당 예약 같은 잔업무를 시킨다. 그 외에는 어떤 질문에도 답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적성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을 하던 다미앵은 결국 새로운 일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난 이 일에 맞지 않아요."

 "왜 이렇게 징징거려요?"


 하지만 알렉산드라는 뒤바뀐 세상에서 보통 남자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다미앵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 후, 그가 계속 생각난다. 결국 그녀가 먼저 연락을 한 후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여성 우월주의자 알렉산드라와 남성우월주의자 다미앵은 만남을 계속 이어가면서 서로의 세계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호기심을 가지고 열심히 상대의 말에 경청하기도 하고, 때론 각자의 다름에 언쟁을 높이기도 한다.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는 이렇듯 여성이 받고 있는 차별을 '미러링 효과'를 통해 재미있게 비꼰 작품이다. 남성은 제모와 치장을 하고, 취미로 발레나 요가, 바느질을 한다. 직장에선 커피를 타오는 등의 비서일을 주로 하고 회의 중 자신의 의견을 내더라도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집에선 육아를 도맡아 한다. 반대로 여성은 화장기 없는 피부와 노출 없는 편한 옷이나 단색 계열의 옷을 입는다. 취미는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오토바이를 타거나 복싱을 배우는 등 활동적인 것 위주로 즐긴다. 조깅을 할 땐 브라도 하지 않은 채 상반신을 당당히 드러낸다. 직장에선 대부분이 여성이며 지도자로서높은 지위에 속해 있다. 역지사지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 아닌가.


 다미앵이 이렇듯 여성의 입장으로 살게 되면서 많은 분들은 보면서 통쾌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를 시원하게 미워할 수는 없었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그 나름의 속사정이 드러난다.


 아이들의 즐거운 학예회 날, 백설공주 역을 맡은 여자아이가 갑자기 아프면서 그 자리를 대신할 아이를 찾아야 했다. 이때 다미앵은 번쩍 손을 든다. 그는 백설공주 옷으로 갈아입은 뒤 무대 위에 오르는데, 학부모와 아이들은 공주 옷을 입은 그를 보고 웃기 시작한다. 그들의 비웃음 속에 어린 다미앵의 표정은 점점 굳어간다. 잘못을 합리화시킬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 부분을 곱씹으면서 '과연 남성 우월주의자가 된 다미앵의 잘못은 오로지 본인에게만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본인의 성별을 잊은 적이 있나요?"


 


 이 영화의 멋진 매력은 여성의 노출이 전혀 야하지 않다는 것이다. 섹스를 할 때도, 여자가 상반신을 탈의해도 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세계에선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여자가 노출 있는 옷을 입으면 위험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끔 한다. 또한 내가 여성임에도 일부 장면들엔 통쾌함보단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는 점이다. 반대로 남성에게 나타난 상황들이 시각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차별을 받는 입장이지만 그 차별을 본인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은 작품이어도 아쉬움은 남는 법이다. 역사적으로도 현재로서도(요즘은 많이 발전했지만) 여성 차별과 관련된 일들이 많지만, 남성 또한 여성에게 차별받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자가 감정이 예민하고 섬세하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거나 십자수나 뜨개질 같은 정적인 취미를 신기해하는 경우 말이다. 이는 남성성을 강요한 사례들이다. 추가로 관련 영상을 넣었다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로맨스 코미디 영화인 만큼 너무 진지하게 분석해가며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주제의 무거움을 한 덩어리 덜어낸 것이 목적인 작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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