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웠던 관계가 끊어질 때마다 나는 낯선 공간에 혼자 버려진 아이처럼 어찌할 줄을 몰랐다. 마음이 너무 아파 시도 때도 없이 울기도 했고,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면서 우울해하기도 했고, 온갖 욕을 하고 화를 내며 상대방 탓을 하기도 했고, 다 못난 내 잘못인 것 같아 자책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그때 이랬더라면 달라졌을까, 하는 답이 없는 질문들만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되풀이했다.
그런 시간들을 견디고 지나와보니, 이제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끝나는 때가 있다는 걸. 아무리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더라도, 아무리 수많은 추억이 있더라도,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때가 온다. 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서든.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내 잘못도, 상대의 잘못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떠나보낸 것도 아니다. 함께했던 시간 동안 모두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고, 나 또한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저 때가 온 것뿐이다. 자연스럽게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지듯 보내줘야 할 때가.
그동안 내 삶에서 잠시든 긴 시간이든 머물다 간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잊은 줄 알았던 사람들이 내 기억 속에 잊히지 않은 채로 있기도 하고, 잊지 못할 것 같던 사람들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있는 시간들을 마주해본다. 이런 식으로 계속 시간은 흐를 것이다. 잊힌 듯 잊히지 않은 듯.
또 하나 알게 된 것도 있다.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혼자만 있으려는 것 또한 답은 아니라는 것을. 그냥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혼자만 있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 내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만큼 혼자 있어도 된다. 그게 몇 달이 됐든, 몇 년이 됐든. 다만,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때가 왔다고 느껴지면 그때 다시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가면 된다. 사람들 때문에 아플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 덕분에 행복할 수도 있다.
나이에 맞춰 늘어가는 내 얼굴의 주름을 그대로 받아들이듯, 바뀌어가는 계절에 맞춰 내 옷차림을 바꾸어 가듯, 그렇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맞춰나가자. 그 흐름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자. 그때가 언젠지는 알 수 없지만, 때가 왔다고 느껴지면 그냥 자연스럽게 놓아주자. 모든 인간관계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멀어지게 되더라도 후회가 없도록, 함께 한 시간들이 시간낭비가 아니라 서로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충실하자. 그러다 때가 오면 "때가 왔구나" 하고 그냥 받아들이자.
보내줘야 할 때인지 아닌지는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이미 보내줘야 할 때가 지난 사람에게 애쓰는 노력을 나에게 쓰면서 기다려보자. 좋은 사람들이 떠나간 그 자리에 언젠가 또 다른 좋은 사람들이 올 것이다.
놀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