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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Jul 24. 2021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내가 참 좋아하면서도 아픈 손가락 같은 친구 A와 B가 있다. 가명을 쓴다 해도 그들의 사생활이라 자세히 쓸 순 없지만, A와 B 모두 혼자 월세를 살면서 일하고 있고 빚을 갚고 있다.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월세랑 빚 갚는데 쓰고 나면 남는 것도 없을 텐데 지방에 혼자 사시는 어머니에게 이것저것 챙겨드리면서 돈도 보내드리고 있다.


  처음엔 A와 B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리저리 상황이 힘든 걸 감안하더라도, 왜 본인 먼저 챙기질 않지? 내가 오랫동안 보아온 A와 B는 항상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챙기는 친구였다. 친구의 어머니들은 많이 버시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일하시면서 돈을 벌고 계시긴 하셨다. 내가 보기엔 내 친구들이 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까지 과하게 어머니를 챙기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돈을 모아서 본인의 발전을 위해 쓰지도 못하고 제자리걸음, 아니 뒷걸음질치고 있는 듯 보이는 친구들이 안쓰럽고 답답했다. 만날 때마다 항상 얘기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먼저 챙기면 너 자신은 누가 챙겨주냐고. 그리고 받는 사람은 어느 순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할 거라고. A와 B의 어머니도 자식들이 이것저것 다 챙겨주고 돈 보내주고 하는 것에 너무 당연한 듯 익숙해지신 것 같았다.


  예전엔 딱 여기까지만 생각이 미쳤다.


  그러다 최근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야 된다고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걸. 그들이 본인을 먼저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억지로 바꾸게 하려고 해선 안된다는 걸. 그냥 그들의 성향이 그렇다는 걸.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도와주지 않으면, 본인 마음이 더 불편해지는 사람들이라는 걸. 그들의 입장에선 차라리 그게 자신을 위한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이런 생각들이 들면서 나 스스로 반성을 했다. 내가 직접 겪은 일도 아니면서, 내가 실제 그 상황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뭘 얼마나 잘 안다고 그런 말을 했는지. 내가 그들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안다고, 그들이 무슨 큰 잘못을 한 것 마냥 질타하기만 했었는지. 생각하니 내가 부끄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그들을 위한 조언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오만한 생각이었다. 한두 번 정도는 친구로서 내 친구를 위한 말을 해줄 수는 있지만, 그 뒤엔 기다려줘야 했다. 나는 매번 잔소리처럼 ‘너 자신을 먼저 챙겨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고, 그들도 어렴풋이 그래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차마 그게 잘 안 되는 상황이 계속 되풀이될 뿐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냥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뿐이었다.


  무엇이 본인에게 좋은 일인지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 일이지,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아무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챙기는 게 마음에 깊이 벤 사람이라도 그게 선을 넘어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이 정말 이러다가 죽겠다 싶은 순간이 온다면 ‘그때’ ‘스스로’ 행동을 바꾸게 될 것이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라 일반적인 지인 관계에서처럼 완전히 끊어버릴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킬 필요는 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라도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딸은 딸의 인생을 각자의 인생을 살면서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는 관계여야 하니까.

     

  나는 지금도 A와 B를 볼 때마다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또 한편으로는 속이 터질 듯 답답하다. 아무리 내가 너 자신을 먼저 챙기라고 말해도 그 친구들은 항상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챙길 것이다. 뭔가 극적인 사건이 터져서 스스로 번뜩 깨닫고 바뀌지 않는 이상. 그게 그 친구들의 원래 성향이고 성격이니까. 앞으로도 나는 계속 그 친구들을 보며 안쓰럽고 또 속이 터질 것이다. 그래도 그냥 그런 사람들이다 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니 그런 마음이 조금 덜해졌다. 자기 자신을 먼저 잘 돌볼 수 있도록 바꾸는 건 친구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그 친구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편한 친구로서 옆에 있어 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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