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쓴 Mar 08. 2021

꽃이 피고 지듯, 때가 왔을 뿐이다.


  가까웠던 관계가 끊어질 때마다 나는 낯선 공간에 혼자 버려진 아이처럼 어찌할 줄을 몰랐다. 마음이 너무 아파 시도 때도 없이 울기도 했고,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면서 우울해하기도 했고, 온갖 욕을 하고 화를 내며 상대방 탓을 하기도 했고, 다 못난 내 잘못인 것 같아 자책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그때 이랬더라면 달라졌을까, 하는 답이 없는 질문들만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되풀이했다.


  그런 시간들을 견디고 지나와보니, 이제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끝나는 때가 있다는 걸. 아무리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더라도, 아무리 수많은 추억이 있더라도,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때가 온다. 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서든.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내 잘못도, 상대의 잘못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떠나보낸 것도 아니다. 함께했던 시간 동안 모두 나에게 좋은 사람이었고, 나 또한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저 때가 온 것뿐이다. 자연스럽게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지듯 보내줘야 할 때가. 


  그동안 내 삶에서 잠시든 긴 시간이든 머물다 간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잊은 줄 알았던 사람들이 내 기억 속에 잊히지 않은 채로 있기도 하고, 잊지 못할 것 같던 사람들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있는 시간들을 마주해본다. 이런 식으로 계속 시간은 흐를 것이다. 잊힌 듯 잊히지 않은 듯.




  또 하나 알게 된 것도 있다.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혼자만 있으려는 것 또한 답은 아니라는 것을. 그냥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혼자만 있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 내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만큼 혼자 있어도 된다. 그게 몇 달이 됐든, 몇 년이 됐든. 다만,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때가 왔다고 느껴지면 그때 다시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가면 된다. 사람들 때문에 아플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 덕분에 행복할 수도 있다.


  나이에 맞춰 늘어가는 내 얼굴의 주름을 그대로 받아들이듯, 바뀌어가는 계절에 맞춰 내 옷차림을 바꾸어 가듯, 그렇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맞춰나가자. 그 흐름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자. 그때가 언젠지는 알 수 없지만, 때가 왔다고 느껴지면 그냥 자연스럽게 놓아주자. 모든 인간관계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멀어지게 되더라도 후회가 없도록, 함께 한 시간들이 시간낭비가 아니라 서로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충실하자. 그러다 때가 오면 "때가 왔구나" 하고 그냥 받아들이자.


  보내줘야 할 때인지 아닌지는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이미 보내줘야 할 때가 지난 사람에게 애쓰는 노력을 나에게 쓰면서 기다려보자. 좋은 사람들이 떠나간 그 자리에 언젠가 또 다른 좋은 사람들이 올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이제 하지 않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