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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Jan 08. 2022

스물다섯, 서른다섯, 마흔다섯

  새해에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이 되었을 때 느낌은 묘하다. 스무 살에는 10대가 지나갔다는, 서른 살에는 20대가 (빨리) 지나갔다는, 마흔 살에는 30대가 (더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 때문에 만감이 교차한다. 하루 만에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뀌니까 그 나이대가 됐다는 것에 실감이 나지도 않는다. 반면에 스물다섯, 서른다섯, 마흔다섯은 20대, 30대, 40대의 딱 중간이다. 그 연령대의 느낌을 가장 온전히 느끼기에 딱 좋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처럼 뭔가 변화가 필요한 것 같은데 딱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조급함보다는 좀 더 여유 있게 생각해보기 좋은 나이인 것 같다. 나는 올해 서른다섯이 되었다.

   

  2022년 새해 첫날 단톡방에 친구들의 메시지가 왔다. “얘들아. 서른다섯... 실화냐..?”라고. 글쎄 나는 매년 내가 벌써 서른이야? 내가 벌써 서른다섯이야? 하는 반복되는 것 같은 장면이 좀 지겨워졌다. 어차피 하루하루는 똑같고 얼굴에 주름 하나 더 늘 뿐이지 뭐. 내가 벌써 30대 중반이 되었다는 생각보다, ‘스물다섯에 나는 어땠었지?’ ‘마흔다섯의 나는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다섯 때 나는 서른다섯이란 나이를 거의 상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내년, 내후년의 걱정되는 일들,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고, 또 그때의 나에게 10년 뒤의 모습은 너무나 먼 미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막연히 지금보다 훨씬 멋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꿈꾸듯 상상해 보는 것이 전부였다.      


  스물다섯의 나는 대기업 다니는 사람, 유명하고 큰돈을 번 사람 등 눈에 보이는 대단한 결과를 만든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었고, 계속 좌절하고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의 반복이었다. 서른다섯의 나는 결과와 상관없이 몇 년 몇십 년씩 꾸준히 하는 사람, 몇 년 몇십 년을 하다가 그만두고 다른 걸 하는 사람들 모두 다 대단해 보인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도 없이 그 긴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몇 년을 해온 걸 그만두고 다른 걸 하겠다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아니까. 나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니 지칠 때도 많지만 스스로 뿌듯함을 느낄 때도 많다. 내가 어떤 사람을 대단하고 멋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내 인생의 방향도 달라지는 것이다. 


  스물다섯에 난 ‘아직 스무 살인 거 같은데..’ 했었는데, 서른다섯인 지금도 아직 서른인 것 같다. 스물다섯 되니 서른이 멀지 않아 보였는데, 서른다섯 되니 이제 마흔이 멀지 않아 보인다. 스물다섯에는 ‘좋을 때네. 뭘 해도 할 수 있을 나이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서른다섯엔  ‘젊을 때네, 실패해도 괜찮지.’라는 말로 또 반복된다. 스물다섯에 내 주위를 맴돌던 말들이, 서른다섯에도 비슷하게 반복이 되는 걸 보니, 대사가 조금 수정돼서 마흔다섯에도 반복되겠지 싶다.     


  지금의 생각과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다시 스물다섯으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예전엔 극적인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 당시의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또 한정적일 것이다. 내가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선택지라는 게 있기나 했던가 싶다.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들로 인해 더 선택이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또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스물다섯의 나에게 알려주고 말해준다 해도 스물다섯의 나에게는 와닿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마흔다섯은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라 스물다섯, 서른다섯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스물다섯에서 서른다섯을 상상하는 것보다, 서른다섯에서 마흔다섯을 상상하기는 좀 더 수월하다. 이제는 막연하게 지금보다 더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10년 뒤에 영화처럼 인생에 극적인 변화 같은 건 없을 거란 걸 안다. 막상 그 멀어 보였던 서른다섯이 되어 이제 마흔다섯을 생각해보니 이제는 그려진다. 결국 지금보다 겉모습만 더 나이 들었을 뿐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거란 걸.


  스물다섯의 나를 되돌아볼 때 가장 안타까운 건 아무것도 이뤄놓지 못했다는 것보다, 남들의 생각과 남들의 말에 너무 많이 휘둘리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지 못했었다. 사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달라지는 겉모습이나 쌓아놓은 돈이나 명예 따위는 상관없다. 어차피 평생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을 것들이 아니니까. 마흔다섯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마흔다섯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스물다섯보다 더 단단해진 서른다섯이 되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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